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씨의 이름이 빠진 엑셀 시트. 그 차가운 회색 셀은 내 안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남았다. 한 사람의 간절함이 숫자로 해체되고, 결국 '불합격'이라는 두 글자 아래 흐릿하게 사라져 버리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평가'라는 행위의 잔인함과 피할 수 없는 모순을 뼈저리게 느꼈다.
1차 면접에서 내가 보았던 그녀의 '진심'은 전문가들의 '데이터' 앞에서 길을 잃었고, 나는 그 충격 속에서 헤어나오기도 전에 채용 절차의 마지막 관문인 2차 최종 면접의 날을 맞이해야 했다. 마치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또 다른 무거운 짐을 올려놓는 기분이었다.
1차 면접장이 젊음의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혼돈의 광장이었다면, 2차 최종 면접이 열리는 20층 최고경영진 회의실은 차갑고 정교하게 조율된 오케스트라의 지휘봉 같았다.
묵직한 마호가니 테이블은 거울처럼 천장의 조명을 반사했고, 통유리 창밖으로는 내가 일하는 빌딩보다 낮은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해가 아직 완전히 뜨지 않은 새벽, 희뿌연 안개에 잠긴 도시는 마치 태고의 풍경처럼 고요했다.
이곳은 속세와 분리된,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공간임을 스스로 웅변하는 듯했다. 먼지 한 톨 없이 정돈된 집기들, 벽에 걸린 값비싼 추상화, 심지어 공기의 밀도마저 1차 면접장과는 다른 종류의 엄숙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제 미리 점검해 둔 실내 온도는 정확히 22.5도를 유지했고, 공기청정기는 가장 낮은 단계로 소리 없이 돌아갔다. 이토록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 속에서, 인간의 불완전한 본질을 꿰뚫어 보려 한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역설처럼 내게 다가왔다.
과연 우리는 이 완벽한 통제 속에서 '진실'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통제의 그림자 속에 '진실'을 가두어 버리는 건 아닐까.
내 역할은 여전히 면접 진행자였지만, 이곳에서의 나는 1차 때와는 다른, 더욱 첨예한 긴장감을 느꼈다. 1차 면접이 수많은 '가능성'들을 걸러내는 필터였다면, 이곳은 단 몇 명의 '선택'을 확정 짓는 도장의 역할을 했다.
내 옆자리에는 우리 회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임원들이 앉게 될 터였다. 회사의 최상위 의사결정을 내리는 이들이 내놓는 최종 판단은, 인사부서의 어떤 보고서나 1차 면접관들의 정량적 평가보다도 더 절대적인 무게를 가졌다.
나는 그들의 이름이 적힌 묵직한 크리스털 명패를 하나씩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올려놓았다. 최고경영진의 명패는 유난히 두툼하고, 그 위에 각인된 이름은 마치 거대한 바위를 새긴 것처럼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들의 시간은 금보다 귀했고, 나는 그들의 시간을 단 1초도 낭비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야 했다. 마이크의 위치, 물컵의 간격, 서류의 정렬. 나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 엄숙한 의식의 흐름을 깰까 봐 손끝이 떨렸다.
E사원의 퇴사로 '시스템의 균열'을 보았고, K씨의 탈락으로 '평가자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이제 나는 이 최종 면접의 무대에서, '인재의 본질'이라는 더 심오한 질문과 마주해야 했다.
내가 1차 면접에서 가졌던 '나의 사소한 실수가 지원자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순진한 걱정은, 이제 더 크고 근본적인 질문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면접 전, 임원들의 평가 기준을 미리 확인하고 회의실을 세팅하며 느꼈던 미묘한 위화감에서 시작되었다.
1차 면접관들이 수치화된 경력과 논리적인 답변, 즉 지원자가 이미 '쌓아 올린 것들'에 집중했다면, 최고경영진들의 질문지는 지원자의 '궁극적인 꿈', '삶의 실패를 통한 배움',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단점' 같은, 그 사람 '자체'를 캐묻는 것들이었다.
1차에서 쌓아 올린 것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은 K씨는 결국 이 최종 면접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그녀의 진심은 분명 강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합격할 수 없다는 현실을 나는 이미 목격했다.
아무리 그 사람 자체가 훌륭해도, 당장 기업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쌓아 올린 것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다면 채용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 그런데 오늘, 임원들은 그 쌓아 올린 것이 가장 훌륭한 이들(1차 합격자들)에게 다시 '그 사람 자체'가 어떠한지를 묻고 있었다.
어쩌면 이 채용 시스템은, '쌓아 올린 것'과 '그 사람 자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모두 갖춘 완벽한 존재만을 찾아내려는,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K씨처럼 '그 사람 자체'는 훌륭했지만 '쌓아 올린 것'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이들은,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탈락의 쓴맛을 보는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무거운 질문을 안고, 어쨌든 정해진 절차를 수행해야 했다. 어쩌면 오늘, 그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기대를 품은 채였다. 내 보이지 않는 책임감은 이제 지원자에 대한 존중을 넘어, 이 시스템의 모순을 끝까지 목격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변해 있었다.
오전 9시 정각, 첫 번째 지원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팽팽한 긴장감이 회의실을 감쌌다. 주어진 시간은 단 15분. 그 찰나에 한 사람의 미래가 결정될 터였다. 나는 이 15분이라는 시간이 한 사람의 '인생 방정식'을 풀어내기에는 얼마나 초라한 시간인지 새삼 깨달았다.
지난 수십 년의 삶, 수많은 노력과 좌절, 수많은 배움과 경험이 고작 15분짜리 압축 파일처럼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내놓는 '결과값'만을 보고, 그 '결과값'을 만들어낸 복잡한 과정과 무수한 변수들은 외면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진행자석에 앉아 임원들의 질문과 지원자들의 답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오가는 미묘한 비언어적인 신호들을 조용히 관찰했다. 문득 1차 면접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1차 면접이 지원자의 '지식'을 검증하는 자리였다면, 2차 면접은 그들의 '지혜'를 시험하는 무대처럼 느껴졌다.
1차 면접관들은 정해진 답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 '이 업무를 수행해 본 경험이 있는가?', '이론을 설명해 보라.' 그들은 지원자가 얼마나 아는지, 얼마나 준비되었는지를 훌륭하게 측정했다. 그들의 평가는 '정확성'에 기반했다.
하지만 임원들의 질문은 달랐다. 그들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지원자의 이력서에 적힌 과거의 '사실'을 묻는 대신, 그 사실을 통해 지원자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궁금해했다. 이력서라는 과거의 기록물은 이미 1차에서 검증이 끝났다고 전제하는 듯했다.
이제 그들은 그 기록을 쓴 사람의 내면, 즉 그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어떤 압박을 견딜 수 있을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보려 했다. 1차 면접이 '정답을 아는가'의 문제였다면, 2차 면접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당신은 누구인가'의 문제였다.
"지원자가 우리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꿈'은 무엇습니까?"
이 질문은 단순히 회사에 대한 로열티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지원자가 자신의 삶과 직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의 가장 깊은 곳에 어떤 가치관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 대답은 이력서의 그 어느 칸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오직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길어 올려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영혼이 갈망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을 캐묻는 것이었다.
"살면서 가장 크게 실패했던 경험, 그리고 그 실패를 통해 '정말로'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죠?"
이 질문은 지원자의 좌절을 묻는 동시에, 그 좌절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장했는지를 통해 그의 회복 탄력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꿰뚫어 보려는 질문이었다. 대개 지원자들은 이 질문에 '실패를 가장한 성공 스토리'를 준비해오기 마련이었다.
그들은 실패를 깔끔하게 포장하고, '성장'이라는 이름의 리본을 매어 내놓았다. 하지만 임원들의 시선은 그 포장지를 꿰뚫어 보려는 듯 날카로웠다. 포장지 아래에 숨겨진 진짜 흉터와, 그 흉터가 아물면서 단단해진 살점을 찾으려는 듯했다.
그리고 가장 반복적이고도 지루했던 질문,
"본인의 장점이 아니라, 본인이 가진 '치명적인 단점'은 무엇이며, 그걸 왜 우리가 감수해야 합니까?"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지원자들이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완벽함을 보여주려던 그들의 모습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패턴의 답변을 쏟아냈다.
"저는 지나친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 때로 동료들을 힘들게 하거나 업무가 지연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극복 방안은 약속이라도 한 듯 "최근에는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였다.
두 번째로 많은 대답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입니다."였고, 극복 방안은 "팀원들에게 먼저 다가가려 노력했습니다."였다. 이런 답변들은 마치 채용 시장의 불문율처럼, 모든 지원자의 입에서 복사 붙여넣기 한 듯 흘러나왔다.
나 역시 면접을 준비하던 시절, 저런 답변이 가장 무난하고 영리하다고 생각했었다. 단점을 인정하되, 그것이 치명적이지 않으며 이미 개선 노력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어필하는 가장 안전한 길이었다.
하지만 면접 진행자로 앉아 같은 대답을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또 이거야?" 하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들의 '단점'은 더 이상 단점으로 들리지 않았고, '극복 노력'은 진솔한 고백이 아닌, 합격을 위해 외워 온 모범 답안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마치 음악 학원 발표회에서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체르니 연습곡을 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임원들의 미동 없는 표정을 보며,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이 완벽하게 포장된 정답들 속에서 진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정답'은 많았지만, '진심'은 그 포장지 뒤에 숨어버린 듯했다. 마치 수많은 가면들 속에서 맨얼굴을 찾으려는 고된 작업이었다.
이날, 나의 뇌리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두 명의 지원자가 있었다. 그들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무엇이 진정한 인재인가'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이 대조는 단지 스펙의 차이를 넘어,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주었다.
A 지원자는 1차 성적 최상위 합격자였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벌써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인턴십을 두 차례나 경험했다.
수많은 자격증과 화려한 인턴 경력까지, 그의 이력서는 마치 빈틈없는 요새 같았다. 그는 임원들의 압박 질문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마치 잘 쓰인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읽어 내리듯 완벽한 논리로 대답했다.
심지어 실패 경험조차도 '결국 이러이러한 교훈을 얻어 지금의 나를 만든 성공의 밑거름'으로 완벽하게 포장해냈다. 그는 마치 면접관들이 어떤 질문을 할지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이, 모든 답변을 미리 준비해 온 배우처럼 연기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고, 목소리는 시종일관 침착했다. 그의 '치명적 단점' 역시, 예상대로 '지나친 완벽주의'였다. 흠잡을 데 없는 답변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떤 울림도 없었다. 그는 모든 질문에 '정답'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자신'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쥔 '화려한 가면'이 얼마나 훌륭한지, 그리고 그 '가면'을 얼마나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는지만을 증명하고 있었다. 임원들은 그의 답변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들의 눈빛은 차가웠다. 더 이상의 질문도, 호기심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들의 눈에는 A가 '정답을 외우는 기계'처럼 비치는 듯했다. 그의 완벽함은 오히려 인간적인 따스함을 지워버렸다. 나는 A 지원자를 보며, 어쩌면 K씨가 완벽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생각을 했다. 완벽하게 준비된 답변은 때로 '개인의 본질'을 가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B 지원자는 1차 성적 커트라인을 간신히 통과한 지원자였다. 스펙은 A에 비하면 초라했다. 흔한 자격증, 시간제 아르바이트 경험, 봉사활동 외에는 특별한 경력이 없었다. 그의 이력서는 마치 군데군데 찢기고 얼룩진 오래된 사진첩 같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살아 있는 느낌이 있었다. 또다시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어떤 간절함과 고뇌,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이 느껴졌다.
"실패 경험"을 묻는 임원의 말에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포장된 성공 스토리가 아닌 대학 시절 팀 프로젝트에서 리더로서 겪었던 처절한 갈등과 실패의 경험을 서툴지만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그때 저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제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고, 팀원들을 원망했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했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저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저는 실패를 인정하고 팀원들에게 사과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강점은 무엇인지, 약점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렸지만, 그의 눈빛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실패를 성공의 포장지로 감싸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부끄러운 민낯을,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의 '연기'는 서툴렀지만, 그 서툰 독백 사이로 진심이라는 '맨얼굴'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치명적 단점'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B 지원자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입에서 '완벽주의'나 '낯가림' 같은, 내가 오늘 수십 번 들었던 익숙한 단어들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때로 타인의 평가에 너무 쉽게 흔들리는 편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그 과정에서 제 주관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점이 때로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치기도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망설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갈대' 같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회의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 들리던 공기청정기의 희미한 작동음마저 멎은 듯했다. 그것은 면접관들이 수십 번 들었던 '준비된 단점'이 아니었다. 어떤 포장도 없이 드러낸, 너무나 날것의, 그래서 치명적으로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B는 스스로 자신의 가장 깊은 불안과 약점을 드러냈다.
최고경영진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의 시선은 차가운 얼음송곳처럼 B의 고백을 파고들었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깍지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울림은 회의실 전체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평가에 쉽게 흔들린다..."
그는 B의 답변을 그대로 인용하며 덫을 놓았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도 상사나 동료의 말에 휩쓸려 중요한 업무를 그르칠 수도 있다는, 일종의 자기 고발로 들리는군요. 스스로를 갈대라고 표현할 정도의 유약함이, 격무가 몰아치는 우리 조직에서 과연 버텨낼 수 있을까요? 그게 치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내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난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K씨가 탈락하던 순간의 그 회색 엑셀 셀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번에는 제발 무너지지 말라고 기도했다.
B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몇 초의 침묵이 1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최고경영진을 향했다.
"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혼자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동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단점이 때로는 협업을 위한 동기가 되고, 더 많은 소통을 이끌어내는 힘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흔들리는 갈대일지라도, 뿌리는 단단히 내리려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그 속에는 방금 전까지 없었던 단단한 무엇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최고경영진은 잠시 펜을 멈추고 B 지원자를 응시했다. 회의실의 공기가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그는 첫 번째 답변의 방어를 뚫고, 더 깊은 곳을 향해 칼날을 겨눴다. 이어지는 질문은 더욱 집요했다.
"흔들리는 갈대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면서, 우리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게 된다면, 당신의 그런 성향이 조직 전체를 흔들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까? 조직은 확신에 찬 리더를 원합니다. 당신의 그 '갈대' 같은 단점이, 언제쯤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을까요? 아니, 과연 될 수는 있는 겁니까?"
질문은 예리한 메스처럼 B의 답변을 역공하며, 그가 애써 봉합하려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다시 한번 파고들었다. B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는 것이 보였다. 명백한 당혹감이었다.
나는 그가 '완벽주의'라고 거짓말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을까 봐 두려웠다. B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굳게 쥔 주먹을 무릎 위에 올린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언제 완벽한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을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평생 흔들리는 갈대처럼 살 수도 있겠지요."
그는 스스로를 변호하는 대신, 가장 가혹한 진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 흔들림 속에서도 저만의 방향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더라도,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림 속에서 제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다시 중심을 잡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로서 완벽한 확신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며 동료들과 함께 길을 찾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런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제 단점은 저를 계속 겸손하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가진 '갈대'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연함이야말로 강인함의 또 다른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에, 최고경영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평가자의 냉철함보다는, 한 인간의 성장과 진심을 지켜보는 어른으로서의 따뜻한 눈빛에 가까웠다.
그의 '갈대'라는 비유는 더 이상 나약함의 상징이 아니었다. 바람에 흔들리지만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생명력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회의실 안을 짓누르던 팽팽한 긴장감이, 마치 봄눈 녹듯 스르르 풀려나가는 묘한 해방감으로 채워지는 듯했다.
오후 늦게, 모든 면접이 끝나고, 임원들끼리 짧게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회의실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과 피로감으로 가득했다. 나는 평가 집계표를 정리하며 그들의 대화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A 지원자는 참 똑똑하군요. 1차 점수도 최고고,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 오면 바로 전력으로 투입될 수 있을 겁니다."
한 임원이 말하자, 최고경영진이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A는 훈련된 답변을 하더군요. '완벽주의'라는 완벽한 단점까지 가졌지요. 하지만 B는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비록 서툴고 때로는 어설프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있고...또 넘어져 본 사람이 일어나는 법도 아는 법이지요. 나는 우리 회사의 성장 엔진이 되려면, 잘 짜인 매뉴얼만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약점을 딛고 일어설 줄 아는 진정한 탐험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임원도 이에 동의한다는 듯 덧붙였다.
"당장은 부족해도, 장기적으로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거기서 배우려 합니다. 자신의 약점마저도 어떻게든 조직의 강점으로 연결하려 노력하는 태도.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찾던 인재상에 가깝습니다. 그의 단점은, 우리가 충분히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결과는 내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A 지원자는 '개성이 부족하고 정답만 말하며, 조직 융화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음'이라는 평과 함께 낮은 점수를 받았고, 오히려 B 지원자가 '솔직하고 실패를 통해 배울 줄 아는 진정성 있는 태도와 성장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평가와 함께 최고점을 받았다. 그의 이름은 최종 합격자 명단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나는 이 면접 과정에서 느낀 새로운 통찰과 함께, 또 다른, 더 깊은 혼란에 빠졌다. 1차 면접의 전문가들이 중시한 가치(객관적인 경험, 논리, 완벽한 스펙)와, 2차 면접의 경영진이 중시한 가치(잠재력, 솔직함, 내면의 강인함)가 이토록 다를 수 있다니.
1차 면접은 지원자가 가진 기술(Skill)과 경험(Experience)을 검증하는 자리였다. 1차 면접관들은 그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원자가 이 일을 수행할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었는지 냉철하게 판단했다.
그들은 A 지원자의 완벽한 스펙과 논리에 높은 점수를 주었고, B 지원자의 부족한 스펙에는 낮은 점수를 주었다. 그것은 그들의 역할에 충실한, 지극히 합리적인 평가였다.
반면, 2차 면접은 1차를 통과한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태도(Attitude)'와 '잠재력(Potential)'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임원들은 이미 검증된 역량 위에서, 이 사람이 과연 우리 조직의 가치와 맞는지, 고난을 극복할 내면의 힘이 있는지를 보고자 했다.
그들은 A 지원자의 완벽함 속에서 진정성의 부재를 읽어냈고, B 지원자의 서툰 고백 속에서 성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또한 경영진의 역할에 충실한, 합리적인 평가였다.
또 다시 K씨가 떠올랐다. 그녀의 서툴지만 진솔했던 마지막 한마디. 그녀의 태도와 잠재력은 분명 B씨의 그것처럼 진정성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 합리적인 채용 시스템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1차 면접에서 기술과 경험이라는 잣대로 상대평가를 진행했다. K씨는 분명 기본 역량을 갖추고 있었지만, A 지원자나 B 지원자보다 상대적으로 점수가 낮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그녀의 태도나 잠재력은 2차 면접관들에게 보여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 시스템은 애초에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인재(B)를 기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차에서 거의 떨어뜨릴 뻔했고, 어쩌면 K씨처럼 기술은 평범하지만 잠재력은 B보다 훨씬 더 컸을지도 모르는 인재를 이미 '회색 엑셀 셀' 속으로 사라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
기술이 뛰어난 A 지원자는 태도가 부족해 2차에서 탈락했다. 태도가 뛰어난 K씨는 기술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1차에서 탈락했다. 기술은 부족했지만 태도가 뛰어났던 B 지원자는, 운 좋게 1차 커트라인을 통과했기에 2차에서 기회를 얻었다.
이것은 1차 면접관의 잘못도, 2차 면접관의 잘못도 아니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복합적인 존재를 기술과 태도라는 두 개의 분리된 잣대로, 그것도 순차적으로 재단하려 할 때 발생하는 시스템의 근본적인 한계이자 딜레마였다.
이처럼 각 단계의 평가가 충돌하며 놓치는 가치들이 존재한다면, 이 복잡한 과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 사람의 가치를 온전히 측정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 사람을 온전히 보지 못하게 만드는 역설은 아닐까.
최종 합격자 명단이 내 손에서 확정되었다. B 지원자의 이름이 그 안에 빛나고 있었다. 채용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사무실은 텅 비었고, 나는 불 꺼진 창가에 홀로 서서 도시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수많은 불빛들. 저 불빛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이름과 숫자를 가지고 이 밤을 견디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나는, 그 불빛 중 일부의 명멸에 개입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며칠 동안 '공정한 평가'라는 단어를 마음속에서 해부했다. 하나의 인간을 평가하고, 재단하고, 해부하는 데에 '공정한 기준'이 있다는 것이, 애초에 말이 되기나 하는 걸까. 어쩌면 이 질문 자체가, 지금까지 인사부에서의 모든 경험을 통과하며 내가 도달한 가장 고통스럽고 정직한 깨달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공정함'이라는 이상을 끝없이 좇는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고, 기준을 세우고, 숫자로 측정하려 한다. 1차 면접의 객관적인 잣대는 K씨의 진심을 놓쳤고, 2차 면접의 주관적인 통찰은 B씨의 합격에 '우연'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결국 '공정함'이란, 완벽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불완전한 시스템 속에서 그때그때 중요하다고 '선택된' 몇몇 가치에 붙여진 편의적인 이름에 불과했다.
내가 쥐고 있는 이 '평가'라는 칼날은, 어떤 면에서는 한없이 날카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없이 무뎌져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을 가르고, 미래를 결정하는 이 칼날에 과연 '공정함'이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가.
나는 공정한 심판관이 아니다. 나는 그저 이 거대한 룰렛판을 돌리고, 구슬이 떨어진 곳의 이름을 기록하는 크루피에에 가깝다. E사원은 시스템의 틈새로 미끄러져 나갔고, K씨는 룰렛판 밖으로 튕겨 나갔으며, B씨는 기적적으로 당첨 칸에 안착했다.
나는 이 모든 '운'의 흐름을 목격했다. 그렇다면 나의 진짜 책임은 무엇인가. 시스템의 불완전함을 탓하는 것을 넘어, 이 '운'의 흐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은 어떤것일까.
지금의 나는 내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정답은 없었다. 어쩌면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만일지도 모른다. 다만, 한 사람의 인생이, 그리고 그를 둘러싼 또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이 불완전한 시스템과 나의 손을 거쳐 가고 있다는 서늘한 사실만이 남았다.
인사(人事) 담당자라는 내 역할은, '공정한 기준'이라는 신화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 후에도, '평가'라는 칼을 휘둘러 한 사람의 인생에 개입해야 하는 모순 그 자체였다.
이 모순의 무게를 견디는 것. 완벽한 답을 찾는 대신, 그 답 없음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 K씨의 탈락에 대한 부채감과, B씨의 합격에 대한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가는 것.
그 밤, 나는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한 채, 다만 K씨의 얼굴과 B씨의 얼굴, 그리고 E사원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떠올릴 뿐이었다.
채용은 끝났고, 이제 '인사발령'이라는 이름으로 B씨의 '시작'이 내 손에 맡겨졌다. 나는 E사원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B씨가 배치될 부서의 팀장에게, 나는 B씨의 '갈대' 같은 고백과, 그가 가진 '뿌리'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E사원 때처럼 그저 '별문제 없음'이라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지 않도록, 그가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간청할 것이다.
그것은 시스템이 내게 요구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K씨의 '회색 셀'에 부채감을 가진 내가, E사원의 '쓸쓸한 뒷모습'에 책임을 느끼는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어쩌면 거대한 조직의 인사부 과장 한 명이 해나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란 고작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틈새에서 한 사람의 진심이 짓밟히지 않도록, 그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아주 작고 미약한 방패막이 되어주는 것. 그들의 이름 옆에 찍힌 숫자가 아니라, 그들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기억하고 전달하는 것.
나의 인사(人事)는, 그렇게 정답 없는 질문들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존재를 향한 필사적인 태도를 잃지 않으려는, 끝나지 않는 고뇌와 함께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