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직원의 반복되는 지각을 보며

by Just Be

지난이야기


06화 최종 면접에서 본 공정한 평가의 기준



서울의 아침은 거대한 회색 짐승의 거친 숨소리와도 같다. 오전 7시 30분, 지하철 2호선의 스크린도어가 열리면, 밤새 지하 깊은 곳에서 압축되었던 묵직하고 눅눅한 공기와 함께 검은 정장의 물결이 댐이 터지듯 승강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서로의 어깨가 부딪히고, 가방끈이 엉키고, 누군가의 발을 밟아도 사과할 겨를조차 없는, 오직 '전진'만이 존재하는 빽빽한 밀도. 횡단보도의 초록 불이 깜빡이는 그 짧은 순간, 수백 개의 딱딱한 구두굽이 아스팔트를 때리는 소리는 마치 전쟁터로 향하는 병사들의 진군처럼 비장하고,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처연함을 자아낸다.


그 소리에는 생계를 위한 절박함과, 또 하루를 버텨내야 한다는 묵직한 피로가 뒤섞여 있다. 나 역시 9년째, 매일 아침 이 거대한 짐승의 뱃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콩나물시루 같은 객차 안에서 한쪽 다리로 위태롭게 중심을 잡으며, 스마트폰 화면 대신 차창 밖 어둠을 응시한다.


오늘 처리해야 할 업무 리스트, 결재를 받아야 할 서류들, 그리고 마주쳐야 할 껄끄러운 얼굴들을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시뮬레이션하다 보면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 거대한 자본주의라는 기계를 돌리기 위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시간에 제 자리에 끼워져야만 하는 톱니바퀴 부품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손에 들린, 이제는 식어버려 미지근해진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만이 내가 차가운 금속 부품이 아니라, 아직 온기를 가진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위로처럼 느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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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하반기 신입사원 연수가 시작되면서, 나의 이 무채색 아침에는 묘한 긴장감이라는 붉은색 물감이 한 방울씩 섞여 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내 일상에 던져진 작지만 반갑지 않은 파문이었다.


연수 첫날인 월요일은 완벽했다. 아니, 눈이 부실 정도였다. 갓 맞춘 정장에서는 아직 빳빳한 섬유 냄새가 났고, 50명의 신입사원들은 교육 시작 30분 전부터 자리에 앉아 자세를 고쳐 잡고 있었다.


그들의 등은 대나무처럼 곧게 펴져 있었고, 눈동자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구체적인 두려움으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강의실 뒤편에 서서 그 순수한 긴장감을 바라보며 나는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세상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저런 뜨거운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시절이.' 그들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아침 햇살이 유난히 밝아 보여, 우리 조직의 미래가 투명하게 빛나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인사 담당자로서 겪는 지난한 피로와 회의감이 씻은 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들을 잘 키워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벅차오르던 아침이었다.


그러나 그 견고해 보이던 긴장의 둑이 허물어지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균열에서 시작되었다.


화요일 아침 9시 정각. 교육장의 육중한 문이 닫히고,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었다. 강사가 마이크를 잡으며 "자, 그럼 힘차게 시작해 볼까요?"라고 활기차게 말하는 찰나였다. 문틈으로 끼익- 하는,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과 함께 쭈뼛거리는 그림자 하나가 비집고 들어왔다.


벽에 걸린 시계바늘은 정확히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모기만 한 목소리. 50명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으로 쏠렸다. 누군가는 혀를 찼고, 누군가는 킥킥거렸다.


팽팽하던 강의실의 집중력이 유리 조각처럼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처음엔 그저 우연한 사고라고 생각했다.


출근길 지옥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가혹하니까. 갑작스러운 복통이라도 났거나, 중요한 물건을 두고 와서 다시 돌아갔다 왔겠지. 나는 애써 시선을 돌리며 관대한 마음을 먹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수요일, 9시 8분. 목요일, 9시 12분. 사태는 우연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릴레이 바통이라도 주고받듯, 매일 다른 얼굴들이 하루에 한 명씩 지각의 대열에 합류했다. 젖은 머리칼에서 물기를 뚝뚝 흘리며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은, 어느새 연수원의 익숙한 아침 풍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목요일 지각자는 한 손에 프랜차이즈 로고가 선명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9시 10분의 적막을 깨며 유유히 걸어 들어오기도 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강의실의 엄숙한 고요를 조롱하듯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나는 참을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지각이 아니라, 이 공간과 시간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내 안의 깊은 곳, 잊고 지냈던 '구세대' 자아가 꿈틀거렸다. 소위 라떼(Latte)의 기억들이 혈관을 타고 역류했다.


'내가 신입일 때는 9시 정각은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지,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이 아니라고 배웠는데.' 적어도 10분 전에는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책상을 정리하고, 오늘 할 일을 점검하며 숨을 고르는 게 당연한 기본이라고 믿었던 나의 낡은 원칙들이 비명을 질렀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거 아냐? 요즘 애들은 회사가 학교인 줄 아나?'


하지만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시대가 변했다. 유연 근무제, 워라밸, 자율성. 10분의 지각을 두고 정색하며 훈계하는 것은 '젊은 꼰대'로 가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 E사원의 퇴사를 겪으며 나는 다짐하지 않았던가.


시스템의 경직성을 경계하고, 사람을 이해하겠다고. 내가 그들의 사정을 모르면서 함부로 재단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 오죽하면 늦었겠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거나, 버스가 사고라도 났겠지.' 나는 짐짓 이해심 넓은 쿨한 선배의 가면을 쓰고, 목구멍까지 끓어오르는 훈계의 말들을 애써 눌러 삼켰다.


그러나 나를 진짜 곤혹스럽게, 아니 서서히 분노하게 만든 건 '지각'이라는 물리적 현상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물 먹은 솜이불을 뒤집어쓴 듯, 나의 인내심을 서서히 질식시키는 눅눅하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8시 50분이 지나면 내 신경은 온통 강의실 출입문과 내 손안의 휴대폰으로 쏠렸다. 빈자리는 셋.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은 셋. 시계 초침이 12를 향해 다가가는 그 피 말리는 10분 동안, 내 휴대폰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진동도, 알림음도 울리지 않았다.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 카톡 하나 없었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지하철을 놓쳐서 10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이 짧은 문장 하나를 보내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될 일을 그들은 왜 하지 않는 걸까. 너무 당황해서일까, 아니면 무서워서일까. 혹은 10분 정도는 '허용 오차 범위'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아예 연락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걸까.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침묵의 시간 동안, 나는 강의실 뒤편 그림자 속에 서서 '요즘 애들의 개념 없음'과 '피치 못할 사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나의 인내심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리 연락만 주었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강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을 살짝 열어두어 그들이 덜 민망하게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했을 것이다. 그것은 '사정'이 된다. 하지만 연락 없는 지각은 '사고'이며, 조직이 가장 혐오하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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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신뢰'라는 얇은 얼음 위를 걷고 있다는 사실을. 그 얼음이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 그리고 그 차가운 물속이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를.


그들의 단절은 나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문법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 마음속의 실망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금요일 아침, 9시 10분. 네 번째 지각자가 헝클어진 머리로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나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배려가 아니었다. 그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방임이었다.


내가 침묵할수록, 나머지 40여 명의 성실한 신입사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것이고, 지각한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용인된다고 착각할 터였다. 나는 인사 담당자로서, 이 잘못된 신호를 바로잡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날 오후, 일주일간의 교육 일정이 모두 끝났다. 강사가 퇴장하자마자 강의실은 짐을 챙기는 소리와 주말을 앞둔 들뜬 목소리로 순식간에 웅성거렸다.


"오늘 치맥 어때?", "와, 드디어 주말이다!" 해방감에 젖은 그들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나는 천천히 연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스위치를 켜자 '툭' 하는 파열음이 스피커를 통해 증폭되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주목해 주세요."


나의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강의실을 갈랐다. 웅성거림이 칼로 자른 듯 뚝 끊겼다. 50쌍의 눈동자가,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불안한 빛을 띠며 나를 향했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그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나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여러분, 이번 주 연수 과정은 즐거우셨습니까? 다들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의 침묵. 나는 숨을 골랐다. 강의실의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내 심장 박동 소리도 그만큼 크게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주말을 앞두고, 여러분에게 조금은 불편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습니다."


강의실의 공기가 급격히 차갑게 식어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50명의 숨소리가 멈춘 듯했다.


"화요일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지각자가 발생했습니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요. 교통체증, 낯선 지리, 개인적인 사정들...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지각하지 마라'는 초등학교 훈화 말씀이 아닙니다."


나는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내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지만, 애써 눌렀다.


"지금 인사부 선배들이 웃으며 대하고, 동기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이곳이 학교처럼, 혹은 캠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수는 용납되고, 지각은 귀여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착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이 이 회사 정문을 통과한 그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연단 아래로 내려가 그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었다. 나의 구두 소리가 그들의 심장 박동 소리와 겹쳐지는 듯했다.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가장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했다.


"이곳은 거대한 어항과 같습니다. 투명해 보이지만, 밖에서는 수많은 눈들이 여러분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아침 인사, 수업을 듣는 태도, 쉬는 시간에 내뱉는 무심한 말투, 그리고... 아침 9시 10분에 아무런 연락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모습까지."


몇몇 신입사원들이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관찰되고 기록됩니다. 정량적인 점수로 매겨지는 고과보다 더 무서운, '평판'이라는 성적표가 매겨지고 있습니다. 그 평판은 사내 인트라넷보다 빠릅니다. 여러분이 부서에 배치되기도 전에, '이번 신입은 어떻다더라', '누구는 시간 약속을 우습게 안다더라' 하는 소문이, 여러분을 맞이할 팀장님의 귀에 먼저 도착해 있을 겁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한 번 덧씌워진 색안경을 벗기는 데는 입사 후 몇 년이, 어쩌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호소하듯 말했다. 내 목소리에는 경고를 넘어선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이 차가운 조직의 생리 속에서, 그들이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기를 바랐다.


"부디, 스스로를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찬란한 시작이, 고작 10분의 게으름과 침묵으로 인해 오해로 얼룩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상입니다."


마이크를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의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짐을 챙겨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아까와 달리 축 처져 있었다.


나는 악역을 자처한 내 자신이 조금은 싫어졌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쓰지만 가장 필요한 약이라 믿었다.


강의실이 거의 비어갈 무렵, 두 명의 신입사원이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이번 주에 지각했던, 유독 눈에 밟히던 이들이었다. 그중 한 명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붉어진 눈으로 입을 열었다.


"과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변명 같지만... 제가 부산에서 서울을 처음 올라와서 지금 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서울 지리가 너무 낯설어서..."


그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부산에서 갓 상경해, 거미줄처럼 얽힌 서울의 지하철 환승 시스템과, 숨조차 쉬기 힘든 2호선의 인파 속에서 매일 아침 공황에 가까운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일찍 나온다고 나왔지만, 방향을 착각해 반대편 열차를 타거나, 환승 통로의 인파에 밀려 시간을 지체하기 일쑤였다고 했다. 스마트폰 지도 앱을 봐도 낯선 지하 세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고 했다.


"너무 당황해서... 연락드릴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낯선 도시, 차가운 사람들 틈에서 그녀가 겪었을 고립감과 공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른 한 명의 사정도 비슷했다. 그들의 떨리는 어깨를 보자, 아까의 단호했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짠한 안쓰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나 역시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신도림역의 그 거대한 혼돈 속에서 길을 잃고 식은땀을 흘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거대한 시스템 앞에서 개인은 얼마나 작고 무력한가. 나는 그들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많이 힘들었겠네요. 처음엔 다 그렇습니다. 서울 출근길이 워낙 전쟁터 같으니까요."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들을 위로했다.


"다음 주부터는 조금 더 여유 있게 움직여봅시다. 그리고... 늦을 것 같으면, 무서워하지 말고 꼭 미리 연락하세요. 늦는다는 사실보다, 연락이 없다는 사실이 더 큰 걱정을 만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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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돌려보내고 텅 빈 강의실에 홀로 남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사실 10분의 지각은 업무에 치명적이지 않다. 부산에서 갓 올라온 사정을 안다면, 누구나 "아이고, 고생했네. 밥은 먹고 다니니?"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실수다.


문제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생물이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을 들어줄 만큼 친절하거나 한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조직은 거대한 소문의 진원지다. 벌써부터 타 부서의 동기들과 선배님들이 점심시간이나 흡연실에서 지나가듯 묻는다. "과장님, 이번 신입들 장난 아니라며? 매일 지각한다던데?", "요즘 애들은 역시 다르네. 우리 때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들의 말속에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새로운 세대에 대한 막연한 반감과 편견이 섞여 있었다.


사실(Fact)은 '길을 잃어 10분 늦은 부산 출신 신입사원'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살이 붙고 왜곡되어, '게으르고 시간 관념 없으며 연락조차 없는 무개념 신입'이라는 거대한 '허상(Image)'으로 둔갑한다.


누군가는 "커피까지 사 들고 왔다며?"라는 확인되지 않은 디테일을 덧붙이고, 누군가는 "인사팀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더라"는 과장을 보탠다. 소문은 발이 없지만 천 리를 가고, 칼이 없지만 사람을 벤다.


그 소문은 그들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그들을 맞이할 팀장님들의 귀에 가장 먼저 도착할 것이다. "이번에 우리 팀에 오는 신입, 걔가 그 지각 대장이라며?"라는 선입견.


한 번 덧씌워진 그 차가운 색안경은, 그들이 밤새 야근을 하며 성과를 내도, 진심을 다해 업무에 임해도 쉽게 벗겨지지 않을 것이다. "쟤는 원래 성실하지 않아", "반짝 잘하는 척하는 거겠지"라는 꼬리표가 되어 그들의 발목을 오랫동안 잡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차갑게, 어쩌면 가혹할 정도로 경고했던 진짜 이유다. 지각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 작은 틈새로 스며드는 '나쁜 평판'이라는 독이 그들의 창창한 앞날을 가로막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 모른다. 조직에서는 능력보다 태도가 먼저 보이고, 성과보다 평판이 빛의 속도로 달린다는 것을. 그 냉혹한 진실을 누군가는 알려줘야 했다. 비록 그 역할이 '젊은 꼰대'로 불리는 것일지라도.


만약 그들이 늦을 것 같았을 때, 숨거나 외면하는 대신 미리 전화를 걸어 "과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서울 지리가 익숙지 않아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10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빨리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들의 지각은 '게으름'이 아니라 '초년생의 귀여운 실수'로, 혹은 '도와줘야 할 어려움'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선배들은 "아이고, 부산 촌놈 서울 와서 고생하네" 하며 웃어넘겼을 것이고, 그 솔직함과 보고 태도에 오히려 점수를 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밥이라도 한 끼 사주며 위로했을지도 모른다.


연락 없는 10분의 지각.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짧은 시간이지만, 신뢰의 관점에서는 영원히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드는 시간이다. 조직에서의 신뢰란 거창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9시에 오겠다'는 약속, '늦으면 연락하겠다'는 배려 같은 아주 사소한 디테일에서 쌓이고 무너진다.


모두 퇴근한 강의실의 불을 끄며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지각하면 선생님께 혼나고 벌점 몇 점 받으면 끝이지만, 회사에서는 지각하면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지각한 시간의 수천 배, 아니 어쩌면 영원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 잔인하지만 명확한 사실을, 부산에서 온 그녀가, 그리고 다른 모든 신입들이 너무 아프지 않게, 너무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이 정글 같은 곳에서 억울하게 '나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때로는 악역을 자처해서라도 그들에게 '생존의 법칙'을 일러주는 것. 그것이 E사원을 떠나보내며 내가 다짐했던, '작고 미약한 방패막'이 되는 길일지도 모른다.


사회생활의 첫 단추는, 화려한 능력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들이 부디 기억해 주기를. 그리고 그 태도가 그들의 능력을 더욱 빛나게 해줄 가장 든든한 갑옷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강의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울렸다. 째깍, 째깍. 마치 그들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그리고 조직의 시간이 서로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음을 경고하듯이.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내일 아침 그들이 조금은 더 당당한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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