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022, 여행 13 (1/6)
(커버 이미지 : Wyoming의 흔한 도로 풍경. 사람이 살지 않아 아무것도 없는 평원은 정말 황량하다. 나무 한그루 없는 곳에 세워져 있던 어느 카우보이 목장의 간판마저 반갑게 느껴졌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세은이의 4학년 패스는 말 그대로 4학년 동안만 유효하기 때문에 방학이 끝나는 9월이 되면 쓸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개학을 앞둔 8월 말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당장 국립공원으로 떠나야 한다. 지난달에 아카디아 국립공원을 다녀오고 나서 미국 국립공원을 어떤 식으로 다녀야 하는지 파악이 됐다. 아주 넓은 지역을 차로 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은 곳에 잠시 들렀다 가는 방식. 너무 넓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곳이다.
지난달 여행으로 연습은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국립공원 투어를 가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번에 가야 할 곳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이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곳은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1872년에 미국의 첫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국가가 만드는 공공의 공원'이라는 개념을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다. 물론 옐로우스톤을 가봐야 할 이유는 역사적 의미만 있어서는 아니다. 이른바 '황야의 무법자'의 시기, 19세기 그 시절에도 이 지역을 개인의 소유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될 정도로 신비롭고 복잡한 자연의 경관이 있는 곳이고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옐로우스톤은 워낙 넓기도 한데(~8,900 km2), 지난달에 다녀온 아카디아 국립공원의 40배, 제주도의 4배보다 크고 충청남도 전체 보다도 크다고 한다.
우리 집에서 옐로우스톤은 2,400마일(~3,850km) 넘게 떨어져 있다. 만약 운전해서 다녀온다면 왕복 5,000 마일(~7,700km) 가까이 단기간에 운전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가는데만 4일이라 이번엔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서울에서 태국 방콕까지 가는 정도의 거리인데 운전해서 갈 생각을 했다는 게 좀 어이없긴 하다. 키 웨스트를 운전해서 다녀왔더니 확실히 자신감이 생겨서 그렇다.
주말 포함 4박 5일 일정 정하기가 좀 만만치 않다. 아이들 방학 막판이라 여전히 성수기이기 때문에 비행기나 숙소 사정이 여의치 않다. 특히 아내가 옐로우스톤 공원 안에 있는 숙소를 가고 싶다고 하는데 우리가 가는 때엔 비어있는 날이 거의 없다. 게다가 세은이도 원하는 것이 있어서 최대한 절충점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세은이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여, 옐로우스톤에서 8시간 넘게 떨어진 러시모어 마운틴(Mt. Rushmore)의 미국 대통령 조각상을 일정에 추가하기로 했다. 옐로우스톤에서 굉장히 멀지만 이번 기회 아니면 이 근방을 올 일이 없으니 이동 중에 최대한 여러 가지를 보는 것도 좋겠다. 황무지를 가로질러 운전하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다. 그렇게 아내와 몇 날 며칠을 머리 맞대고 고민해서 최종적으로 일정과 경로를 확정했다.
1. 새벽 비행기로 알바니 공항에서 출발, 시카고 경유, 사우스 다코타 래피드 시티(Rapid City, SD) 공항 도착
2. 렌터카 받은 뒤, 러시모어 마운틴과 주변 관광 포인트 관람 후 중간 숙소(Casper, WY) 이동
3. 다음날, 옐로우스톤으로 이동 후 공원에서 2박. 일정을 마치고 몬태나 보즈만(Bozeman, MT)에서 귀가
찾아보니 러시모어 마운틴 주변엔 볼만한 곳들이 몇 군데 있어서 미국 대통령들만 달랑 보고 가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세은이의 4학년 패스 덕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니 가는 길에 있는 국립공원이나 국립 기념물은 최대한 일정에 넣었다. 우리의 여행경로는 사우스 다코다에서 시작해서 와이오밍을 운전으로 동에서 서로 완전히 가로지르고 옐로우스톤까지 가게 된다. 대충 거리를 재보니 800마일 정도 되는 것 같다. 알바니에서 시카고 갈 때 정도의 거리니까 큰 부담은 없을 것 같다.
이번 여행지는 그야말로 옛날 '웨스턴 무비, 서부 영화'에 나오는 지역이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를 나눌 때 기준이 여러 가지지만, 개척시대 때 '서부'라는 것은 미시시피 강의 서쪽을 의미했다. 이것은 동부와 서부를 구분 짓는 가장 고전적인 정의이다. (미국 농구 NBA는 아직도 이에 따라 동부와 서부로 소속 리그를 나누고 있다. 단, 멤피스 그리즐리스 예외.) 우리가 8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하는 와이오밍은 영토의 대부분이 황야와 평원으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서부' 느낌이다. 솔직히 LA나 시애틀 같은 대도시가 서쪽에 있다고 해서 소위 '웨스턴' 시대의 배경은 아니다. 쉐인(Shane 1953), 언포기븐(Unfogiven 1992) 같은 명작 웨스턴 무비에 나오는 황량한 그곳이 바로 우리가 가려는 와이오밍이다. 이번에 그야말로 진짜 서부를 운전하게 되는데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번엔 집 근처 알바니 공항에서 출발한다. 뉴욕시티의 세 공항이 비행기 편수도 많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공항까지 세 시간이 넘는 이동시간이나 공항 숙박, 여행기간 동안 주차비 등 추가 비용까지 다 따져보면 저렴하지만은 않다. 알바니 공항은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고 공항 주차장 여유가 많은 곳이어서 확실히 마음이 간편하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어제 챙겨둔 짐을 차에 싣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서 공항으로 향했다. 6시 45분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를 경유해서 사우스 다코타의 래피드 시티로 간다. 래피드 시티는 Mountain Time Zone이라서 뉴욕보다 2시간 뒤에 있다. 2시간 무이자 대출받고 간다. 이래서 서쪽으로의 이동은 뭔가 이득 보는 느낌이 든다. 도착하면 그곳 시간으로 10시 30분쯤 될 것이다.
처음엔 긴장되던 비행기 탑승 절차도 이젠 좀 편안하다. 무사히 탑승장에 들어와서 세은이도 나도 비몽사몽간에 비행기에 오른다. 이대로 푹 자면서 가면 좋겠지만 경유를 해야 하니 조금은 피곤할 것 같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Chicago O'Hare)을 경유해서 아주 작은 규모의 지역공항(Regional Airport)인 래피드 시티 공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너무 없다. 정말 조용한 동네인가 보다.
미국 공항에서 렌터카 찾는 방법
일단 짐부터 찾고 곧바로 렌터카를 찾으러 간다. 호텔 체크인 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약을 했는데요...'라거나 '제 이름은요...' 이런 말 아예 하지 말고 직원하고 눈인사정도만 하고 다짜고짜 신분증부터 내민다. 이러면 역시 직원이 좋아한다. 체크인을 쉽게 하는 나만의 팁이다. 직원은 신분증의 이름을 보고 예약 내용을 확인한 뒤 주유 옵션을 구매할 것인지,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옵션을 구매할 것인지 등을 묻는다.
- 주유 옵션 : 차량 반납 시 기름이 가득 채워져 있지 않은 경우 추기 비용을 내야 하는데, 체크인 시 이 옵션을 구매하면 주유 관련 추가 비용이 면제. 이 옵션을 구입하면 반납할 때 차에 기름이 없을수록 이득.
- 톨비 옵션 : 유료 고속도로 통행을 하고 나면 차량 반납 이후에 정산되어 추가 카드 결제가 발생하는데, 이 옵션을 구매하면 톨비 관련 추가 비용을 면제. 미국의 고속도로 톨비는 지역별 천차만별이다.
경험상 이런 옵션들은 굳이 필요하지 않으니 전부 'No thanks' 한다. 옵션 같은 걸 사면 여행하다가 본전 생각에 나도 모르게 행동에 제약이 걸리는 것 같다. 그냥 쓴 대로 돈 내는 게 가장 속 편하고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다 마치고 나니 내가 차 키가 여러 개 들어있는 바구니를 내밀더니 하나 골라가라고 한다. LA에서는 차 안에 차 키가 있으니 주차장에서 아무거나 타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그냥 내가 골라서 타라고 한다. 'Standard SUV'라고 적힌 바구니에서 키를 하나 골라서 주차장으로 갔더니 'Ford Explore'가 '깜빡'하고 우리를 반긴다.
'분명 스탠더드를 예약했는데 대형을 주네?? 미국에선 이 정도도 스탠더드인가?'
뒷자리가 엄청 넓다며 매우 좋아하는 세은이를 태우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다.
비가 살짝 오려고 하는 날, 우리는 미국 대통령 석상이 있는 러시모어 마운틴으로 향했다.
South Dakota - Mt. Rushmore와 Devil's Tower 2/6에서 계속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