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씨의 복직 발령 공문이 결재 라인을 타고 시스템에 안정적으로 내려앉았을 때, 나는 짧은 안도감과 함께 희미한 성취감을 느꼈다.
엉킨 실타래 같던 문제의 매듭 하나를 조심스럽게 풀어낸 기분. 책상 위 결재판에 가지런히 정리된 서류들은 더 이상 복잡한 과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이정표처럼 보였다.
인사 업무란 때로 이렇게 길을 찾아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깨달음에 잠시 취해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 4시 15분. 한 주간의 소음이 잦아들고 사무실에 나른한 평온이 깃들 무렵이었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주말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며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추었고, 간간이 들리는 스테이플러 소리만이 공간의 정적을 가르고 있었다. 다음 주 교육 일정표를 정리하던 내 손길도 느긋해지던 바로 그 순간, 모니터 우측 하단에 소리 없이 팝업 된 이메일 알림창이 그 평온을 깨뜨렸다.
제목은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0000부 000계장입니다. 과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은 더 짧았다.
'혹시 잠시 시간 괜찮으실 때 뵙고 싶습니다.'
발신자는 입사 4개월 차 신입사원 E였다.
수많은 면담 요청 메일을 받아봤지만, 이렇게 짧고 건조한 문장은 드물었다. '안녕'이나 '안녕하세요' 같은 흔한 인사도, 면담 주제를 암시하는 어떠한 단어도 없었다.
마치 감정 없는 기계가 보낸 신호 같았다. 동시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가진 특유의 무게감은, 결코 가벼운 내용이 아닐 거라는 묵직한 예감을 안겨주었다. 인사 담당자로서의 지난 경험과 직감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업무 협조 요청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담당자로서 마주하는 첫 번째 '퇴사'의 징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확신이었다.
심장이 쿵, 하고 작게 내려앉았다. 짧은 문장 너머로 느껴지는 단호함. 지난 몇 달간 수많은 서류를 처리하며 무뎌졌던 감각의 날이 서는 기분이었다.
나는 곧바로 HR시스템을 열어 'E사원'의 파일을 다시 띄웠다. 9월에 발령받은 나는 그의 채용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과 얼굴은 낯설지 않았다.
불과 한 달 전, 신입사원 심화 연수에서 그의 모습을 본 기억이 선명했다. 당시 나는 연수 과정의 참관자로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유독 눈에 띄었다.
발표를 할 때는 짧지만 핵심을 찌르는 말을 했고, 조별 토의에서는 늘 부드럽게 웃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했다. 그러면서도 논의가 길을 잃을 때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줄 아는 단단함도 갖추고 있었다. '참 괜찮은 신입이 들어왔구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그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었다.
시스템은 나의 기억을 증명하고 있었다. 올봄,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인재. 서류 전형 점수는 최상위권이었고, AI 역량검사 결과지에는 '높은 안정성'과 '성실성'이라는 단어가 선명했다.
면접관들은 하나같이 그의 총명함과 의욕적인 태도를 칭찬했다. 그 단단했던 포부가 불과 넉 달 만에 흔들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스템은 그의 화려한 스펙을 숫자로 증명하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이 떠나려는 이유는 단 한 줄도 설명해주지 못했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를 만나기 전, 그의 팀장과 먼저 통화하는 것이 순서였다.
"팀장님, 인사팀 OOO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E사원 요즘 팀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요?"
수화기 너머 팀장의 목소리는 바쁘고 약간은 피곤해 보였다.
"E사원이요? 글쎄요... 조용하고,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잘해요. 별문제 없는 것 같은데...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아닙니다, 팀장님. 그냥 신입사원들 잘 적응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는 중이라서요."
짧은 통화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도 나는 한동안 팀장이 남긴 ‘별문제 없음’이라는 말을 곱씹었다.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였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제 몫의 일을 조용히 해내는 직원. 내가 8년간 몸담았던 숫자의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바로 저 ‘별문제 없음’의 상태였다.
예측과 결과가 어긋나지 않고, 어떠한 변수도 발생하지 않는 완벽하게 통제된 상태. 보고서의 모든 셀이 오차 없이 채워지고, 그래프의 모든 선이 예측한 궤도를 따라 흐르는, 그 고요하고 안정적인 질서.
하지만 사람의 일도 과연 그럴까. 한 사람의 성장을 ‘별문제 없음’이라는 다섯 글자로 요약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서글픈 칭찬이자, 가장 잔인한 무관심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이야기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 순간, 몸속의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애써 발굴했던 하나의 가능성, E사원이라는 이름에 담았던 희미한 기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채, 서늘한 공동(空洞)만이 남았다.
팀장이 말한 '별문제 없음'이라는 단어가, 그 공동 속에서 의미 없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신입사원의 퇴사란 단순히 T.O.(정원) 하나가 비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가졌던 기대와 책임의 한 조각이 그렇게 떨어져 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정해진 역할의 경계를 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에 살고 있다. 타인의 영역에 깊이 개입하지 않는 것을 ‘존중’이라는 세련된 이름으로 포장하고, 서로에게 무심한 것을 ‘쿨함’이나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팀장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저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하고, 성과라는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평범한, 그리고 바쁜 관리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의 세계에서 ‘문제’란 보고서에 명시해야 할 사건이나 사고, 혹은 시스템의 명백한 오류를 의미했을 터이다. 그의 분주한 레이더에 E사원은 아무런 경고 신호도 보내지 않은, 그래서 ‘별문제 없는’ 존재였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이제 막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신입사원에게 ‘별문제 없음’은 때로 ‘아무런 연결도 없음’과 동의어일 수 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짙은 안갯속에서, 아무도 나에게 진심으로 말을 걸어주지 않는 상태. 그것은 안정적인 평온이 아니라, 소리 없는 고립일 수 있다.
나는 E사원이 보낸 짧고 건조한 이메일이, 바로 그 고립의 한가운데서 보낸 마지막 구조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팀장의 무심한 대답은, E사원이 팀 안에서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상상을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E사원에게 답장을 썼다. 딱딱한 면담실의 회색 테이블은 이 대화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곳은 통보와 설득을 위한 공간이지, 이해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E사원님,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다면 오늘 퇴근 후, 회사 근처 카페에서 잠시 볼 수 있을까요? 편하게 차라도 함께 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짧은 답장이 돌아왔다.
약속 장소인 카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먼저 가 앉아 있었다. 낡은 나무 테이블, 커피 원두 볶는 냄새, 나직한 대화 소리. 적어도 이곳은 한 사람의 진심을 꺼내놓기에 더 나은 장소일 거라 믿었다.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E사원이 굳은 표정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갓 나온 신입사원 특유의 어색한 정장 차림. 하지만 넉 달 전, 최종 합격자 발표 후 부모님과 함께 기쁘게 회사 사옥을 찾아왔을 때의 그 생기는 온데간데없었다.
연수 기간 내내 빛나던 눈은 희미하게 지쳐 보였고, 조금은 컸던 것 같던 양복은 이제 몸에 얼추 맞았지만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갑옷처럼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그는 여러 번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따뜻한 커피를 권하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김이 오르는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창밖은 어느덧 완전히 어두워져, 카페의 불빛이 빗방울 맺힌 유리에 어지럽게 번지고 있었다.
심화 연수 때의 총명했던 그와, 지쳐 보이는 지금의 그 사이. 그 간극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불과 한 달 전, 나는 연수원 강당의 맨 뒷자리에서 그의 발표를 지켜봤었다. 그는 ‘우리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거창한 주제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신입사원다운 풋풋한 열정과 함께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빛났고, 목소리에는 자신이 이 조직의 의미 있는 일부가 될 것이라는 단단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는 우리가 채용 과정에서 찾고자 했던 ‘인재상’의 완벽한 현신(現身)처럼 보였다.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그 가능성이 조직 안에서 아름드리나무로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는, 갓 심은 묘목이 채 뿌리내리기도 전에 시들어버린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의 빛을 앗아갔을까. 무엇이 그의 단단했던 확신을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었을까. 단순히 업무가 맞지 않아서? 팀 분위기가 낯설어서? 그런 표면적인 이유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상실감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문득, 우리가 한 사람을 ‘채용’하는 행위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가 조직이라는 낯선 토양에 무사히 ‘뿌리내리는’ 과정을 너무나 당연하게, 어쩌면 오만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
채용은 시작과 끝이 분명한 하나의 프로젝트다. 수많은 지원자 속에서 가장 빛나는 이력서를 골라내고, 몇 단계의 검증을 거쳐 마침내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 계약서에 서명이 끝나면, 조직의 관점에서 ‘획득’이라는 과업은 성공적으로 완수된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그것은 거대한 서사의 프롤로그에 불과했다.
우리는 최고의 씨앗을 고르는 데에는 혈안이 된다. 어떤 품종인지, 얼마나 튼튼한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분석한다. 하지만 정작 그 씨앗이 심어질 밭의 상태는 얼마나 세심하게 살피고 있을까.
그 팀의 토양은 새로운 싹을 틔울 만큼 부드러운지, 기존의 나무들이 새로운 성장을 방해할 만큼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는 않은지, 가드너 역할을 해야 할 리더는 물을 주는 법을 알고는 있는지와 같은 고민들을 얼마나 깊게 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저 ‘별문제 없음’이라는 무심한 말 뒤에 숨어, 씨앗이 스스로 척박한 땅을 뚫고 자라나 주기를 바라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스로 살아남지 못하는 씨앗은, 그저 나약한 품종일 뿐이라고 너무 쉽게 단정해 버린 것은 아닐까.
그의 고통은 과연 개인의 '성장통' 문제인가, 아니면 그를 품어주지 못한 우리 조직의 '구조적인 병증'인가. E사원의 지친 얼굴은 내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조기 퇴사를 너무 쉽게 개인의 '부적응' 문제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그의 퇴사가 만일 그의 나약함이 아니라, 우리의 공고한 '무관심' 때문이라면.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바쁜 팀장일까, 제도를 설계한 인사부일까. 아니면 그 침묵을 용인한 조직 전체인가.
꼬리를 무는 끝이없는 질문의 끝에서 나는 결국 나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나는 이제 그 시스템의 일부였다. E사원의 얼굴 위로,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수많은 새로운 얼굴들이 겹쳐 보였다. 그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데려오는 것만이 나의 역할이 아니었다.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회색의 시간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밭을 갈고 돌보는 것 또한 나의 책임이었다. 그것은 숫자로 기록되지도 않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림자 노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 비로소 하나의 씨앗이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무겁게 깨닫고 있었다.
그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은 이제 단순히 한 개인의 퇴사 사유를 넘어, 내가 몸담은 이 조직과 나 자신을 향한 무거운 질문이 되어 돌아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