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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사우스 다코타 - 러시모어 산과 데블스 타워

August 2022, 여행 13 (2/6)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Rapid City 공항 벽의 South Dakota 관광 포인트들. Mt. Rushmore에 새겨진 대통령은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애브라함 링컨이다. 각각 미국의 독립과 번영, 발전 그리고 화합을 상징한다고 한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미국 중서부 South Dakota, Wyoming, Montana 1/6에서 계속


StateMap.jpg (사진) 여행경로. 첫날은 Mt. Rushmore와 주변에서 멀지 않은 곳들을 서너 군데 둘러본다.
미국 국립공원 체계 : 국립공원(National Park) & 국립기념물(National Monument)

명실상부 국립공원의 나라인 미국에서는 국가 소유의 공원을 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 NPS)에서 여러 등급으로 분류해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적 보존 가치가 높으면서 규모도 크고 다양함이 있는 장소는 '국립공원(National Park)'으로 지정한다. 보존의 필요가 있긴 하지만 국립공원이 되기엔 너무 작거나 다양성이 부족한 곳에 대해서는 '국립기념물(National Monument)'로 지정한다. 국가기념물 급 공원들이 승급하여 국립공원이 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National Monument를 '준 국립공원'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그 둘은 엄연히 다른 유닛이다. 그 외에도 지역의 역사나 자연환경 등을 고려하여 다양한 카테고리로 구분되어 있다. NPS에서 관리하는 것은 자연에 국한된 것은 아니어서 문화 및 역사 관련 국가 공원도 상당히 많다.

(한국에서는 자연 관련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국립공원으로, 역사 및 문화 관련해서는 국가유산청에서 국보/보물/사적으로 완전히 나누어 관리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뒤섞여 관리를 구분하기 어려운 곳들이 있을 텐데, 이런 경우엔 이원화 관리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일정은 국가기념물 세 곳을 지난다. 지난번에 다녀온 아카디아나 이번 여행 최종 목적지인 옐로우스톤 같은 국립공원과 국가기념물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첫날 : South Dakota - Mt. Rushmore, Custer State Park, Jewel Cave

Mt. Rushmore에 미국 대통령 얼굴은 언제, 왜 새긴 거야?

사우스 다코타 주 제1의 관광지는 뭐니 뭐니 해도 러시모어 국립기념물(Mt. Rushmore National Monument)이다. 미국 대통령 4명의 얼굴이 큰 돌산에 새겨진 곳, 이곳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이게 왜 있는 걸까?

사우스 다코타는 주 전체에 내세울만한 대도시가 없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라서 미국 내 어느 곳에서도 접근성이 좋지 않다. 우리가 지금 미국에 살고 있으니 여행 올 생각을 했지, 한국에서 출발해서 오는 거였다면 러시모어는커녕 사우스 다코타에 올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역사의 상징물인 것은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이것만 보러 오기엔 주변에 뭐가 없는 곳이다. 그러니 이곳에 왜 이런 거대한 조각상이 있어야 했는지 궁금하다. 미국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오기 쉽지 않은 완전 시골 동네인 이곳에, 그것도 달랑 이것만 있는 이유는 뭐지?

궁금해서 그 역사를 찾아보니, 허무하게도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순전히 1920년대 사우스 다코타 주의 관광 증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대통령의 얼굴을 조각하려던 것도 아니었고 꼭 이 장소여야 했던 것도 아니어서 전적으로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에는 인근의 나름대로 유명 관광지인 윈드 케이브 국립공원(Wind Cave National Park), 배드랜 국립공원(Badlands National Park), 커스터 주립공원(Custer State Park) 등이 있었는데 이것에 더하여 사우스 다코타 주의 관광자원에 보탬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러시모어는 방문객 수에서 사우스 다코타 내의 다른 모든 관광지를 압도하고 있다. 아마 자유의 여신상 다음의 미국의 상징물이 아닐까?


현재의 모습대로 조각하는 데는 14년이나 걸렸는데 조각상 완공 직전에 원래 조각가가 사망하여 그 아들이 마무리했다. 미국 대공황 시기를 거치게 되면서 상당히 지연되었고 자금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원래 계획은 대통령들의 얼굴만이 아니고 허리까지 새기도록 디자인했지만 시간과 예산 문제로 얼굴만 새기는 것으로 수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일 먼저 조각을 시작한 조지 워싱턴은 목 아래 일부가 조각되어 있다.)


사실 이 산은 원래 원주민들의 땅이다. 19세기 초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을 내쫓으면서 당시엔 별로 쓸모없어 보이던 러시모어 산에 그들을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 있게 약속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자 원주민들을 또 한 번, 러시모어에서 조차 쫓아냈다. 그리고는 미국의 역사를 기록한다며 거대한 조각상까지 새겨 넣은 것이다. 이 땅의 원래 주인인 그들에겐 아마도 이 조각상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의 역사일 것이다.

땅을 뺏기고 나서 100년 뒤인 1980년대에 이르러 원주민의 후손들은 긴 소송을 통해 1억 달러에 달하는 배상액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러시모어 산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네 명의 대통령은 각각 미국의 독립과 번영, 발전, 화합을 상징하고 있지만 그 뒤편엔 어두운 역사가 남아 있다.


Mt. Rushmore : 구름 속으로 사라진 미국 대통령들

래피드 시티(Rapid City, SD) 공항에서 러시모어 산은 그리 멀지 않다. 2~30분 정도? 도심에서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깨끗하고 쭉 뻗어 있으며 언덕과 숲 외에는 특별히 보이는 게 없다. 한국에서도 군 단위의 지역 대표 관광지 주변은 그 지역의 모든 행정력을 쏟아붓기 때문에 생각보다 잘 꾸며진 경우가 많은데, 러시모어 가는 길이 딱 그런 느낌이다.

산 정상은 높이로 치면 지리산의 노고단 정도 되는데 정상 근처에는 아주 넓은 주차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게이트를 통과하면 문화재 입장료는 없지만 주차비($10)는 내야 한다. 여기는 확실히 관광버스들이 많이 와 있다. 사방은 나무가 우거진 숲 속인데 주차장을 비롯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약간 이질감을 준다. 어쨌든 드디어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나오면 입구 사무동을 지나서 미국 50개 주의 깃발이 꽂혀있는 넓은 길을 따라 걸어가게 된다. 원래는 러시모어 산을 바라보며 그 길을 걷는 건데... 날이 흐려서 아예 보이질 않는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그런가? 순간 세은이의 표정에서 불안함이 느껴진다. '가까이 가면 그래도 좀 보이지 않을까?'라고 달래고 달래서 제일 안쪽까지는 간다. 여기에 서면 사진에서 보던 그 모습 대로 산 위의 대통령들 조각이 보여야 하는데 구름에 가려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대위기다. 아내와 나는 말을 아낀 채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20220826_115406.jpg (사진) Mt. Rushmore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세은이는 대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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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Mt. Rushmore 산책길 안내문. 길을 따라가면 작은 박물관이 있다. (오른쪽) 조각상 바로 밑에 떨어져 있는 돌 조각에는 건축 당시의 작업 흔적이 남아있다.

여기가 뉴욕시티라면 무리해서 다음에 다시 올 수도 있겠지만 사우스 다코타는 내 평생에 다시 올 수 없는 곳이다. 몇 시간이나 비행기 타고 이거 보러 다시 오는 건 말도 안 된다. 어떻게든 구름이 걷히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아, 기다릴게 아니다. 조각상 바로 앞까지 가서 어떻게든 인증사진을 찍어내자. 미국에 평생 산다고 해도 두 번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구름 아니라 폭풍우가 치더라도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야 한다.

전망대에서 산책길을 따라 5분쯤 가면 조각상을 바로 밑에서 볼 수 있었다. 가까이 왔지만 여전히 흐릿하게 보이고 조금 나아졌을 뿐 만족할 만한 결과는 없다. 그나마 조지워싱턴 석상 밑으로 수북이 쌓여있는 돌에 당시의 공구 자국을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게 성과랄까. 안 되겠다 계속 가보자.

산책길의 반환점에 가면 14년이 대업을 마무리한 아들 조각가의 이름을 딴 'Lincoln Borglum Museum'이 있다. 이곳에서는 초기 조각 디자인, 사용했던 장비의 일부, 당시 역사에 대한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고 안내사의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집중하지 못하던 우리 어린이도 여러 가지 관심 있게 쳐다본다. 박물관을 다 보고 나오니 어느새 구름이 걷히고 쨍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정말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 이제는 정상이 깨끗하게 보인다. 세은이도 아내도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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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조각상의 원래 모델은 허리까지 조각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오른쪽) 구름이 걷히고 드러난 대통령 조각상. 제일 먼저 조각한 조지 워싱턴만 목 아래가 조각되어 있다.
20220826_124721.jpg (사진) Mt. Rushmore의 모습. 미국 각 주의 깃발이 꽂혀있는 길을 지나서 간다.

다시 돌아와 전망대 앞에 서니 드디어 러시모어의 대통령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다. 왼쪽부터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시어도어 루스벨트 그리고 애브라함 링컨. 얼굴 하나의 높이가 20m에 달한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 이곳에 온 사람들 모두 행복해 보인다. 지금 막 도착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지. 아까 흐린 날씨에 그냥 돌아간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대실망의 분위기 속에 무심하게 지나쳐 왔던 각 주의 깃발이 꽂힌 길에서도 꼼꼼하게 '뉴욕'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이 즐거워라. 너무나 다행이네.

이렇게 한 시간 남짓 돌아보는 것으로 러시모어는 충분히 다 본 것 같다. 역시 국립공원이 아닌 국립기념물이라 볼거리가 적은 편이다. (국립공원이 사기적으로 크고 넓은 것이지만...) 우리는 목적을 달성한 행복한 기분으로 기념품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음 일정을 위해 운전을 시작한다.


(일정상 들르지 못했지만, 러시모어 근방의 '크레이지 호스 기념관(Crazy Horse Memorial)'도 가 볼만한 곳이다. 자신의 땅에 러시모어에 미국 대통령 석상이 건설된 것에 분노한, 땅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들이 만들고 있는 초거대 석상인데, 라코타족의 용맹한 족장 '미친 말(Crazy Horse)'을 새기고 있다. 러시모어가 완공된 뒤 4년 후인 1948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건설 중이고 완공 일자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완성만 된다면 규모면에서는 아마 세계 최대 석상이 될 것이다.

크레이지 호스는 미국 연방정부나 주정부의 자금 지원 없이 원주민들의 자본(입장료 등)으로만 건설되고 있다. 빼앗긴 땅을 대표하는 영웅의 석상을 땅을 빼앗은 자의 돈으로 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크레이지 호스는 19세기 미국의 서부 확장에 대항하여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the Little Bighorn)'를 대승으로 이끈 것으로 유명한데, 이 전투는 훗날 영화 '아바타 1편' 마지막 전투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Custer 주립공원 - Needle's Eye

러시모어 바로 옆은 커스터 주립공원(Custer State Park, SD)이다. 일정 준비를 하면서 찾아봤을 때, 커스터 주립공원은 시간을 들여서 볼거리가 충분히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성당 첨탑처럼 뾰족 솟은 기암들이 몰려있는 'Cathedral Spires'도 유명하고 바이슨 같은 야생동물을 사파리 하듯 볼 수 있는 'Wildlife Loop Road'도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 일정상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고 가야 하나 고민했다가 짧게라도 들러보는 코스로 정했다. 왜냐면 커스터 주립공원을 거치지 않고 와이오밍으로 가려면 먼 길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인데, 차라리 주립공원 입장료를 내고 짧은 길로 가면서 뭔가 더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주립공원은 4학년 패스가 적용되지 않는다. 차 한 대 입장료는 $30이고 티켓은 1주일간 유효하다.)


러시모어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산길을 따라 이동하면 Black Hills 산지의 정상 지대를 지나게 된다. 이곳은 화강암으로 된 암석 제대로 되어 있고 독특한 모양의 바위가 많다. 특히 '바늘의 눈(Needle's Eye)'이라고 부르는 바늘귀처럼 생긴 15m 정도의 큰 바위가 유명한데 가늘고 긴 구멍이 어떻게 바위 한가운데 생겨났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차를 세워놓고 한참을 봤는데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꾸미기]20220826_141005.jpg (사진) Custer 주립공원의 Needle's Eye. 이름이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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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Needle's Eye Tunnel.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이다. (오른쪽) 터널을 지나면 보이는 Cathedral Spires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Needle's eye Tunnel' 때문이기도 하다. 차량 소통을 위해 산 정상의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만든 터널인데 양방향 통행이 안 되는 굉장히 좁은 길이다. 그런데도 버스도 지나다닌 다니 정말 말이 되나 싶다. 커스터 공원 내에 이런 터널이 여기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다른 것에 비해 유달리 길고 좁아서 재밌는 경험이 되는 것 같다.

양방향 통행이 안되니 터널을 지나기 전에 입구에 차를 대고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앞차를 따라 터널에 진입하니, 창문 옆이 바로 바위 벽이다. 뒤차는 용감하게 차를 바짝 붙여서 손을 내밀어 만져보려고 한다. 렌터카로 모험을 할 수는 없으니 아슬아슬 조심조심 빠져나간다. 생각보다 긴 터널을 통과해서 나와보니 반대편엔 터널에 진입하려는 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산맥을 따라 산 정상에 있는 멋진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Cathedral Spires'의 사진을 찍는다. 저 멀리 산 아래 구릉에는 바이슨 가족이 콩알만 하게 보인다. 시간을 더 쓰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이 길을 따라 커스터 주립공원을 빠져나가야 했다. 갈 길이 멀다.

(영상) Needle's Eye Tunnel을 지나는 모습.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좁다.
Jewel Cave National Monument

주얼 케이브(Jewel Cave National Monument)는 사우스 다코타에서 와이오밍으로 나가기 직전에 있는 동굴 관광지이다. 입장료는 없는데 투어 가이드 비용($16)이 있다. 근데 투어 예약을 안 하면 동굴을 들어갈 수가 없어서 사실상 입장료나 마찬가지다. 가이드 비용은 4학년 패스가 적용되지 않는다. 동굴 바닥에 물이 흐르는 곳이 있으니 슬리퍼나 크록스를 신고 오면 안 된다고 한다. 관람객의 건강 때문이 아니라 동굴 내 생태계의 세균감염 때문이란다. 굉장히 꼼꼼하다. 예약된 시간에 모인 사람들과 방문자 센터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면 동굴의 입구까지 바로 갈 수 있다.

동굴 내부는 그 이름처럼 매끈한 모양이 아니고 여러 가지 색으로 된 작은 결정 조각으로 덮여있다. 검은색, 하얀색, 빨간색, 보라색 등 알갱이 보석 같은 모양이지만, 가이드에 따르면 여기가 실제 보석 광산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광물의 결정일뿐 보석으로 값어치는 없으니 굳이 가져갈 필요는 없단다. 아직 탐사가 완료되지 않아서 전체 크기를 추측만 하고 있는데 아마도 170마일(~270km)이 넘는 큰 동굴일 것이란다. 실제 사람에 의해 탐사가 된 건 5% 정도뿐이라고 하니 역시 미국은 스케일이 남다르다.

동굴의 출구 쪽에는 Jewel Cave의 하이라이트인 'The Bacon'이 있다. 이것은 붉은색과 하얀색 결정이 층을 이루며 길게 늘어진 모양의 바위인데 마치 베이컨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동굴 관람을 마치고 나니 날이 흐리고 비가 오려고 하고 있다. 서둘러 차에 타서 다음 장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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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Jewel Cave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 동굴 입구로 연결된다. (가운데) 보석 모양의 알갱이로 덮여있는 동굴 벽면 (오른쪽) Jewel Cave의 'The Bacon'

첫날 : Wyoming - Devils Tower

황야를 달리며 폭풍 속으로

사우스 다코타를 떠나서 와이오밍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고 핸드폰에는 긴급 문자가 뜬다.

"이 지역에 토네이도가 지나고 있으니 야외에 있다면 지금 바로 가까운 대피소로 피하세요."

우와. 뉴스에서만 보던 미국 토네이도를 여기서 만나는 건가?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미국에도 한국처럼 재난문자가 있어서 날씨나 각종 사고를 알려준다. 아동 실종에 대한 긴급문자는 'Amber Alert'라고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는데 Amber는 실종 살해되었던 아이의 실제 이름이다.)


지금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지나고 있다. 대피소 같은 건 보이지도 않고 이런 곳에 차를 세웠다가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 마을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빨리 지나가야겠다. 바람을 헤치며 달리다 보니 저 멀리 국지적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 보인다. '세은아 우와, 저기만 비가 저렇게 온다. 신기해.'라고 했는데 몇 분 지나서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폭우의 한가운데를 지나야 하는 것을 깨닫는다. 순간 웃음기가 사라지고 운전대를 꽉 잡았다.

말 그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우를 무사히 빠져나왔고 30분쯤을 더 달렸을까? 어느덧 하늘이 개고 무지개가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그것도 쌍무지개다. 러시모어에서 함께 했던 맑은 하늘의 기운이 여기서도 이어지는 것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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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토네이도 경고 문자. (오른쪽) 폭우를 내리고 있는 토네이도의 일부. 사진 중앙 오른쪽에 폭우가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저 곳을 지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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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폭우가 그치고 나타난 쌍무지개 (오른쪽) 운전하며 흔하게 볼 수 있는 독특한 퇴적 지형. 이 정도로는 관람 포인트도 못 되는 지역이다.
Devil's Tower, Wyoming

폭풍우를 헤치고 우리가 와이오밍에서 가려는 곳은 악마의 탑이라고 하는 '데블스 타워(Devil's Tower)'다. 종교적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저 악마가 세웠다고 해야 믿을 만큼 주변과 대비되는 모양 때문에 이름 붙여진 큰 바위 산이다. 게다가 미국의 첫 번째 '국립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워낙 독특한 모양이라 멀리서부터 알아볼 수 있다. 주변에 산이 없으니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아주 크고 높은 바위산인데 정상이 평평하고 뭉툭하게 생겼다. 어떻게 이런 게 이런 곳에 혼자 있을 수 있지? 누가 일부러 만든 것도 아닌데.

주차장에 도착해서 좀 더 가까이 보니 그 모습이 더욱 기괴하게 느껴진다. 평지 위에 264m나 우뚝 솟은 뭉툭한 바위 모양 자체도 신기하지만 그 겉면이 마치 뭔가에 할퀸 듯 기다랗게 세로로 갈라진 것이 정말 악마의 탑이라고 불릴 만큼 독특하다.

데블스 타워 바로 아래까지 나 있는 15분 정도의 산책길에는 이 산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과거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등 여러 가지 설명이 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은 엄청나게 거대한 곰이 바위산을 발톱으로 바위를 할퀴어서 생긴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큰 곰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과거의 사람들은 이 기괴한 모양을 설명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데블스 타워의 생성에 대해 몇 가지 서로 다른 가설이 있지만 가설들이 공통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지하 화산활동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수천만 년 전, 지하 화산 활동으로 마그마로 채워져 있던 부분(혹은 일부가 지상으로 새어 나온)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급속히 냉각하면서 바위가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주변의 무른 퇴적층이 풍화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겉면의 길게 할퀸 듯한 모양은 마그마가 급속히 냉각되면 나타나는 전형적인 주상절리라고 한다. 그렇지, 이 정도 발톱을 가진 곰이 있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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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멀리서도 보이는 Devil's Tower (오른쪽) Devil's Tower에 대한 전설을 알려주는 설명문. 초거대한 곰이 할퀴어 바위 겉면에 주름이 생긴 것으로 믿었다.
20220826_192749.jpg (사진) 가까이서 본 Devil's Tower. 해가 지는 것에 따라 돌의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산책길을 따라 데블스 타워의 바로 아래까지 가 보았다. 기본적으로 회색과 초록색이 섞인 듯한데 마침 해가 지고 있어서 석양이 드리우니 색이 더 신비하다. '곰이 할퀸 듯'한 돌기둥들은 볼 수록 신비하다. 정말 과거 원주민들은 이걸 보면서 '신'이나 '악마'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는 없었을 것 같다.

그 와중에 더 신기한 건 등반 장비를 한 채로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 수직에 가까운 바위산을 올라갔다 왔다고? 역시 미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람들이 많다. (NPS 홈페이지에서 등반 예약을 하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DevilsTower.jpg (사진) Devil's Tower 형성과정에 대한 4가지 가설 (출처 : NPS.gov)


이렇게 새벽부터 뉴욕에서 시작된 첫날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뉴욕에서 4시에 일어났으니 15시간을 깨어있는 상태다. 미리 예약해 둔 Casper, WY의 호텔까지는 3시간 30분을 더 가야 한다. 부디 아무 일 없기 만을 바라며 최대한 큰길... 미국 밤 운전은 너무 위험하다. 황무지에서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는 긴 긴 밤운전 끝에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내일도 먼 길 운전해야 하니 일찍 자야 한다.


황야를 가로질러 Yellowstone National Park까지 3/6로 계속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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