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교육위주로 하는 특성화고등학교의 특성상 대개는 학업에 큰 뜻이 없는 학생들이 입학하게 된다.(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기초학력이라는 벽
지금 근무하는 고등학교는 시골 변두리에 있는 전교생 100명 이하의 작은 학교로내신120~130 정도의학업 성적이 미달되는 학생이 주로 오게 된다.
어느 정도 수준이냐면,
하루는 식물 잎의 기공이 열리고 닫히는 과정을 가르치는데 이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삼투압이라는 선행지식이 요구된다. 삼투압을 설명하니 다들 아리송한 얼굴이길래 삼투압이 뭔지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10명 중 1명만이 손을 들었다.
교사는 학생이 발표하는 게 쑥스러워서 말을 안 하는 건지 진짜 몰라서 답을 못하는 건지 얼굴만 봐도 안다.
삼투압의 개념을 설명해 주려고 농도의 개념을 아는지 확인했더니 정확히 아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용질/용액'이 농도의 개념임을 설명하면서 분수의 개념이 등장했는데 '2/3'과 '3/4'중에 뭐가 더 큰 수인지 모르는 학생들도 꽤나 있어서 기공의 개폐작용을 설명하다가 갑자기 초등학교 교육과정인 분수까지 내려갔다 온 적이 있다.
나는 수업하는 게 즐겁고 가르치는 걸 좋아하지만 가끔씩 기초학력이라는 벽에 턱 막히곤 한다.
아무리 가르치고 가르쳐도 내 역량으로는 도저히 되질 않는 아이들도 있고 기본적으로 학습된 무기력이 기저에 있는 학생들이 많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수업을 해보려고 애써보는데 잘 안될 때도 있다.
원래 나는 가르치는 걸 좋아했었지
그러던 어느 날 똘똘한 학생 한 명을 데리고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도대회에서 금상을 받아야지만 전국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는데 규모가 큰 대회이기 때문에 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다는 것부터 그 학생이 성실하고 훌륭한 학생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이 학생은 내가 무언가를 가르치면 그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게 느껴진다. 하나를 가르치면 그를 응용해서 다른 예시를 들어온다. 가르치는 행위 그 자체가 재미있었던 적은 오랜만이었다.
나는 이렇게 남을 가르치는 게 즐거워서 교사가 된 거였는데 그동안 행정업무와 생활지도에 치여 잊고 있었다. 오랜만에 꿈을 찾던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내가 문제를 내는 속도보다 학생이 문제를 푸는 속도가 더 빠를까 봐서 긴장하면서 문제를 냈다. 매일매일 9시 40분까지 학생과 남아서 공부를 했는데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이 힘들지는 않았다.
애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교사인 내가 최대한 힘닿는 데까지 이 학생을 서포트해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처음부터 학생에게 큰 기대는 없었는데 이 학생이 언젠가부터 동기부여가 된 건지 대회가 2주 남은 시점부터 엄청나게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했단다. 마지막에는 무리해서 컨디션 난조를 겪기도 했다.
추후 다른 선생님이 말해주었는데 학생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자기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교사와 제자로서좋은 시너지를 냈고 이런 학생을 처음 지도해 봐서 그 과정을 하나하나 즐길 수 있었다.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학생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열심히 했으니까 결과도 좋으면 좋겠지만, 결과에 관계없이 대회가 끝나면 바닷가를 보러 가자! 그동안 고생했다!"
아쉽게 상은 타지 못했지만 열심히 노력했던 우리를 기념하며 대회가 끝난 뒤 신나게 놀러 다녔다. 내년에 또 대회에 나가보기로 했는데 나는 이 경험을 통해 교사의 역할에 대해 깨달았다.
교사는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적절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도 필요하구나.
교사가 어떤 지도를 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태도가 달라지는 거였다. 그리고 학생의 태도도 교사에게 동기부여가 되는구나.
사실은 그동안 나도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가르쳐주려고 해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도망가는 학생들, 아무리 똑같은 걸 반복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경험하며 열정이 사그라들던 와중 훌륭한 학생을 만나 또다시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사의 역할은 정원사
루소는 교사를 정원사에 비유했다.
정원사가 좋은 토양과 수분, 광선을 적절히 제공하여 식물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돕듯이, 교사도 학생이 가지는 적성과 능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경험을 하며 수국이 생각났다.
수국은 플라보노이드계 색소를 가지고 있는데 플라보노이드계 색소 중 대표적인 것은 안토시아닌이다.
중학교 때 배웠던 양배추 지시약 실험을 떠올려보자. 양배추 지시약은 산성도에 따라 색이 다양하게 변한다.
같은 원리로 수국의 색깔도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달라진다. 토양이 산성이면 푸른빛을 띠고 토양이 염기성이면 자주색을 띤다. 이 말은 수국의 색은 타고나는 것이 아닌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도 마찬가지라서 교사가 어떤 자극을 주고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것 같다.
어떤 색깔이 더 좋고 나쁜지는 없다. 그건 상대적인 것이고 학생의 진로를 세속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싶지는 않아서 색깔과 연결했다.
기초 학력이 부족한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또 어떤 교육적 자극을 줘야 할지 또 고민하고, 성찰하고, 연구해 봐야겠지만 학생 스스로가 원하는 색의 꽃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열심히 지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