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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Nov 01. 2024

걱정이라는 이름의 덫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이 있다

@Maksim Goncharenok by pexels


걱정이란 대개 끈덕진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한 번 피어나기 시작하면 온갖 곳에 밑도 끝도 없이 들기 시작한다. 원체 잔걱정과 생각이 많았 터라 로서는 온갖 생각 덩어리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끝내 두통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면 완전히 지나쳤던 것 같은 오래된 기억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다. 그것은 수치심을 자극하거나 좌절감을 주면서  괴롭히기도 했고, 온갖 단편적인 생각들이 아무렇게나 맞물려 미신적이거나 비합리적인 믿음으로 결합되기도 했다.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은 부지불식간에 아주 완고하게 삶을 점령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라면 전혀 개의치 않거나 크게 신경쓰지 않을 일들도 숨을 막히게 만든다. 수많은 사건들에서 연이나 운이라는 요인은 배제된 채 오로지 나 자신을 공격해오는 그럴듯한 이음새가 생겨나 삶을 옭아맨다. 그러한 강박적이고 편집증적인 사고는 자아를 갉아먹고 병들게 다. 인간이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작은 것에 아주 쉽게 흔들릴 수 있고,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해버리는 슬픈 인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다.


한창 온갖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지냈을 때, 나는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황했다. 오밤중에 슬리퍼 잠옷 차림으로 집 앞으로 뛰쳐나갔다가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동네 바깥으로는 벗어나지 못하고 주춤거리며 집으로 돌아던 날이 있었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무거운 가방을 맨 채로 전혀 가본 적 없는 장소를 몇 시간 내내 쏘다니기도 했다. 가족들이 잠든 시각에 멀쩡하게 잘 입고 다니던 옷들을 쇼핑백 한 가득 쑤셔넣고 내다버린 적도 있었다. 그 옷들이 물욕과 허영심의 산물처럼 여겨져 도덕적인 수치심 느껴졌고, 나라는 인간 결점으로 느껴졌던 탓이었다. 개중에는 필요성이나 실용성을 따져보지 않고 단지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사놓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새옷들도 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렇게 해야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렇다, 그것은 지나친 통제욕구와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로부터 비롯된 압박감이 만들어낸 부정적 의식이었다.


시간이 지나 안달복달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음을 깨닫고, 마음에 차츰 여유가 생기면서 내 소유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던 기억조차 암울한 마음 끼워맞추며 제멋대로 상황을 정의하고 판단 자괴감과 자기혐오에 휘말려던 것뿐이었다. 시간이 지나 버려진 옷들아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어디론가로 실려갔을 것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몇 차례 바뀐 약을 통해 나는 천천히 일상 속에 무리없이 녹아 시작했다. 서서히 나 자신의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여유와 힘이 생겼다. 그러자 비로소 과거의 내가 가엾고 딱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지금의 나는 자기연민이 나쁜 것이 아니며, 적정 수준의 자기연민은 건강한 정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나라도 나를 가엾게 여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있다. 우리 존재는 기계나 더미 인형이 아니다. 우리가 단지 끝없이 고통받고 누군가에게 그것을 기쁨으로 환원시켜주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걱정과 불안은 살아있는 존재라면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매몰되어 시야가 좁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참 좋겠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가 우려하는 대부분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창조의 힘이 있다. 걱정하느라 당신만의 빛과 울림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걱정과 불안을, 위기와 고난을 인생의 패치워크로서 기워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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