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냉담함 이면의 뜨거움
<장자는 무엇을 말했나> 서문 번역
추천사
장자, 냉담함 이면의 뜨거움
어릴 적 역사를 공부할 때면, 옛사람들의 삶이란 참 고달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사람들은 평균 수명이 짧았을 뿐 아니라 전란까지 자주 겪어야 했다. 남보다 앞서 나갈 방법으론 과거 시험이 있었는데, 이백(李白)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예비 시험 자격조차 없었다. 범진(范進)이 과거에 붙은 후 기뻐하다 못해 돌아버렸다는 우습고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이토록 열악한 조건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살았을 옛사람들을 떠올리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훗날 공부의 수준이 깊어지면서, 나는 인간의 고통이 외부 환경에 전적으로 달려있진 않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고통을 경험하느냐 아니냐는 마음이 외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달려 있다. 현대는 분명 고대에 비해 훨씬 안전하며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다. 하지만 과연 현대인이 고대에 비해 더 편안하게 살아간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사람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문화다. 옛날 과거 시험을 보러 상경하는 선비는 일반적으로 두 종류의 책을 챙겨두어야 했다. 하나는 사서(四書)인 <대학>, <중용>, <논어>, <맹자>였는데, 이는 과거에 응시하려면 심혈을 기울여 읽어야 하는 필수 교재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머리맡에 둘 <장자>였는데, 시험에 떨어졌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며 읽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이렇듯 중국인의 정신은 유가의 강인함과 용감함 뿐 아니라, 물외(物外)에서 소요하는 도가의 경지도 아우르고 있었다. 도가의 정신은 사람들의 마음에 탄력을 주었고, 좁은 시야에 갇혀 스스로를 벼랑으로 내모는 불행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심지어는 공자 본인도 "도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뗏목을 띄워 바다로 향하겠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장자>는 도연명을 격려해 주었고 이백을 위로해 주었으며, 소동파와 동행했고 왕양명을 깨우쳐주었다.
나는 사실 <장자>가 <논어>보다 더 현실 참여적인 책이라고 본다. 우리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던 사람은 공자가 아니라 장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한 개인의 생존과 행복에 대해서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반면 공자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그의 말처럼, 사람들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하기만을 요구했다. 전국시대의 참혹한 현실에 주목한 장자는 이와 달랐다. 그는 지배계급이 스스로 변화할 것이라는 이상주의는 범이 스스로 가죽을 내놓길 바라는 꼴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장자는 개인이 목숨을 지키고 삶을 가꿀 방법, 혹은 진흙탕 같은 삶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방법을 궁구했다. <장자>는 '인간세'부터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줄곧 고개를 들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요유'를 읽으며 무대無待의 경지를 이해하는 것은, 세상살이의 부자유와 절망을 절절히 느낀 다음에야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는 말이다.
장자는 쓸모도 없이 큰 나무를 부러워했다. 그 나무는 목수의 재목으론 부적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잘 살아왔다. 쓸모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 나무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아니겠는가? 장자는 혜시(惠施)처럼 사당에 모셔진 거북 껍데기가 아닌, 진흙탕에서 꼬리를 끌며 마음 편히 천수를 누리는 거북이가 되길 원했다. 사람이 일하다 과로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리는 요즘, <장자>는 돌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닐까.
한펑지에 선생님은 장자를 일러 "시선은 차갑지만 마음은 뜨겁다"라고 한 적이 있다. 안회의 말과 행동을 빌려 공자를 풍자해 대는 장자는 얼핏 속세에 초연한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장자는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공자와 안회라면 생각지도 못할 문제에 대해 애태우며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고금을 통틀어 이와 같은 철학적 이치를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으로 엮을 수 있었던 사람 역시 장자뿐이다.
한(韓) 선생님은 이 책에서 생소한 한자의 독음을 전부 표시해 두셨고, 상세한 해설까지 덧붙이셨다. 나는 독자들에게 먼저 묵독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이해를 한 후, 두 번째로는 소리 내어 읽기를 권한다. 그렇게 하면 장자의 아름답고 다채로운 필치와 기상천외한 상상력에 탄복하게 될 것이다. <도덕경>이 짧은 시라면, <장자>를 소리 내어 읽는 행위는 장편 서사시를 읽는 것에 빗댈 수 있겠다.
<도덕경은 무엇을 말했나>를 탈고한 후, 이어서 <장자는 무엇을 말했나>까지 써 주신 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현대인들에겐, 기억 저편에서 빛을 잃어가는 전통에 닿을 교량이 필요하다. 이어지지 못한 자는 떠돌이가 될 테지만, 실마리를 찾은 자는 고향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