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사발령은 어떻게 정해질까

by Just Be

지난 이야기


07화 신입직원의 반복되는 지각을 보며




신입사원 연수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창밖의 계절은 어느덧 늦가을로 접어들어 은행나무 잎들이 노랗게 거리를 덮고 있었지만, 연수원 강의실 안은 50명의 청춘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계절을 잊은 듯 후끈거렸다.


그들은 지난 몇 주간 회사의 비전을 배우고, 동기애를 다지며, 학생의 티를 벗고 직장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통과의례를 치렀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낙관이 공기 중에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관문은 필기시험도 임원 면접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한 장의 얇은 종이, '희망 근무지 조사서'였다.


강의실 뒤편에 서서 그 종이들이 작성되는 풍경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그들이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적어 내려가는 것은 단순한 지역명이나 부서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향후 2년, 아니 어쩌면 직장 생활 전체의 색깔을 결정짓는 삶의 좌표였다. 그리고 그 종이들이 취합되어 내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이는 순간, 나의 고통스럽고 외로운 야근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통의 대기업이나 일반적인 조직이라면 '본사'가 꽃이다. 기획, 전략, 인사 같은 핵심 부서는 누구나 선망하는 엘리트 코스이자, 야망 있는 신입사원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1지망'인 경우가 많다. 그곳에 있어야 승진이 빠르고, 회사의 핵심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으며, 소위 '라인'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 공공기관인 우리 회사의 속사정은 정반대였다. 이곳에서 본사는 '꽃'이 아니라 '등대'라고 불린다. 모두가 잠든 밤바다를 홀로 비추며 밤새 꺼지지 않는 곳.


쏟아지는 국회 요구 자료, 상위 부처의 감사 대응, 경영 평가 보고서 작성,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임원의 긴급 지시사항으로 인해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사치스러운 농담처럼 여겨지는 기피 대상 1호였다. 본사 직원들의 책상 위에는 영양제 통과 야근 식대 영수증이 훈장처럼, 혹은 흉터처럼 쌓여 있곤 했다.


반면, 집에 가까우면서 9시에 출근해 6시에 칼같이 퇴근할 수 있는 지사(현장) 근무는 모두가 꿈꾸는 낙원이었다. 그곳에는 민원인을 상대하는 고충이 있지만, 적어도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었고, 업무의 시작과 끝이 명확했다. 무엇보다 본사의 숨 막히는 정치와 보고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설문지 수거함 뚜껑을 열었을 때, 결과는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집 근처 수도권 지사'를 희망하는 경쟁률은 수십 대 일에 달했다. 누구나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싶어 했고, 익숙한 동네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싶어 했다. 반면 본사 핵심 부서의 희망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개중에 야망이 있거나 정보가 어두운 몇몇만이 본사를 적어냈을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방 격오지 근무 희망자가 전무하다는 사실이었다. 연고지가 그쪽인 직원들조차 "한 번 지방으로 내려가면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힘들다"는 소문을 듣고 모두 수도권 근무를 1지망으로 적어냈다.


50개의 의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본사의 빈자리, 지방의 빈자리, 수도권의 빈자리. 하지만 50명의 사람들은 모두 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만을 원하고 있었다. 수요와 공급의 완벽한 불일치. 이것은 애초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실패가 예정된 퍼즐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사무실, 동료들이 모두 퇴근하고 형광등이 하나둘 꺼진 자리에 나 홀로 남았다. 내 앞에는 두 개의 모니터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왼쪽 모니터에는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전국 팔도에 흩어진 지사들이 붉은 점으로 찍힌 거대한 지도가 띄워져 있었고, 오른쪽 모니터에는 50명의 신입사원 명단과 그들의 현주소, 외부 강사가 작성해준 성격 특성, 1~3지망, 면접 당시의 특이사항, 그리고 연수원에서의 관찰 기록이 빼곡히 적힌 엑셀 시트가 펼쳐져 있었다.


이제부터 나는 이 이름들을 빈칸에 채워 넣어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텍스트를 복사해서 붙여넣는 행정 작업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에 물리적인 고통을 주거나, 정신적인 안정을 선물하는, 신(神)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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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변수는 단연 '거리'였다. 우리 회사의 지사는 전국에 퍼져 있다. 아무리 좋은 부서라도, 혹은 아무리 일이 편한 곳이라도,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곳에 갓 입사한 신입을 배치하는 것은 사실상 "제 발로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이나 다름없다.


나는 지도 앱을 켜놓고 그들의 집 주소와 지사 사이의 최단 거리를 하나하나 찍어보았다. 지하철 환승 횟수, 버스 배차 간격, 출근 시간대의 도로 정체 상황까지 시뮬레이션했다.


"D는 집이 일산인데, 강남지점으로 보내면 편도 1시간 40분... 이건 안 돼.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야 해. 3개월도 못 버틸 거야." "E는 자취를 하겠다고 했으니 지방으로 보내도 될까? 하지만 연고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떨어지면 우울증이 올 수도 있는데..."


거리를 맞추다 보면 다른 변수들이 튀어 올랐다.


'성향'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쩌면 거리보다 더 치명적인 변수였다. 나는 연수 기간 동안 그들을 관찰하며 적어둔 메모장을 다시 꼼꼼히 읽어보았다.


"A는 꼼꼼하고 내성적이야. 숫자를 다루는 건 잘하지만, 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힘들어해. 그런데 지금 TO가 난 곳은 드센 팀장님이 있고 악성 민원 강도가 전국 최고 수준인 강남지점이야. 여기에 A를 보내면? 매일 민원인에게 시달리다가 화장실에서 울게 될 게 뻔해. 그렇다고 A를 본사 총무팀으로 보내자니, 거긴 이미 사람이 꽉 찼어."


"C는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쳐. 목소리도 크고 분위기를 주도해. 이런 친구를 하루 종일 엑셀만 들여다봐야 하는 본사 자금팀에 넣으면? 아마 좀이 쑤셔서 미쳐버릴지도 몰라. 차라리 현장 영업이 딱인데, 문제는 C의 집에서 현장까지 2시간이 걸린다는 거야."


거기에 '멘토'라는 환경 변수까지 고려해야 했다. 신입사원이 부서에 배치되면 그를 가르치고 이끌어줄 사수(멘토)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입은 혼자서 크지 않는다. 누군가가 옆에서 업무를 가르치고, 실수를 막아주고, 밥을 사주며 조직에 안착시켜야 했다.


"저 지사는 지금 허리가 끊겼어. 대리급은 다 육아휴직 중이거나 퇴사했고, 차장님들은 실무에서 손 뗀 지 오래야. 팀장님은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어서 관심이 없고. 저기에 신입을 보내면? 100% 방치된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잡일만 하다가, '회사가 나를 키워주지 않는다'며 번아웃이 올 게 뻔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녀 성비와 부서별 TO(결원) 상황, 그리고 육아휴직 예정자의 복직 시점까지.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A를 배려하면 B가 튕겨 나가고, B의 사정을 봐주면 C가 희생해야 하는, 완벽한 '제로섬 게임'이었다.


엑셀 시트 위에서 이름 하나를 옮길 때마다 다른 이름들이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빨간색 경고등이 머릿속에서 계속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나는 마치 시한폭탄 해체 작업을 하는 사람처럼, 마우스 커서를 쥔 손을 떨며 밤을 지새웠다. 눈이 뻑뻑하고 목이 탔다.


더욱 힘이 빠지는 것은 현업 팀장들의 반응이었다. 보통이라면 "우리 팀에 똘똘한 애 좀 보내줘", "이번에 일 잘하는 신입 들어왔다며? 걔 찜해놨어"라며 로비라도 들어올 법한데, 우리 회사 팀장님들은 신입사원 배치에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했다. 그들에게 신입사원은 '키워야 할 인재'라기보다는, '가르치는 데 시간만 들고 당장 써먹지 못하는 짐'에 가까웠다.


"누가 오든 상관없어. 어차피 1년은 가르쳐야 1인분 할 텐데 뭘. 그냥 말 잘 듣고, 집 가깝고, 야근 시켜도 군말 없는 애나 보내줘. 괜히 똑똑한 척하면서 따지는 애들 말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들의 건조하고 냉소적인 목소리는 나를 더욱 외롭게 만들었다. 이 아이들의 첫 시작을,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챕터의 첫 문장을 고민하는 것은 오직 이 텅 빈 사무실에 남은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그 고독감이 엑셀 시트의 격자무늬처럼 나를 가두었다.


오후 10시. 커피를 세 잔이나 마셨지만 머리는 멍했다. 아무리 조합을 바꿔봐도 '모두가 행복한'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모두가 불행하지 않은'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았다.


문득 B 지원자, 그 '갈대' 같은 친구가 떠올랐다. 그는 어디로 보내야 할까. 그의 유연함과 솔직함, 그리고 실패를 통해 배우려는 태도는 분명 장점이지만, 아직은 거친 바람을 막아줄 든든한 울타리가 필요해 보였다. 그를 배려해서 멘토가 확실하고 집에서 가까운 지사에 배치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경쟁률이 가장 치열한 곳이었다. B를 그곳에 넣으면, 객관적인 성적이 더 좋고 거리가 더 먼 다른 동기가 튕겨 나가, 멘토도 없는 격오지로 밀려나야 했다.


"하아..."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신(神)이라도 된 양, 남의 인생을 내 맘대로 재단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출근길과 좋은 선배'를, 누군가에게는 '지옥 같은 출퇴근과 고독한 업무'를 선물한단 말인가. 기준을 세우려 할수록 기준은 흔들렸고, 공정함을 찾으려 할수록 내 선택은 자의적으로 느껴졌다. 엑셀 칸 하나를 옮기는 것이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인사부장님이 내 자리 뒤에 멈춰 섰다.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그가 모니터에 띄워진 복잡한 엑셀 표와 지도, 그리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내 뒷모습을 번갈아 보시더니 툭, 한마디를 던지셨다.


"이과장, 아직도 붙잡고 있어? 답 안 나오지?"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부장님은 피곤한 눈으로, 하지만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네, 부장님... 죄송합니다. A를 여기 보내면 B가 너무 멀어지고, 멘토를 생각하면 또 거리가 안 맞고... 성적순으로 자르자니 성향이 너무 안 맞고... 도저히 최적의 해를 못 찾겠습니다."


부장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짚으셨다.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말투는 서늘했다.


"이과장, 착각하지 마. 인사는 수학 문제가 아니야. 딱 떨어지는 정답 따위는 애초에 없어. 신이 와서 배치를 해도 50명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어. 누군가는 반드시 불만족하게 되어 있는 게임이야."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인사 업무의 본질을 관통하는, 잔인하지만 명쾌한 조언을 남겼다.


"인사(人事)는 구성원에게 '최고의 만족'을 주는 게 아니야. '최소한의 불만'을 관리하는 거지. 모두를 행복하게 하려다가는, 결국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원칙 없는 결과만 남게 돼. 기준을 세웠으면, 흔들리지 말고 밀고 나가. 누군가는 울게 되어 있어. 그 눈물까지 네가 닦아줄 순 없어. 그건 오만이야. 네가 세운 원칙대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 욕을 먹는 것. 그 비난을 감수하는 것. 그게 담당자의 몫이고 그게 공정함이야."


부장님이 떠난 자리, 엘리베이터 소리가 멈춘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최소한의 불만'. '욕을 먹는 것'. '비난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내 역할이었다.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했기에,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으려 했기에 괴로웠던 것이다.


나는 완벽주의라는 허상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세울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인 거리와 TO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변수로 두기로 결심했다. 감정을 배제한 차가운 원칙만이, 이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는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이번에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감정을 지우고, 원칙을 세웠다.


B 지원자의 이름을 다시 보았다. 거리 원칙을 적용하자, 그가 원했던 수도권 지사는 불가능했다. 대신 나는 그를 집에서 나름 가까운 거리인 본사 기획팀 빈칸에 넣었다.


그곳은 업무 강도가 높아 모두가 기피하는 '등대'였지만, 동시에 회사 전체의 흐름을 배울 수 있고, 그를 단단하게 잡아줄 수 있는 훌륭한 멘토가 있는 곳이었다.


그의 유연함과 솔직함, '갈대' 같은 성향이 거친 바람 속에서 부러지지 않고 오히려 춤을 추며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 믿었다. 비록 그가 원하던 '워라밸'과 '가까운 거리'는 아닐지라도, 그의 '성장'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나하나 칸을 채워 나갔다.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누군가에게는 좌절을 안겨줄 결정들이 내 손끝에서 클릭 한 번으로 확정되었다. 12시가 되어서 마침내 50개의 빈칸이 모두 채워졌다. 완성된 배치도는 마치 전쟁터의 작전지도처럼 비장해 보였다.


다음 날 오후, 연수원 강당. 모든 교육이 끝나고, 대망의 부서 배치 발표 시간이었다. 50명의 신입사원들이 숨을 죽인 채 전면의 대형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강당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스크린 옆 컨트롤 박스에 서 있었다. 내 손가락 하나에 이들의 희비가 갈릴 것이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엔터키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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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하반기 신입사원 부서 배치 현황]


거대한 엑셀 표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1초의 정적. 50쌍의 눈동자가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곧이어 강당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와! 대박! 나 강동지사야! 집 앞이야, 집 앞!" "미쳤다, 진짜 됐어! 감사합니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곳,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를 끌어안는 무리가 있는가 하면,


"아... 말도 안 돼..." "야, 너 어디야? 나? 나 본사 전략팀... 망했다... 야근 확정이네..." "나... 강원도야... 어떡해..."


깊은 탄식과 헛웃음, 그리고 억누른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곳도 있었다. 극명한 희비의 교차. 천국과 지옥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벌써 휴대폰을 꺼내 발령지 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복도로 뛰쳐나가 부모님께 전화를 걸며 울먹이고 있었다.


"엄마... 나 어떡해... 거기 여기서 2시간 반 걸려. 도저히 못 다녀. 방 구해야 될 거 같아. 보증금은 어떡하지..."


복도 구석에서 들려오는 여직원의 울먹임이 내 가슴을 송곳처럼 찔렀다. 그녀의 흐느낌은 내가 세운 '원칙'이라는 방패를 뚫고 들어왔다. 내가 찍은 좌표 하나가, 당장 그녀의 주거지를 바꾸고, 생활 패턴을 바꾸고, 부모님의 걱정을 늘리고, 어쩌면 통장 잔고까지 위협하게 된 것이다.


나는 죄인이 된 기분으로 그 풍경을 지켜보았다. '최소한의 불만'을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구체적인 불행'을 목격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인파 속에서 B 지원자를 찾았다. 그는 스크린을 한참 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본사 기획팀'. 모두가 기피하는 곳.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실망한 기색도, 기뻐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한, 혹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가 가게 될 기획팀은 '갈대'인 그를 거친 바람으로 몰아세울 것이다. 매일 야근을 하고, 깨지고, 다시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고 싶었다. 그 바람 속에서 그가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더 유연하게 춤추는 법을 배울 것이라고.


내가 고민 끝에 내린 이 결정이, 그에게는 당장의 시련이겠지만 훗날 돌아봤을 때 가장 큰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그것은 나의 변명이자, 동시에 간절한 바람이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텅 빈 강당. 바닥에는 누군가가 흘리고 간 휴지와 구겨진 배치표 사본, 그리고 다 마신 음료수 캔들이 뒹굴고 있었다.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처럼 황량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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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이 밀려왔다. 아니, 그것은 미안함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끈적하고 불쾌한, 일종의 죄의식이었다. 스크린을 보며 굳어가던 표정들, 나를 향해 쏘아지던 원망 섞인 눈빛들이 망막에 화인(火印)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의 눈빛은 내게 묻고 있는것 같았다.


"당신이 뭔데 내 삶을 이렇게 결정합니까?"


누군가가 내 멱살을 잡고 "이게 정말 최선이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며, 나는 과연 "네,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고려했던 '성향'과 '멘토', '거리'라는 변수들은 과연 정확했을까. 그것은 그저 나의 편의적인 추측과, 복잡한 퍼즐을 빨리 맞추고 싶은 조급함이 만들어낸 자의적인 기준은 아니었을까.


나는 엑셀 시트 위에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그들의 '왕복 4시간'을 결정했다. 그 4시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다. 그들이 아침에 포기해야 할 잠이고, 저녁에 포기해야 할 친구와의 만남이며, 주말에 포기해야 할 휴식이다.


나는 그들의 청춘에서 매일 4시간을 도려내어 길바닥에 버리게 만들었다. 나의 판단 착오로 누군가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2년을 괴로워하다가, 매일 밤 천장을 바라보며 퇴사를 고민하게 될 수도 있다.


끝내 퇴사한 E사원처럼, 시스템의 무심한 배치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 궤적을 완전히 비틀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가 나를 덮쳤다. 우리는 그것을 '인력 운영'이라 부르지만, 당사자에게는 '재난'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에 가야만 회사가 돌아간다. 험지에도, 격무 부서에도, 빛이 닿지 않는 하수처리장 같은 곳에도 사람은 필요하다. 조직은 생물이다. 피가 돌지 않는 곳은 괴사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강제로라도 그곳에 밀어 넣어야 한다. 그 잔인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악역을 자처했다. 아니, 악역이 되기로 '계약'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텅 빈 강당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생각했다. 인사(人事)란 결국, 타인의 삶의 궤적에 깊숙이 관여하여 새로운 좌표를 찍어주는 일이었다. 신도 아니면서 신의 흉내를 내야 하는, 오만하고도 위태로운 줄타기. 나는 오늘 50명의 우주를 내 마음대로 이동시켰다. 그 죄책감은 내가 월급을 받는 대가로 지불해야 할 이자(利子) 같은 것이었다.


내가 찍어준 그 낯선 좌표는 그들의 목적지가 아니다. 그저 새로운 출발점일 뿐이다. 하지만 그 출발점이 누군가에게는 평탄한 아스팔트이고, 누군가에게는 진흙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자책이 아니라, 그들이 그 진흙탕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가기를 비는, 무력하고도 간절한 기도뿐이었다. 낯선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뿌리 뽑히지 않기를. 부디 내가 틀렸기를. 내가 걱정한 것보다 그들이 훨씬 더 강한 존재이기를.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어, B 지원자가 가게 될 기획팀 팀장님에게 보낼 메일 창을 띄웠다. 팀장님은 아마 "신입 따위 필요 없다"며, 혹은 "야근시킬 수 있는 튼튼한 놈으로 보냈냐"며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그 거친 현장의 논리 앞에 B라는 한 인간의 고유한 결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망설였다. 이것은 단순한 업무 메일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구명조끼였다.

엔터키를 눌러 메일을 전송했다. '전송 완료'라는 메시지가 떴다.


'팀장님, 이번에 배치될 신입사원 B는 조금은 흔들릴 수 있는 친구입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은 약함이 아니라 유연함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알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기획팀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그는 부러지지 않고 성장할 것입니다. 부디 그가 뿌리 내릴 때까지, 조금만 따뜻하게 기다려 주십시오...'


하지만 나는 노트북을 덮을 수 없었다. 엑셀 시트 위에는 B 외에도 아직 49명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복도에서 울먹이던 부산 출신 직원 H, 내성적이지만 꼼꼼했던 A, 활달하지만 덤벙대던 C... 그들 모두가 내가 찍은 좌표 위에서 각자의 전쟁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었다. B에게만 구명조끼를 던져주는 것은 공평하지 않았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차별이자 직무유기였다. 나는 다시 '새 메일 쓰기' 버튼을 눌렀다.


한 명, 한 명. 연수원에서의 기억을 더듬고, 면접 기록을 다시 뒤적이며 그들의 특징과 장점, 그리고 당부의 말을 적어 내려갔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눈이 침침해졌다.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하고 싶은 유혹이 수시로 찾아왔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들은 '신입사원 1, 2, 3'이 아니라, 저마다의 이름과 우주를 가진 존재들이니까. 내가 보낸 이 50통의 메일 중 몇 통이나 읽힐지, 혹은 읽히기도 전에 휴지통으로 들어갈지는 알 수 없었다. 팀장들은 "인사팀이 웬일로 이런 걸 다 보내?" 하며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시스템의 냉혹함 속에서 건네는 최소한의 속죄이자, 사람을 숫자로 보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인사 담당자의 마지막 책임이었다. 내가 억지로 끼워 맞춘 그 낯선 퍼즐 조각들이, 부디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지 않고 무사히 안착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부적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 50번째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누르고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바로 앞에 보이는 본사 건물의 불빛은 여전히 등대처럼 홀로 깨어 있었다. 저 불빛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겠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태워 밝혀야 하는 가혹한 열기일 것이다.


이제 B가, 부산에서 온 H가, 그리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떠밀려간 수많은 청춘들이 저 불빛 속으로, 혹은 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차례였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오늘 내가 보낸 50통의 편지가 부디 그들의 밤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 춥게 만들기를, 등대처럼 밝은 건물 아래에서 오래도록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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