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자 인사배치의 딜레마

by Just Be


지난 이야기


8년간 숫자와 씨름하던 부서에서 인사부로 발령받은 첫날, 나는 HR시스템에 기록된 천 명의 삶의 무게를 마주했다. 부장님은 감을 익힐 겸, 2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앞둔 C씨의 파일을 열어보라고 했다.


15년 치의 빽빽한 기록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느낀 것도 잠시, 나는 첫 번째 난관에 부딪혔다. 그가 희망하는 모든 부서의 자리가 이미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01화 인사부로 발령받았습니다




2화 - 가장 어려운 방정식


책상 위에는 ‘C씨’의 복직 신청서가 놓여 있었다. 각진 명조체로 인쇄된 '희망 부서'란에는 세 개의 부서 이름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지만, 내 모니터 속 전사 조직도(T.O. 현황)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 곳 모두, 초록색(여유)이나 노란색(예정)이 아닌, 붉은색(만석)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C씨는 2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 입사해 15년을 한결같이 달려온 분이었다. 그의 과거 HR시스템 기록 카드에는 성실함을 증명하는 'S'와 'A' 등급이 빼곡했다.


그랬던 그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잠시 멈춰야만 했고, 이제 다시 트랙으로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트랙의 풍경이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는 '유사 직무'에 배치하는 것이 맞습니다."


부장님의 말씀은 교과서처럼 명쾌했다. 하지만 C씨가 휴직 전 근무했던 팀은 작년 대대적인 조직개편으로 인해 다른 팀과 통폐합되었다. '유사 직무'라는 개념 자체가 안개처럼 희미해진 상황이었다.


희망 부서장들과의 통화는 예상대로였다. 보통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현업에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제안은 환영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직의 생리란 묘해서, 새로운 인력은 종종 새로운 사업과 추가 업무라는 ‘책임’을 동반했다.


각자의 목표 달성에 여념이 없는 부서장들에게, 오래 자리를 비워 적응 기간이 필요한 직원을 받아 새로운 판을 벌이는 것은 반가운 기회라기보다 부담스러운 변수에 가까웠다.


"좋은 분인 건 알지만, 지금 당장 T.O.가 없습니다.",


"우리 팀 업무와는 결이 좀 다른데...",


"오래 쉬셨으니 적응 기간도 필요할 테고..."


모두가 정중했지만, 그 말 속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딜레마는 명확했다. 회사는 그에게 '어떤 자리든' 내어줄 수 있지만, 과연 그것이 다시 달리려는 사람에 대한 최선일까? 공석이 생긴 지방의 어느 부서로, 혹은 누구라도 대체 가능한 한직으로 그를 보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처리'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지난 15년과 앞으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배려'는 아닐 터였다. 나는 그의 복직 신청서를 단순한 서류가 아닌, 한 사람이 다시 시작하려는 '재시동 버튼'으로 느끼고 있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6일 오전 11_17_30.png




며칠간 나는 퇴근 후에도 C씨의 과거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오래된 프로젝트 보고서, 그가 작성했던 기획안, 심지어는 신입사원 시절의 교육 이수 기록까지.


그러다 먼지 쌓인 과거 자료 속에서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10년 전, 그는 사내 '데이터 분석 전문가' 양성 과정 1기를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던 기록이 있었다. 지금은 회사의 핵심 역량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근 기록까지 살피던 중, 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서를 발견했다. 그가 육아휴직 기간 중에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제출한 ‘자격증 취득 비용 지원 요청서’였다.


잊힌 과거의 역량과 현재의 노력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C씨는 멈춰있던 것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디지털전략팀으로 향했다. 보통 인력을 제안하면 마다할 부서는 없었다. 어느 팀이나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었으니까. 하지만 디지털전략팀은 회사 내에서 일종의 '별종'으로 통하는 곳이었다.


주 업무에 프로그램 개발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금융이 본업인 우리 회사에 해당 역량을 갖춘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공공기관의 특성상 외부 전문가를 마음대로 채용할 수도 없어, 그들은 늘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반 직원을 배치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와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없기 때문이다.


팀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의 첫 반응은 역시나 시큰둥했다.


"저희 팀에 맞는 인력이 내부에 있을 리가요. 일반 직원은 와도 저희가 맡길 업무가 마땅치 않습니다."


나는 C씨의 과거 이력과 최근 취득한 자격증에 대해 설명했다. 무심코 서류를 넘기던 팀장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잠깐만요, 이 분이 휴직 중에 이 자격증을 땄다고요?"



며칠 후, 나는 C씨와 마주 앉았다. 희망 부서 배치가 어렵다는 사실을 전할 때, 그의 얼굴에 스치는 실망감을 애써 외면했다. 대신 나는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C씨께서 10년 전에 데이터 분석가 과정을 수료하셨고, 최근 휴직 중에도 빅데이터 분석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신 기록을 보았습니다. 지금 저희 회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역량입니다. 혹시 디지털전략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C씨의 잠재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잊고 있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그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희미한 설렘이 섞여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C씨의 복직 신청서 '배치 부서'란에 '디지털전략팀'이라고 적었다. 가장 어려운 방정식의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가 새로운 팀에서 겪을 어려움, 내가 감당해야 할지도 모를 책임 등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산더미 같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가장 올바른 첫발을 떼었다고 믿고 싶었다.


인사 업무란, 어쩌면 비어있는 자리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함께 그려 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6일 오후 03_35_15.png




그날 이후, 나는 HR시스템의 화면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시스템 속 기록들은 한 사람의 과거를 증명하는 명백한 사실의 집합체다.


우리는 그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을 평가하고, 분류하고, 때로는 판단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미래까지 재단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C씨의 사례는 명확히 보여주었다.


10년 전의 낡은 교육 기록과 휴직 중에 취득한 자격증 사이, 그 아득한 시간의 강물 속에는, 시스템이 결코 포착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의지와 잠재력이 흐르고 있었다. 기록된 과거는 점들의 나열에 불과했지만, 그 점들을 연결하여 미래의 별자리를 그리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었다.


문득 조직과 개인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은 '효율'이라는 언어로 인력을 '배치'하려 하고, 개인은 '의미'라는 언어로 자신의 '역할'을 꿈꾼다.


C씨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월급이 나오는 '빈자리'가 아니라, 2년의 공백을 딛고 다시 설 수 있는 '의미 있는 역할'이었다.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한 채 효율성의 논리만으로 그를 배치했다면, 우리는 한 명의 직원을 얻는 대신, 한 사람의 소중한 의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사 담당자란, 그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고 양쪽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최적의 번역어를 찾아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물론 언제나 완벽한 번역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여전히 효율성의 논리를 따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날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 너머의 가능성을 믿고, 효율의 언어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그것이야말로 축적된 과거의 데이터를 관리하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자, 차가운 시스템에 인간의 온기를 불어넣는 인사(人事)의 본질일 것이라 믿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0월 16일 오후 03_38_56.png


이전 01화인사부로 발령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