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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Jun 03. 2024

명왕성을 잊지 마세요 : 플루토(하데스)의 힘

1. 서론


명왕성. 지금은 '왜행성 134340'으로 불리며 태양계 행성 지위를 박탈당한 작은 천체.


어릴 때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주문을 외웠었고 '태양계의 행성은 9개!'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국딩들(현재 중년아재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9번째 행성 명왕성이 행성이 아니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인간 기준으로 볼 때, 명왕성은 무척 기구한(?) 운명입니다. 괜히 인간들이 9번째 행성을 발견했다고 난리치면서 환호하다가 갑자기 넌 행성이 아니야 왜행성이야 숫자도 13만 얼마야 한참 후졌어 라고 선언해 버리면 영 거시기 하겠죠. 버림받은 반려동물처럼 서러워할 것 같습니다.


물론, 명왕성 자체는 아무 생각이 없는 무생물일 겁니다. 가이아 이론 등에 따르면 행성도 그 자체적으로 지성을 가진 생명이 될 수 있겠지만 일단은 아무 생각 없다는 게 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인정된 과학적 사실입니다. 태양계 3행성의 먼지 같은 존재들이 무슨 이름을 부르든 간에 명왕성의 본질은 그대로고 40억 년 넘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역시 인간의 기준으로 생각할 때, 뭔가 그럴듯한 스토리를 붙여 주고 싶기도 하죠. 제가 한 건 아니지만 일단 행성 지위 박탈하고 팽 시켜 버렸으니 미안하기도 하구요;;


앞에서 행성-위성 이야기를 할 때에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을 나열한 후 신화와 상상력을 덧붙였는데, 오늘은 좀 다르게 전개하려 합니다. 문화콘텐츠 및 신화에 나온 명왕성과 명왕 플루토(하데스)에 대해 살펴본 뒤 과학적 사실로 넘어가고, 그 다음에 SF적 설정을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2. 명왕(冥王) 플루토(하데스)


명왕의 명(冥)은 '어두울 명'이라고 합니다. 참 한국말 어렵죠. 밝은 것도 명(明)인데 어두운 것도 명(冥)입니다. 똑같은 단어가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데도 계속 그대로 쓰고 있다는 게 살짝 어이없기도 합니다.


뭐, 한국말에 이런 게 한두개도 아니죠. 정복.승리를 의미하는 패(覇)와 패배를 의미하는 패(敗)도 같은 소리고, 사람의 상체 중앙부를 배(한국말)라고 하는 동시에 반대쪽 등짝 부분도 배(背)라고 합니다. '배면갑'이 배를 가리는 갑옷인지 등짝을 덮는 갑옷인지 헷갈립니다. 아주 그냥 사흘 나흘 정도는 싸대기 때릴 만큼 헷갈립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아주 짜증나는 현상이지만, 저처럼 (쓸데없는) 상상을 많이 하는 SF작가에게는 말장난하기 딱 좋습니다. 저승세계의 왕 명왕(冥王)과 빛을 상징하는 명왕(明王)이 똑같은 발음이라니. [어둠은 빛을 낳고 빛은 또 어둠을 낳으니 어둠이 곧 빛이요 빛이 곧 어둠이라. 빛과 어둠을 융합하여 하나로 합칠지니 세상은 소멸하고 다시 태어나리라!] 등등 오버질을 할 수... 있겠죠?



(1)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


잠시 옆길로 샜는데, 명왕성의 영어 이름은 플루토(Puto)입니다. 미키마우스가 키우는 개 이름도 플루토이긴 하지만 그건 딱히 명왕성과 관계 없는 것 같고. 일단 명왕성은 로마 시절 저승의 왕으로 숭배받았던 명왕 플루토를 지칭하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하데스'였습니다.


하데스는 그리스 신화 시절부터 매우 애매모호한 지위였습니다. 분명 제우스-포세이돈과 함께 '천하를 3등분하여 나눠 가진 1인'(천하삼분지계)이었으니 매우 강력했을 것이고 최소한 넘버3 자리는 꿰찼다는 건데, 정작 그리스 신화에서의 비중은 낮은 편입니다. 강간대마왕 듀오인 제우스-포세이돈에 비하면 조연 수준이죠.


하데스의 비중이 낮다는 건 '올림포스 12신'에서 뙇 드러납니다. 천하를 3등분한 넘버3가 올림포스 12신을 셀 때에는 제외되어 버리죠. 삼국지에 비유한다면 위나라-오나라 이야기만 나오고 촉나라는 저기 어디 딴나라 취급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창업 당시에는 (명작 코미디 조폭 영화 넘버3의 한석규 급으로) 넘버3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올림포스에서 소외되어 혼자 푸르딩딩한 얼굴로 저승에 콕 박혀 있는 '프로방콕러' 하데스. 페르세포네 납치 사건을 빼면 주요 사건에서는 거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하데스.


하지만, 페르세포네 납치 사건 당시에는 꽤 비중 있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 좋은 역할은 아니지만...


페르세포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관련해서 '디오니소스 이야기'도 추가하겠습니다.



(2) 페르세포네(디오니소스 이야기도 일부 추가)


다들 아시다시피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의 왕비로서 사실상 저승세계를 공동 통치합니다. 처음에는 납치결혼이었지만 나중에는 행복... 했었나 모르겠네요.


정상적인 신화(그리스신화에서 정상/비정상을 따지는 게 의미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에서는, 페르세포네가 처녀 선언을 했다가 하데스에게 납치되는 걸로 나옵니다. 처녀 선언이 계속 유지되었다면 아테나-아르테미스-페르세포네로 이어지는 처녀신 3대장 클린업트리오가 완성되었겠지만... 하데스의 난입(!)으로 이 클린업트리오가 깨지고 페르세포네 자리에 그녀의 고모 헤스티아가 들어와 버렸죠;;



(잠시 제 예전 소설에 반영한 설정을 얘기하면)


아테나-아르테미스-페르세포네 3대장 라인업이 완성되었다면, 처녀신 미모 레벨을 따졌을 때 그 수준이 가히 삼국지 관-장-조 (관우 장비 조운) 라인 / 한국야구 전성기의 이-마-양 (이승엽 마해영 양준혁) 라인에 맞먹었을 겁니다. 미모 수준이 거의 98~99 찍었을 것이고, 처녀신 3명 모이면 매력 100 아프로디테도 때려잡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환상의 라인업이 깨졌습니다. 하데스가 난입하면서 페르세포네를 훅 낚아채 버렸고 결국 그 자리에 고모 헤스티아가 들어왔죠.


비유하자면, 삼국지 관우 장비 조운 트리오 중에 조운이 방출되고 그 자리에 '황충'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물론 황충도 절대 약한 장수가 아닙니다만, 나관중 버프로 83만 대군을 혼자 헤치고 나오는 조자룡의 포스에 비할 바는 아니죠. 모든 여신들은 불로불사라서 젊은 시절 미모를 그대로 유지한다지만 그래도 젊은 처녀신이 더 낫잖아요.



그런데 말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대로, 처녀신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결혼했다는 건 그나마 정상(!)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 정도면 정상이에요. 늘 있는 일입니다.


또 다른 버전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많이 심하죠.


그 또 다른 버전은... '제우스의 친딸 강간'입니다.



페르세포네는 제우스-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항렬로 따지면 헤스티아-데메테르-헤라 3명이 모두 제우스의 친누나였고, 그 중 데메테르와 헤라가 제우스의 자식을 낳은 거죠.


이 '어머니 문제'는 신격(神格)을 따질 때에 상당히 중요한데요. 제우스의 아들딸 중에서 제우스와 동급인 어머니를 둔 건 3명 뿐입니다. 헤라의 아들들인 아레스와 헤파이스토스,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 이렇게 3명 뿐이에요.


엄친아 아폴론, (가끔 광년이 되는) 아르테미스, 지혜로운 전쟁여신 아테나, 말빨의 달인 헤르메스 등등 많은 3세대 신과 영웅이 있지만 그들 중 '헤라와 동급의 어머니'를 둔 건 페르세포네 한 명 뿐입니다. 헤라가 낳은 아들 중 헤파이스토스는 외모 때문에 버림받았고 아레스는 깡패로 묘사될 때가 많으니, 만에 하나 제우스가 헤라를 정실부인 자리에서 내쫓고 다시 혈통 논쟁을 한다면 페르세포네가 성골로 등극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일까요. 친아버지 제우스에게 강간당한 페르세포네는 '매우 뛰어난 아들'을 낳습니다. 당시에는 '자그레우스'라 불렸고 나중에 '디오니소스'라 불리는 아들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자그레우스는 엄청 잘생기고 뛰어났다고 합니다. 너무 뛰어나서 제우스가 자신의 자리를 자그레우스에게 물려줄 생각까지 했다고 하네요. 이렇게 되었다면 페르세포네는 단숨에 태후마마 자리로 직행했을 것이고, 선대왕의 친딸인 동시에 선대왕의 아내 역할까지 겸했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헤라는 아웃오브안중 낙동강오리알로 떨려납니다. 젊은 여신 페르세포네는 (제우스의 친딸이라는 걸 제외하고) 미모만 따져도 아프로디테와 경쟁할 정도이고 실제로 존잘남 아도니스를 두고 다툴 때에는 아프로디테와 거의 대등했었죠. 그런 여신이 능력 좋고 잘생긴 아들까지 낳았으니 자칫하면 헤라가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헤라는 '티탄'을 동원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최대 적을 끌어들여 자그레우스를 공격하게 하죠.


자그레우스는 갈갈이 찢겨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제우스는 그 심장을 챙겨 다시 인간 여인의 자궁에 넣었고... 그 인간 여인이 '세멜레'입니다. 그렇게 인간의 몸을 빌어 다시 태어난 신이 바로 '디오니소스'입니다.


(제 소설 설정에서는 [제우스가 자그레우스 암살 사건을 알면서 방치했거나, 혹은 제우스가 직접 지시했다]는 식으로 나옵니다. 제우스는 본인이 그러했듯이 아들에게 제거당할 운명이거든요. 자그레우스가 뛰어나면 아버지로서 기쁘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제우스 본인이 제거될 수 있으니 견제할 수 밖에 없겠죠.)



이 설정을 앞 설정과 합쳐 보면...


페르세포네는 자신의 처녀라고 믿고 있었으나 처녀가 아니었습니다. 친아버지의 강간으로 임신해 똑똑한 아들을 낳았으나 그 아들이 괴물들에게 공격당해 갈갈이 찢겨졌죠.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는 또 다른 치트 아이템이 있습니다. 기억을 잊게 해 주는 강물 - '레테의 강물'이 있죠.


페르세포네는 자식을 잃은 고통을 잊기 위해 자발적으로든 / 타의에 의해서든 레테의 강물을 마셔야만 했을 겁니다. 저승을 관리하는 하데스는 레테의 강물을 넘겨 줄 때 사실관계를 파악했을 것이고, 제우스에게 협조하는 차원에서 납치 쇼(!)를 벌였을 겁니다.


진실을 다 밝히게 된다면... 술의 신인 동시에 광기(狂氣)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자그레우스'로서의 자신을 각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디오니소스의 친어머니는 저승을 공동 통치하는 여왕입니다. 양아버지 하데스는 딱히 접점이 없지만 그래도 전쟁 일어나면 페르세포네 편을 들어 주겠죠.


하나 더. 디오니소스는 페르세포네의 아들인 동시에 세멜레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거죠.


고대 로마에서 그리스로마신화 다신교를 종교의 지위에서 끌어내린 유일신 사상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이고, 그 수퍼스타가 강조한 게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수퍼스타와 동급이기도 합니다.



이 설정을 한 번 써먹긴 했습니다. 19금 야설 치고는 설정이 너무 복잡해져서 후반부에 조회수가 급감하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한 번 써먹었습니다.


뭐, 또 써먹을 수 있겠죠. 하데스와 저승세계에 뭔가 큰 의미를 부여할 때 또 한 번 가져올 수 있습니다.


충격과 공포 수준의 설정은 여기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이제 왜행성 134340으로 전락한 현실 명왕성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3. 왜행성 134340 명왕성의 거대한 하트(Heart)


인간이 이름을 붙이든 말든, 행성 분류에 넣었든 빼든 간에, 왜행성 134340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표면에 새겨진 거대한 하트 얼음평원도 매우 오랜 시간 동안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 얼음평원은 '스푸트니크 평원'이라고 한답니다. 이름을 보아하니 구 소련 천문학자가 발견한 것 같죠?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릅니다;;


이 하트 모양 얼음평원은 매우 독특한데요. 그 거대한 하트 모양도 중요하지만 '표면이 매끈하다'는 게 더 중요합니다. 대기가 옅은 행성/위성에서 흔히 발견되는 '운석 충돌 자국'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죠.


이런 물리적인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만... 대략 문송한 수준에서 추정하면, '얼음 아래에서 액체/기체가 솟아나오고 그게 표면으로 다시 퍼져 얼어붙으면서 운석 충돌 자국 등 균열을 덮어 버린다'는 현상 같습니다. 즉, 얼음 아래는 상대적으로 따뜻해서 액체/기체가 존재한다는 얘기죠.



이 글 쓰면서 다시 찾아봤는데, 명왕성의 하트 평원은 고체질소로 이루어져 있고 실제 그 아래에 액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액체는 '물(H2O)'일 거라고 하네요. 명왕성 자체적으로 상당한 물을 보유하고 있고 그걸 액체 상태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명왕성의 위치, 크기, 온도를 생각해 보면 명왕성 내부도 꽁꽁 얼어붙어서 액체 상태의 물질이 존재하지 않아야 정상인데... 표면 일부를 매끈하게 만들 정도로 다량의 액체가 존재합니다. 즉,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는 아니라는 거죠.


이 현상을 설명할 만한 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1) 명왕성을 천천히 식게 만드는 단열재가 있을 것이다

2) 명왕성 내부에 별도의 열원(熱原)이 있을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1) 단열재 쪽이 더 합리적입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자연적으로 형성된 '메탄 하이드로레이트'가 일종의 절연단열재로 기능했을 거라는 가설이 있네요. 아마 이게 맞을 겁니다.


다만, SF적 설정으로는 2) 별도의 열원 쪽이 더 좋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명왕성(하데스. 저승세계) 내부에 '타르타로스'가 있잖아요. 영원히 식지 않는 불지옥이 진짜로 명왕성 내부에 있었다고 설정하면 꽤 그럴듯 하죠?



여기에 하나 더. 명왕성의 거대 위성 '카론'을 덧붙여 봅시다.


카론은 위성 치고는 너무 크고 명왕성은 행성 치고는 너무 작습니다. 명왕성과 카론이 서로를 보며 공전하는데 무게중심이 명왕성 밖으로 나와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결국 명왕성이 행성 지위를 박탈당하는 데에는카론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서 카론의 역할은 뭐였죠? '뱃사공'입니다. 즉, 카론은 [이동 수단으로서의 선박]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거죠.


우주에서의 선박. 이건 그냥 '우주선 그 잡채'입니다. 즉, 카론이라는 위성~왜행성은 그 이름만으로도 우주선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 이 정도 살펴봤으면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9행성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저승세계의 지배자로서 강력한 힘을 보유한 플루토(하데스), 그 차가운 왜행성으로 가 봅시다.



4. 명왕성의 힘!


대략 21세기 후반. 인류는 왜행성 134340에서 중대한 발견을 하게 된다. 왜행성 134340에 착륙한 탐사선이 각종 데이터를 보내 왔고, 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하트 모양 얼음 평원 아래에 열원(熱原)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인류는 흥분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저 거대한 열원이 바로 암흑물질(Dark matter)이다!'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있었다.


물론 다수의 과학자들은 그 추정을 믿지 않았지만, 100억명 이상으로 불어난 인간 중에는 돈이 썩어남아돌거나 / 방대한 권력을 가졌으며 그 돈이나 권력으로 황당한 일을 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하나로 뭉쳤다.


지구의 정치가와 재벌과 과학자들은 '사형수'를 명왕성에 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죽을 거면 명왕성 가서 암흑물질 찾아내고 영웅 되라, 뭐 그런 식이었다.


한 사형수가 이 미끼를 덜컥 문다. 역시 낚시 중에 제일은 사람낚시. 넌 이미 낚여 있다. 파닥파닥.



그런데 이 사형수가 만만치 않았다.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긴 했지만 원래는 꽤 천재 소리 듣던 과학자였다. 그는 이 황당한 프로젝트에 큰 흥미를 느꼈고, 가급적이면 제대로 해 보려고 했다.


몇십년 동안 동면 상태로 날아간 뒤 명왕성에 착륙. 강대한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착륙선 및 수중작업 전용 로봇과 함께 명왕성 중심부까지 이동.


가설이 맞았다. 명왕성 중심부에는 암흑물질이 있었고, 그 암흑물질이 아주 미미하게 분해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열이 발생하여 내부의 물덩어리가 계속 액체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가설은 입증했으나, 이 암흑물질이 언제 생겼는지 / 어디서 유입되었는지 / 왜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할 뿐.


사형수 과학자는 연구 결과를 지구로 전송하고 답변을 기다렸으나... 답변이 오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사흘. 답변이 없다.


왜 답변이 없는지에 대해 사형수 과학자는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혹성탈출 오리지널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외치는 대사) "그 망할 멍청이들이 저지르고 말았어!"


지구에는 핵전쟁이 일어났다. 120억 인류를 감당하지 못하고 더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다가 마침내 세계대전이 터져 버렸고, 한 핵미치광이가 발사버튼을 누르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사형수 과학자는 지구의 소식을 듣기 위해 명왕성 탐사선의 장비를 최대한 개조한다. 지구 곳곳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쏘아 올린 전파가 명왕성까지 다다르고, 사형수는 아직 살아 있는 지구인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그런데... 또 다른 전파가 잡혔다. 이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오는 것이었다.


명왕성이 행성이던 시절 위성(Satellite)이었고 지금은 대등한 쌍왜행성으로 불리는 천체 카론. 그 곳에서 알 수 없는 전파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형수는 위험한 도박을 한다. 암흑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착륙선을 카론까지 쏘아 올리는 도전을 한 것이다. 실패하면 당연히 히밤쾅 대폭발로 죽어버리겠지만 성공하면... 카론에서 흘러나오는 전파의 원인이 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도박은 성공. 카론은 그 내부에 '거대한 구조물'을 숨기고 있었다. 카론 전체가 거대한 우주선이었던 것이다.


명왕성 내부의 암흑물질은 그 자체로 타르타로스인 동시에 카론의 동력원이었고, 카론은 거대한 우주선이다. 스타워즈의 데스스타 / 은하영웅전설의 이젤론 내지 가이에스부르크에 맞먹는 초대형 우주요새였다.


이 우주요새를 손에 넣은 사형수는 무엇을 할까? 지구로 돌아가서 지구인들을 구할까? 아니면... 저 머나먼 우주로 혼자 떠나갈까?


선택은 온전히 사형수 혼자만의 몫이다. 천재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지구인들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그저 자비를 바랄 뿐. 굽신굽신.



* 실제 집필하게 되면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할 수도 있겠네요. 지구의 생존자 잔당이 명왕성까지 쳐들어와 대혈투를 벌일 수도 있고, 사형수가 1명이 아니라 커플(!)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업적 성공 가능성은... 늘 그렇듯이 내려놓고 시작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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