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신규 채용 면접날의 풍경

by Just Be

지난 이야기


04화 신입직원이 보낸 퇴사 메일- ②

03화 신입직원이 보낸 퇴사 메일- ①




E사원이 남기고 간 차가운 커피 잔의 온도는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의 퇴사 서류에 최종 결재 도장이 찍히고, 시스템에서 그의 이름 옆 불빛이 완전히 꺼진 뒤에도, 나는 종종 텅 빈 사무실에서 그의 마지막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인사(人事)라는 일은, 그렇게 한 사람의 쓸쓸한 퇴장 앞에서 오래 머물러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계절이 순환하듯, 하나의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을 예고했다. E사원의 빈자리가 채 아물기도 전, 사무실에는 하반기 정규직 채용 시즌의 열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산더미처럼 쌓이는 서류들, 분주하게 오가는 메일들, 그리고 면접 일정표를 확인하는 동료들의 마른 기침 소리. 조직은 새로운 '자산'을 획득하기 위한 거대한 톱니바퀴를 다시 돌리기 시작했다.


하반기 정규직 채용 시즌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서류와 필기전형이 마무리 된 후 두번에 걸친 면접 전형을 앞두고 있었다. 내가 인사부에 온 후 처음으로 맞는 대규모 채용. 사무실의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평소의 느긋함 대신,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공간을 채웠다.


서류 더미는 산처럼 쌓였고, 시스템은 끊임없이 새로운 데이터를 뱉어냈다. 이전 부서에서 채용이란 그저 연초 사업계획서 상의 T.O.(정원) 숫자와, 연말 결과 보고서의 충원율 퍼센티지로만 존재했다. 명쾌했고, 감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숫자들은 내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서류 더미로, 그리고 곧이어 각기 다른 사연과 절실함을 품은 긴장한 얼굴들로 구체화될 터였다. 나는 그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5일 오후 06_02_22.png




이번 채용에서 내 역할은 면접 진행자였다. 평가 점수를 매기지는 않지만, 면접의 시작과 끝을 안내하고 전체 과정을 원활하게 운영해야 하는, 어찌 보면 무대 뒤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자리였다.


하지만 그 책임감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시간 안내자나 서류 전달자로서의 역할만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건네는 언어의 온도, 나의 무심한 시선 하나, 정해진 시간보다 몇 초 빠르게 끊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무대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될 수도 있었다.


나의 작은 진행 실수가 지원자의 긴장감을 극단으로 몰아넣어 준비한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수십 명의 얼굴을 마주하며 쌓인 피로가, 오후 늦게 들어오는 지원자에게는 나도 모르는 사이 차가운 표정이나 건조한 말투로 전달되어 그들의 마음을 더 얼어붙게 하지는 않을까.


평가의 공정성은 면접위원들의 몫이지만, 그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퇴장하는 순간까지 경험하는 모든 과정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책임처럼 느껴졌다. 그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1차 면접이 열리는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한 시간은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텅 빈 복도를 걸어 면접장으로 지정된 대회의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밤 늦게까지 면접 준비로 불이 꺼지지 않았던 사무실 창문 너머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시의 새벽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면접 대기 장소는 전날 밤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듯 희미하게 서류 냄새와 사람들의 숨결이 섞인 냄새가 났다. 창밖으로는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하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희뿌옇게 펼쳐져 있었다.


저 너머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고, 누군가는 새벽같이 일어나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을 것이다. 그들의 하루가, 어쩌면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 하루가, 이제 막 엄숙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하나둘씩 지원자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어색하게 각 잡힌 정장 차림의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그리고 애써 침착함을 가장하려는 듯 뻣뻣하게 굳은 어깨. 그들이 내뿜는 긴장감 섞인 공기가 복도 전체를 무겁게 감쌌다.


면접 대기 장소로 안내된 공간은 더욱 숨 막혔다. 올해 하반기 특히 채용 인원이 많았고 면접 특성 상 오랜 기간을 두고 여유있게 진행할 수 없기에 일정을 촘촘히 구성해두었다. 때문에 면접 시작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음에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떤 지원자는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주문을 외듯 무언가를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고, 또 다른 지원자는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인지 책만큼이나 두꺼운 면접 준비 자료를 마치 성경처럼 경건하게 닳도록 넘기며 마지막 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불안한 듯 다리를 떨거나, 마른 입술을 축이는 모습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긴장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절실함'이었다. 내가 지난 8년간 숫자의 세계 속에서 거의 잊고 지냈던, 삶의 무게가 실린 날 것 그대로의 감정.


나는 그 농도 짙은 절실함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고, 마치 다른 행성에 불시착한 이방인처럼 서 있었다. 그들의 간절함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장이 나를 압도하는 듯했다.


잠시 지하주차장에 내려가 면접 안내 배너의 위치를 확인하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엘리베이터 홀. 닫히려는 문 사이로 작은 체구의 여성 지원자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은 중년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어머니일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딸을 향한 걱정과 애틋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직전, 어머니는 딸의 어깨를 더욱 힘주어 꼭 안아주며 나직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 설령 이번에도 안 된다 해도 절대 실망하지 마. 하지만 약속해. 이번에는 절대로 저번처럼 그러면 안 돼. 알았지?"


딸은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짧은 대화 속에는, 지난 실패의 아픔과 그럼에도 다시 일어서야 하는 절박함, 그리고 딸의 무너짐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애끓는 마음이 응축되어 있었다.


'저번처럼'이라는 말 속에는 대체 어떤 상처가 숨겨져 있을까. 이 작은 어깨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무게가 아닐까. 엘리베이터 문이 소리 없이 닫히고, 나는 그 모녀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애틋함과 불안감의 무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채용이라는 과정은 단순히 한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희망과 눈물이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좀 더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다시 면접장으로 향했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6일 오전 09_40_04.png




오전 9시, 1차 면접이 시작되었다. 토론, PT(프레젠테이션), 그리고 직무적합성 평가. 나는 직무적합성 평가 면접실의 진행을 맡았다. 면접위원 네 명과 지원자 한 명이 마주 앉아 10분 남짓 질의응답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면접위원으로는 관련 분야의 저명한 교수, 타 기관의 인사 임원, HR 컨설팅사의 대표 등 소위 '전문가'들이 자리했다. 그들의 연륜과 경험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눈빛은 지원자뿐 아니라, 진행자인 나조차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정해진 안내 멘트를 읽고 시간을 확인하며, 면접위원들의 질문과 지원자의 답변을 기록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나 역시 조용히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내 점수는 최종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지만.


오후 세션,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지원자가 들어왔다. 서류상 특별히 화려한 경력이나 눈에 띄는 자격증은 없었다. 다만 우리 회사와 유사한 업무를 하는 다른 금융기관에서의 인턴 경험이 있었고, 직무 관련 자격증 몇 개를 갖추고 있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스펙. 하지만 나는 면접실에 들어서는 그녀의 눈빛에서 아침 대기실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그러나 더 깊고 단단하게 응축된 '절실함'을 읽었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어떤 역량을 쌓았으며, 그 역량이 이 회사의 어떤 업무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느냐?"


한 면접관의 날카로운 질문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변을 시작했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는 계속 갈라졌고, 준비한 내용이 뒤죽박죽 섞이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면접관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떨려서...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답변드려도 되겠습니까?"


면접관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짧지만 깊은 숨을 내쉬고는 다시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갔다. 그 잠깐의 멈춤이 오히려 그녀의 진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 외 여러 질문에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답했지만, 솔직히 말해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논리는 때로 비약했고, 경험은 다소 부족해 보였다. 그렇게 10분이 흘렀고, 나는 종료 시간이 되었음을 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돌아서서 면접관들을 향해 다시 물었다.


"죄송하지만... 혹시 마지막으로, 정말 짧게 한마디만 더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잠시 당황해서 면접위원들을 돌아보았다. 보통은 정해진 시간 외에 추가 발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면접위원들은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는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에게 아주 짧게 30초 이내로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 면접관들 앞에 섰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떨림 속에 단단함이 배어 있는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시작했다.


"오늘 제가 많이 긴장해서 준비한 만큼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가 제게 얼마나 간절한지는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곳은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곳입니다. 안정적인 직장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곳이 추구하는 공공성과 신뢰의 가치가, 제가 직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가치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화려한 경력은 없을지 몰라도, 제가 맡은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임할 자신이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밤을 새워서라도 배우고 채워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30초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꾸밈없는 진솔함과 이 자리에 대한 깊은 열망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말은 면접실의 공기를 바꾸어 놓았다.


하루 종일 수십 명의 지원자를 상대하며 기계적으로 질문을 던지던 면접위원들의 얼굴에도, 딱딱한 표정 대신 인간적인 온기가 희미하게 번졌다.


한 면접관은 피곤한 기색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고생 많으셨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최고점을 주었다.


그녀가 면접실을 나간 뒤에도, 잠시 동안 그 진솔한 여운이 공간을 감돌았다. 저 정도의 진심이라면, 전문가들의 냉정한 마음도 움직였을 터였다. 나는 그녀를 최종 면접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아니, 보게 되어야만 한다고 확신했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6일 오전 11_17_57.png


그날 저녁, 모든 면접이 끝나고 집계된 평가 점수가 엑셀 파일로 정리되어 내 메일함으로 도착했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몸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파일을 열었다.


수많은 이름들이 점수와 함께 빼곡히 나열된 화면 위로 시선을 옮겼다. 합격자 명단을 위에서부터 훑어 내려갔다. 셀은 밝은 색으로 강조되어 있었고, 이름들은 선명하게 빛나는 듯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찾았다. 하지만 스크롤 바가 끝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합격자 명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의 셀들은 희미한 회색으로 블러 처리되어 있었고, 이름들 또한 생기를 잃은 채 흐릿하게 박혀 있었다. 차가운 셀 안에, 그녀의 이름 석 자가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낮은 점수와 함께.


그 숫자들이 내 눈앞에서 흐릿하게 번져 나갔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렌즈처럼, 명백한 결과가 오히려 현실감을 잃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시스템은 합격자에게는 빛을 선사하고, 불합격자에게는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시작부터 그들의 존재감을 갈라놓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듯했다.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서 느꼈던 그 진심과 가능성은, 숫자와 결과에 익숙했던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인간적인 감정에 취해버린, 그저 서툴고 감상적인 착각에 불과했던 걸까.


연륜 깊은 전문가들은 내가 보지 못한 무엇을, 그녀의 어떤 결정적인 결함을 발견했던 걸까. 면접 기록지에 적힌 짧은 코멘트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논리적 비약', '경험 부족', '타 지원자 대비 경쟁력 미흡'. 냉정하고 객관적인 단어들.


그들의 평가는 분명 수많은 경험과 날카로운 분석에 기반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을 터였다. 나는 이제 막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신입이었고, 그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었다. 감히 내가 그들의 판단을 의심할 자격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내 가슴속에는 여전히 그녀의 마지막 목소리가, 그 떨림 속에 담겨 있던 단단한 진심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점수로는 결코 환산될 수 없는, 그녀가 온몸으로 보여준 그 '절실함의 온도'는 대체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면접관들의 마지막 따뜻한 미소와 격려는, 그저 이 잔인한 게임의 일부인 의례적인 친절이었을 뿐일까. 지하주차장에서 보았던, 문득 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이번에는 절대로 저번처럼 그러면 안 돼"라고 속삭이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침에 본 그녀와 동일한 지원자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들의 간절한 희망에, 나도 모르는 사이 차가운 마침표를 찍는 데 일조한 셈이었다. 그 죄책감이 서늘하게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텅 빈 면접실의 의자와 책상을 정리하면서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불 꺼진 천장은 높고 아득했고, 창밖으로는 하루의 소음이 잦아든 도시의 밤 풍경이 무심히 펼쳐져 있었다.


결과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합격자들의 환희와 불합격자들의 아쉬움이 뒤섞인 듯한 무거운 공기가, 아직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의자들 사이에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수많은 감정의 잔해들이 떠다니는 듯했다. 나는 K씨의 마지막 목소리를, 그리고 그녀의 간절했던 눈빛을 오래도록 떠올렸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6일 오전 11_21_00.png




우리는 면접이라는 과정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치는가. 면접관들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지도'를 손에 들고 있었다. 스펙이라는 지형, 경험이라는 도로, 논리라는 나침반의 바늘까지 선명하게 표시된 지도였다.


그 지도 위에 K씨의 위치는 분명 합격이라는 목적지에 미치지 못했다. 그들의 판단은 지도를 기반으로 한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길 찾기였다.


하지만 나는 K씨에게서 '나침반'을 보았다. 희미하고 흔들릴지언정, 우리 회사의 가치를 향해 정확히 기울어지고 있던 그녀의 진심이라는 나침반이었다. 지도는 이미 정해진 길을 보여주지만, 나침반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길, 혹은 지도를 벗어난 새로운 길을 가리킬 수도 있지 않은가.


조직은 안정적인 항해를 위해 검증된 지도를 요구한다. 하지만 때로는 나침반의 직관을 따라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과 나침반이 흔들리는 방향 사이의 간극. 이 간극은 결코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인사라는 일이 가진 근본적인 딜레마였다.


나는 '인사(人事)' 업무를 담당한다. 사람의 일(事)을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면접이라는 행위는 불가피하게 한 사람의 '인사(人史)'를 평가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살아온 수십 년의 시간, 수많은 노력과 좌절, 그리고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쌓아온 모든 역사(歷史)를, 우리는 고작 10분 남짓한 시간과 몇 장의 서류로 판단하고 점수를 매겼다.


'이력(履歷)'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처럼, 그녀가 걸어온 발자취를 나는 고작 몇 개의 숫자로만 읽어냈던 것이다. 한 인간의 삶의 무게와 깊이를, 과연 10분이라는 찰나의 시간 안에 측정하고 재단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의 절실함은 서류에 적힌 숫자로, 면접관들의 질문과 답변 사이의 논리적 흐름으로, 결코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다. 시스템은 효율성을 위해 그렇게 축약된 역사를 요구했지만, 내 안의 인간적인 감각은 그 축약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인사 담당자로서 이 간극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지도를 맹신하며 나침반의 존재를 외면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침반의 울림에 귀 기울이다가 지도를 벗어나 길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명확한 이분법의 경계 너머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밤이었다. 이전 부서에서 다루던 숫자들은 명쾌했지만, 이제 내가 마주한 사람이라는 문제는 끝없는 질문과 회색의 영역으로 나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이 복잡하고 모호한 간극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나아가 나만의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 밤, 나는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한 채, 다만 K씨의 얼굴과 그녀의 간절했던 나침반의 울림을, 그리고 10분이라는 시간 속에 압축되어 버린 그녀의 아득한 인생의 역사를 오래도록 떠올릴 뿐이었다.


하지만 채용 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면 최종 면접이 시작될 터였다. 나는 더 이상 K씨의 잔상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절실함들을 마주하고, 더 무거운 결정들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6일 오후 01_27_13.png


이전 04화신입직원이 보낸 퇴사 메일-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