March 2022
(커버 이미지 : Clifton Park - Halfmoon 공립 도서관. 두 개의 Town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규모가 크고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알게 된 동네 도서관 수업
인터넷에서 보는 미국 뉴스는 실 생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포탈 메인 또는 방송국 메인에 나오려면 어지간히 큰 사건이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내 주변인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캘리포니아의 큰 불, 플로리다의 토네이도, 연방정부의 외교 경제 정책 같은 것이 뉴욕 교외에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특히 한국 포탈에서 볼 수 있는 '번역된' 미국 소식은 불필요한 것뿐만 아니라 잘 못된 정보가 있기도 해서 읽다 보면 정신이 피곤하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은 이런 것만 보실 테니 내가 아수라장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안테나를 달아서 현지 공중파 지역방송을 주로 봤다. (참고 : 미국에서 정보를 얻는 방법)
뉴스시간의 대부분이 뉴욕 주 정부나 지역(Capital Region) 얘기이고, 전국 단위 뉴스는 아주 짧게 다뤄진다. 내 생각대로 현지인들에게도 연방 정부나 미국 전국 뉴스는 그다지 필요한 정보가 아닌 거다.
일상에 밀접한 정보는 페이스북에서 찾는 게 요긴했는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동네에 관련된 글을 새로 고침 해서 읽어보곤 했다. 특히 중고마켓 판매 글은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감소하고 있다지만, 미국에서도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이나 X보다 페이스북이 오히려 더 나에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마이애미에 여행을 갔던 날, 자기 전에 페이스북을 잠깐 보다가 세은이 학교 학부모 그룹에 광고가 하나 올라온 게 눈에 띄었다. (참고 : 마이애미 여행기 1편)
CPH 도서관에서 US 시민권 수업을 재개합니다.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주변에 많이 알려주세요. 수강료는 무료입니다.
세은이가 DyAnn에게 과외받는 장소인 CPH 도서관(Clifton Park-Halfmoon Public Library)의 교육 프로그램 담당자가 올린 광고였다. 뭐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놓치면 안 된다. 일단 캡처해서 저장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도서관 홈페이지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한국에 있을 땐 도서관에 가 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학교 다닐 때나 갔던 곳이고, 그마저도 책 빌리러 가거나 숙제하러 가던 곳이었다. 적어도 내가 살던 곳에는 도서관에 교육, 문화 프로그램 같은 건 없던 것 같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도서관에서 도서 대여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주민 참여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동네 도서관에서는 코비드 때문에 한동안 중단했던 교육 프로그램들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거였다.
그중에 이민자를 위한 프로그램은 초/중급 ELL(English Language Learner) 영어회화 수업과 내가 페이스북에서 봤던 미국 시민권 시험 대비반이 있다.
모든 수업을 다 듣고는 싶지만 회사 일도 해야 하니 그럴 수는 없고, 수요일 저녁에 한번, 2 시간 하는 시민권 수업이 좋을 것 같았다.
일반 영어 회화보다는 일정한 주제를 배우고 싶었고 귀화 시험 대비반이니까 미국의 역사, 정치, 사회 등을 단기간(10주 과정)에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미국인의 시각에서 알려줄 테니 한국에서 배웠던 것과는 다르겠지.
내가 실제로 시험을 준비하는 건 아니라서 다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내용을 가르쳐주는 곳은 여기 말곤 없으니 청강으로라도 듣게 해 준다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진짜 시험 보는 것처럼 열심히 듣고 숙제도 빼먹지 않고 잘해야지.
프로그램 담당자인 Alison에게 메일을 보냈다.
"저는 작년 여름에 한국에서 와서 2년간 이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시험 대상자는 아니지만 미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싶어서 수강하고 싶습니다. 영어 실력에 상관없이 들을 수 있다고 하셔서 용기 내어 연락드립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환영해요. 10주 과정 중에 절반은 온라인 미팅으로 하고 나머지 절반은 도서관에서 하게 될 거예요. 수업 시작하기 며칠 전에 선생님께서 공지메일을 보내주실 거예요."
새로 뭔가를 배우는 것도 좋고, 수업을 통해 새로운 동네 사람들을 알고 지낼 수 있게 되면 더 좋지. 학생들은 다들 이민자들일테니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미국 시민권 시험,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 학생들, 그리고 할머니 선생님 Judy
수업 시작 며칠 전 선생님 Judy에게서 안내 메일이 왔다. 메일 받는 수강생은 나를 포함 7명이다.
Judy는 본인 소개, 강의계획서, 도움 될 만한 웹페이지 목록과 첫날 강의자료를 첨부파일로 보내주었다.
공공 도서관에서 하는 무료 수업임에도 진짜 학교 수업 같은 느낌이 들고, 보내주신 자료들도 양이 많고 상당히 짜임새 있다. 아마도 이 수업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었나 보다.
드디어 수업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게 설레기도 하고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나 걱정되기도 하는 마음으로 수업시간에 접속을 했다.
흰머리를 쇼트커트로 한 할머니 Judy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Judy는 학교 선생님을 오래 하셨고, 은퇴하신 지도 오래되었고 이 시민권 수업도 여러 해 해오셨다고 한다.
수강생들도 속속들이 로그인해서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나처럼 미국 사회 또는 영어 공부하려고 온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중동에서 온 듯한 사람 몇몇은 영어를 아예 못하기도 했고, 아이를 안고 돌보면서 수업을 듣고 있는 독일에서 온 엄마도 있다.
스페인에서 온 Damaris와 페루에서 온 Marko는 20년 넘게 미국에 살았고 실제로 시민권 시험 일정을 잡고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수강생들 스펙트럼이 다양하니, 나는 영어를 중간(?) 정도는 하니까 아주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다행이다.
Judy는 우선 미국 시민권 시험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영주권을 받은 후 5년 이상 미국에 거주하고 몇 가지 추가 거주 조건을 채우면 귀화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이때 시험을 신청하여 통과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이 수업은 그 시험 합격을 돕기 위한 것이다.
귀화 시험은 이민국(USCIS) 사무소로 출석하여 1:1 면담형식으로 본다. 당연하게도 영어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미국 사회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국의 역사, 정치, 사회 등에 대해 미리 공개된 100여 개의 문제 중에서 10~20개 정도를 구술시험으로 본다고 했다.
사실 영주권만 있어도 미국에 제한 없이 살 수 있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지내는 것이라 관공서 취직이나 투표를 할 수 없는 등 제약이 있다.
게다가 영주권 갱신을 정기적으로 해야 하고, 미국을 장기간 떠나 있을 수 없고, 큰 범죄에 연루되면 본국으로 추방당할 수도 있다. 시민권을 받으면 충성 맹세를 하고 완전하게 미국인이 되어 기존 국적은 말소된다.
Judy가 담당하는 5주간의 수업에서는 전반적인 미국 역사에 대해 짚어주었다. 미국의 독립 배경과 그 당시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특히 독립 분위기에 대한 설명 중에 내가 새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18세기 중반, 식민지 세금 문제 등으로 아메리카 식민지에 시위가 잦아지자 영국은 군대를 파병했다. 하지만 영국 병사들이 대서양을 건너와 미국 동부에 도착했을 때 머물 수 있는 장소는 마련하지 않은 상태였다.
영국-프랑스 7년 전쟁이 끝난 직후라 영국은 돈이 없었다. 그러니 식민지 같은 곳에 병사들 막사 만들 돈이 있겠는가. 애초에 계획조차도 없었다. 문제가 생기니까 진압을 해야 했고 일단 군대를 보낸 거다.
그럼 병사들은 길바닥에서 잤나? 아니다. 병사들은 몇 명씩 나뉘어 식민지의 일반 가정집(!!)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Judy는 이것을 'Quartering'이라고 했다.
식민지 주민들은 의무적으로 병사들을 집에서 재우고 음식을 해줘야 했다. 무기를 가진 생판 모르는 사람 여럿이 갑자기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살인, 폭행, 약탈, 강간 등 강력 범죄의 증가를 야기한다.
Quartering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식민지 정부는 본국에 병영 건설 요청을 했는데, 영국에서는 식민지 정부 돈으로 직접 병영을 지어 해결하라는 대답을 하여 식민지 주민들의 공분을 사게 된다.
이런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결국 미국의 독립까지 이르게 되는데, 미국인들은 이 사건의 충격이 너무 커서인지 헌법에 Quartering 금지(수정헌법 3조)를 명시해 놨을 정도이다. (참고로 본부를 말하는 Head Quarter는 이 Quartering에서 기원한 말이다.)
Judy는 중간중간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시험 문항과 답을 알려주고 짧은 문장으로 외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앞서 설명한 Quartering은 '미국 독립의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여러 답들 중 하나였다.
말로 하는 시험이니 다양한 표현이 있을 수 있지만, 시험을 볼 때는 정확하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도록 요약된 답을 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시험 문항 중에는 '미국 독립 초기 13개 주 중에 3개를 나열하라.'가 있는데, Judy는 이 문항에서 절대로 매사추세츠(Massachusetts)를 고르지 말라는 팁도 알려주었다. 스펠링이 너무 어렵다고...
수업시간 내내 Judy가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평생을 학교에서 보낸 선생님이었다. 꼭 알아야 할 것을 짚어주고 시험에 대응하는 법을 알려주고 가끔 질문도 하고, 정말 학교에서 수업 듣는 느낌이다.
숙제도 매주 조금씩 나온다. 나는 시험 대상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 따라서 했다. 구경꾼이 되려고 듣는 수업이 아니니까.
아마 한국에서 '30년 경력 은퇴 교사의 귀화시험 역사 5주 강의'같은 걸 하면 돈 많이 내고 들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무료다. 이런 행운이 있나. (물론 세금은 많이 내지만)
Judy는 주변에 가 볼만한 장소들도 소개해 주었다. 알바니에 있는 박물관, 역사적 장소들, 한두 시간 내에 있는 미술관들 등 간단한 설명이 있는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
이런 정보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뉴욕시티, 보스턴 유명한 장소들은 대개 먼 곳이기 때문에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루 이상을 통째로 시간을 내지 못할 땐 그냥 집에 있거나 마트나 다녀오곤 했다.
정작 내가 사는 곳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는데, 좋은 장소들을 요약까지 해서 알려주시니 고마웠다.
멀지도 않은 곳이니 마실 나가듯 다녀오면 좋을 것 같다. 다녀와서 잘 갔다 왔다고 알려드려야지.
이 수업은 이제 매주 빼먹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정이 되었다. 매우 만족.
아내가 다녀온 도서관 영어 회화 초급반 이야기
나는 수요일 시민권 수업, 아내는 평일 아침 영어회화 수업을 듣기로 했다. 초급반은 일주일에 두 번하는데 온라인이 아니고 도서관에 모여서 한다.
아이 학교 보낸 후 시작해서 점심 전에 끝나는 아침 회화 수업은 아내와 같은 이민자 엄마들이 대상인 수업이다. 일하러 가야 하는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시간이니까.
아내는 '굳이 나까지 영어를 배워야 해?'라며 선뜻 내켜하지 않았지만 내가 등 떠밀다시피 해서 등록시켰다.
배우자 자격으로 이민을 오면 한국에서 살 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특별히 영어를 잘하거나 미국 생활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스스로 적응하며 뭔가를 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의 반경이 좁아지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의 범위도 따라서 좁아지게 된다. 나는 아내의 마음속에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지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아내는 미국에서 사회생활을 안 하니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다.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주재원 아내들 뿐이다. 남편 직장과 연관된 사람들이니 매 순간이 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이것 빼고 저것 뻬고 다 피하다 보면 결국 집에서 넷플릭스로 한국 예능만 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는 그러려고 뉴욕에 온 건 아닌데.
나는 아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했다. 그래서 면허도 따도록 했고, 회화 수업도 등록시켰다.
그러면서 나와는 관계없는 자신만의 인간관계를 만들었으면 했다.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첫 수업이 시작하는 날에도 아내는 망설이고 있었다. 앞으로 수업 가는 날엔 점심을 내가 하겠다고 설득해서 간신히 보낼 수 있었다.
몇 시간 뒤 서재에서 혼자 열심히 회사 일을 하고 있는데, 수업 끝난 아내한테서 문자가 왔다.
"수업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났는데 점심 먹고 갈게. 밥 잘 챙겨 먹어요."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바였다. 운 좋게 한국 사람들을 만났구먼. 기쁜 마음으로 혼자 밥을 해서 먹었다.
아내는 세은이가 집에 오기 직전에 돌아왔다. 상당히 신나 있는 표정이었다.
"이 수업이 원래 이 동네 한국 아줌마들 사랑방 같은 곳이었더라고. 학교 피크닉에서 만났던 아줌마들이랑 처음 본 분들까지 해서 5명 정도 있었는데 재밌고 좋았어. 코비드 때문에 한동안 다들 못 만나고 있었나 봐."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장소에서 즐거움을 느꼈나 보다. 그것만 해도 이 회화 수업은 절반 이상 성공이다. 앞으로도 아내가 수업을 잘 나가면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 이 동네 선배분들 아닌가.
"초급반이라 영어를 아예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수업은 꽤 쉬웠어. 선생님은 서너 명 정도 되고 다 은퇴하신 분들이야. 당신이 얘기했던 Judy는 없었어. 아침 시간이라 전부 아줌마들만 있었는데 다들 남편 따라서 이민 온 사람들이더라고. 오늘은 마트 가는 법, 음식 주문하는 법 같은 거 연습했어."
그러더니 아내는 꽤나 인상적인 얘기를 하나 했다.
"어떻게 수업에 오게 되었는지 돌아가면서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스페인 말 쓰는 푸에르토 리코에서 온 아줌마가... 미국에 온 지는 몇 년이나 되었는데 자기는 그동안 집에만 있었대. 근데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니까 영어 실력차이가 점점 벌어진다는 거야. 그러더니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이제 자기랑은 말을 아예 안 하거나 집에서도 아빠랑 영어로만 말을 한대. 그래서 애들하고 대화를 하고 싶어서 영어 배우러 도서관에 왔다고 하면서 막 펑펑 울더라고. 선생님들도 울고,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았어."
이민자들은 각자의 출신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편차가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사회와 격차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적응되지만, 배우자(보통 아내들)는 집에만 있으니 시간이 오래 지나도 처음 왔던 그 상태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도서관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민 온 '여자'들이 여럿 있었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이 사람들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미국에 온 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여자'라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하는 이유는 중동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교육과 사회활동에 굉장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녀보거나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자기 나라의 글로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아들 같은 남자와 함께가 아니라면 거리를 혼자 다녀본 적도 없다.
그 '여자'들은 미국에 와서도 그런 식으로 몇 년을 집에만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직장이나 가정 상황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어른들은 자신의 공부엔 신경 쓸 수가 없으니 그동안 뭔가를 해보지도 않았을 거다.
이런 삶의 모습은 미국으로 이민 왔다고(게다가 아마도 난민으로 왔을 테니) 한순간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Judy는 그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더라도 굉장히 관대하게 대해 주었던 것 같다.
그 '여자'들의 상황은 조금 극단적인 예시지만 우리처럼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다들 별 다를 바 없이 비슷한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인이나 그 가족의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살다 보면 사람들은 고립되고, 소통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지역 사회도 황폐해진다. 그래서 도서관은 이민자를 위한 수업을, 그것도 무료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나온 학생들이 있었고, 도서관 선생님들은 모든 사람을 학생으로 받아서 우리 동네 이웃으로 만들고자 했다. 나는 미국 사회의 이런 배려심에 참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아내에게도 나에게도 도서관 수업은 굉장히 중요한 일과가 되어갔다. 수업에서 가르쳐 주는 영어와 미국 문화를 배우는 것도 중요했고, 다른 이민자들의 이야기도 동병상련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아내에게 새로운 한국 친구들이 생긴 것, 루틴 있는 생활이 만들어진 것은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