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엡림에서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11시간이 걸려 몬둘키리에 닿았다. 뜨거운 씨엠립과 프놈펜의 날씨에 비하면 바람이 많이 불었고 저녁이 되자 제법 서늘한 기운이 옷섶을 파고들어 추웠다. 버스터미널에 마중 나온 가이드 사리를 따라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 부농의 집으로 안내되었다. 건초로 지붕을 삼고 대나무로 뼈대와 벽을 엮어 만든 집은 대나무가 교차하는 사이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외풍이 심한 한옥집 같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나는 외풍이 있는 집에 익숙했고, 한국의 겨울처럼 차가운 날씨가 아니었으니 캠핑을 온 것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부농식 대청마루 위에 이불을 깔고 모기장을 치고 첫날 잠을 잤다. 1월 몬둘키리의 밤 날씨는 꽤나 쌀쌀해서 가지고 간 모든 옷을 겹겹이 꺼내 입고 우비까지 덧입은 채 잠자리에 누웠다. 바람소리가 무척이나 요란했다. 깊은 숲 속에 수많은 나무들이 서로서로 비벼대는 소리였는데, 흡사 그 소리는 파도 소리 같아서 바다의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추웠고 낯설었으며 넘나드는 파도 속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들어본 적이 없는 새소리에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아침이 되자 아른거리는 빛이 대나무로 엮은 매듭과 매듭의 사이를 비집고 집 안으로 새어 들었다. 마치 방 안에서 수많은 별들을 보는 것 같았다. 어둠가운데 촘촘한 빛으로 박히는 점들. 창문이 없어 답답하다고 생각했지만 집의 내부에서는 창밖의 풍경대신 다른 풍경이 있다. 문을 열고 나서자 먼 숲이 정글을 이루며 저 멀리 흐릿하게 펼쳐졌다. 집 앞에는 바나나나무가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었다. 잠을 이룰 수 없게 했던 바람 소리는 지천에 널린 바나나잎의 소리였다. 바나나 나무 잎을 쓸고 지나던 바람 길의 소리였다. 나는 바나나 나무로 둘러싸여 쏟아지는 별들 아래에서 잠을 잤던 것이다. 밤새 불던 바람소리는 바나나 잎새를 빌어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하니 이런 것이 이국적 낭만이 아니고서 무엇일까. 싶었다.
불면조차 반짝이던, 밤
정글 한가운데 거세게 밀려든 바나나 잎의 파도
부농족은 산에 산다. 숲 속에서, 숲을 누리며 숲의 모든 것을 이용하며 살아온 많은 소수민족 중 하나이다. 그들의 집은 그 산 중에 있다. 그들의 집과 삶이 아직도 그 모습을 바꾸지 않고 지금껏 살아오고 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의 집은 산에서 얻은 것들로 지어진다. 그들의 지붕은 건초로 얹었는데, 말린 식물의 잎은 방수가 잘 되는 것으로 2-3년에 한 번씩 다시 지붕을 고쳐 얹는다. 우리의 초가지붕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새로 지붕을 얹어야 한다. 대나무로 촘촘히 짠 벽체를 보면 그들의 정교한 손맛을 알 것 같다. 그들이 짠 바구니들도, 정교하게 교차한 옷의 무늬도 어떤 잉여적인 생산을 위한 창작이 아니라 필요가 만든 환경과 필요가 단련한 기술인 것을 알 것 같다. 내 삶 속에서 필요한 것을 환경과 기술로 익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손님이 묵을 집은 편의를 배려해서 바닥에 나무를 깔아 신발을 벗고 지낼 수 있게 해 두었지만 실제 그들이 사는 집은 흙바닥 위에 대나무로 엮은 마루를 60 cm 정도 반쯤은 높은 마루로 만들어 두었다. 마루 위에서 잠을 자고, 선반처럼 쓰면서 바닥에 둘 수 없는 물건이나 술항아리 같은 것들을 올려 두었다. 집 안에 있는 흙바닥에서는 장작불을 피워 요리를 했다. 불과 함께 생겨나는 메케한 연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얼기설기 바구니 짜듯 엮은 벽의 틈새로 연기가 빠져나갔다.
캄보디아 전역의 보편적인 집들이 바닥에 바로 집을 짓지 않은 데는 더위를 피하고 또 우기에 비를 피해야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부농족들의 집 높이가 다른 지역의 집 높이 보다 상대적으로 낮고 바닥부터 외부와 차단하면서도 내부만 다리를 높여 대청과 같은 마루를 만들어 놓은 것은 다른 지역보다 고지대에 있어 우기에 물이 바닥에 고이지 않고, 아침저녁 날씨가 16도 정도로 서늘하며, 바람이 많을 때도 있어 보온이 필요하면서도 여름 우기에 젖지 않는 구조의 집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 같다. 대나무로 엮은 집 안에 있었지만 정글 가운데 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고, 집은 거센 바람을 막아 주니 비와 바람을 막는다는 가장 일차적인 집의 조건만으로 삶을 꾸려가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런 극한의 추위와 더위가 없는 기후와 환경의 조건에서 그 이상의 잉여는 어떤 의미일까. 땅이 주는 것을 감사해하며 사는 삶 속에서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은 거추장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땅에 주어진 모든 자연, 동물과 사람이 동등하게 평화로운 세계는 어쩌면 잉여가 없는 구조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숲은 그들의 신이자, 터전. 지식이며 영혼이다. 숲에서 모든 것을 얻으며 살았다. 그 어마어마한 숲을 매일 걸으며 산에서 먹을 것, 유용한 것들을 얻는다. 집을 짓거나 먹을 수 있는 재료들을 찾고. 비슷비슷한 나무들 가운데에서 가구를 만들 튼튼한 나무를 구별했으며, 태워 불을 밝힐 수 있는 연료를 구하고, 열매를 얻었다. 가방과 도구를 만들 라탄나무에서 줄기를 구해 구워 먹거나 등에 맬 바구니나 가구를 만들었다. 허리춤에 제법 큰 칼을 차고 필요한 모든 것을 산에서 얻었다. 1월, 건기의 숲은 마치 우리나라의 초가을 같았다. 나무들은 비가 오지 않는 시기에 자신의 몸에서 잎을 떨구었다.
산에 사는 이들은 불 쓰는 법을 잘 알았다. 함께 떠난 정글관찰에서 절대로 불을 피우면 안 될 것 같은 땅에 망설임 없이 불을 지폈다. 주변엔 수많은 풀들이 우거졌고, 죽은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수풀 한가운데였다. 단번에 불이 번져 산불을 이룰 것 같았는데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금세 모닥불이 피어올랐고 정글을 지나며 발견한 라탄줄기를 그 불에 구웠다. 점심 식사는 물가의 수풀에차려졌다. 바나나 잎에 싸 온 밥과 아침에 먹었던 튀긴 생선을 펼쳤다. 정글을 걷다가 발견한 망고와 레몬향이 나는 작은 열매를 반으로 쪼개어 물을 부으니 상큼한 소스가 되었다. 숲에서 따온 잎에 튀긴 생선조각, 구운 라탄나무줄기, 밥을 싸서 소스에 찍어 먹었다. 자연의 맛이 어떻게 조화로운지 알고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도 알았다. 그 수풀에서 차려진 식사는 세상에 널린 수많은 신의 선물이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란탄으로 만든 가방을 등에 매고 다니다가 숲에서 얻은 것들을 쉽게 툭툭 넣고 걸었다. 그날 하루동안 같이 걸었던 길은 10km쯤 되었다. 이 정도는 매일 걸어 가뿐하다고 했다.
부농족은 모계사회였다. 남자가 결혼을 하면 여자의 마을로 가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결혼식이나 축하해야 할 일들이 있는 날에는 마을 잔치가 있는데 그때 마시는 그들의 술을 맛보았다. 쌀과 쌀겨, 발효를 위한 나무껍질 같은 것을 넣고 21일에서 100 정도 숙성시켜 마실 수 있는데 거의 물을 넣지 않은 상태로 숙성 시켰다가 먹기 직전에 물을 넣어 희석시켜 마시는 방식의 술이다. 마시기 직전에 나뭇잎이 가득 달린 나뭇줄기를 항아리 입구에 말아 넣고 물을 붓고 10여분 정도 기다리면 맛이 좋은 술이 된다. 항아리에 대롱을 꽂아 한번 빨면 술의 원액이 물과 희석되어 그 대롱으로 거꾸로 쏟아진다. 새콤 씁쓸한 단맛이 섞인 술맛이 났고 꽤 높은 알코올도수가 있어 놀랐다. 이 독특한 방식의 술항아리는 집안, 높여 세운 마루 위에 마치 코코넛 열매처럼 모여 있었다.
부농족이 마시는 전통술. 쌀겨로 숙성시켰다가 먹을 때 나뭇잎으로 윗면에 눌러 담고 물을 붓는다. 조금 시 다렸다가 술을 대롱으로 빨아올린다. 제법 간단하고 효율적이다.
큰 대나무 통에 각종 야채를 넣어 끓인다. 대나무는 냄비이면서 동시에 요리의 재료이다.
산에서 벼농사도 짓는다. 물골이 보이지 않는 언덕의 마른땅에도 구멍을 파서 씨앗을 넣고 쌀을 재배한다고 했다. 굵은 대나무는 훌륭한 냄비 역할을 했다. 대나무 속에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이면 대나무 속까지 익어 맛있는 야채 수프가 되었다.
또 다른 부농족의 집. 남자들만 있는 깊은 산속에 산악용 오토바이를 타고 한참을 들어갔다.
몬둘키리 가이드 행 Heng과 그곳의 부농사람들은 제법 두꺼운 옷을 입고 지냈다. 심지어는 겨울파카를 온종일 입고 있었다. 한국에서 정리하고 싶은 옷들이 있다면 이곳에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소를 물었을 때 그들의 집 주소는 차가 다니는 길이라 했다. 이 넓은 터가 모두 부농민족들의 정글이 있었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소수민족들을 없애버릴 생각으로 그들의 집터를 가로질러 길을 냈다고 했다. 길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던 어마어마한 숲을 프랑스의 거대기업이 사들였고, 거기에 있던 부농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그곳에 고무나무를 심었다. 숲을 잃은 것은 그들의 터전을 잃은 것이었고, 그들의 삶이 척박해지니 어쩔 수 없이 그 고무들을 수확하는 일에 부농사람들이 일을 하게 되었다. 서양의 강대국들은 자본으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고무농장은 정글을 잃고 터전을 잃은 부농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 이전에는 부농사람과 모든 동물들이 함께 누리던 정글이 서구의 거대 자본이 들어와 새로운 땅의 주인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숲은 모두 베어 내고 고무나무를 심었고 고무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전에 그들의 숲에서 자유롭게 모든 것을 누리고 이용하며 살던 부농사람들은 숲에서 먹거리와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얻는 대신 임금을 받아 필요한 물품을 시장에 가서 사는 삶으로 바뀌었다.
부농족의 터전 정글을 없애고 심은 고무나무 농장. 이곳에서 숲이 주는 자원을 얻는대신 고무채집을 하고 임금을 받는 삶으로 바뀌었다. 바뀐 삶은 모든 사고와 체계과 계급을 바꾼다.
한 민족을 맥을 잇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숲에서 만나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그 나무는 무엇으로 사용하기에 좋은지, 이 풀잎은 먹을 수 있는지, 독이 되는지. 이 열매로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를 아는 것은 지식이다. 그들은 그 정글 속에서 코끼리와 교감하고 건기와 우기의 계절 속에서 그들이 얻어야 할 것들이 충분했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들 다 왔다. 그들의 음식, 술, 음악과 복장, 집은 그런 삶 속에서 필요했고, 그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삶이 변하는 것은 욕망의 구조가 변하는 것이다. 어떤 부농사람은 이미 지천에 널린 바나나, 아보카도, 파이애플, 파프리카, 레몬글라스로 충분히 풍요롭고 부자라고 말했고, 어떤 부농 사람은 옷도 사고 쌀을 사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은근히 돈을 바라는 눈치를 건네었다.
부농족의 묘지. 생전에 그가 쓰던 물건들과 함께 둔다. 정글 곳곳에서 발견한다.
키리는 산, 언덕이라는 뜻이다. 캄보디아에는 라오스와 베트남의 국경 쪽으로 키리라는 단어가 붙은 지명이 있는데, 이 산들마다 소수민족들이 살았다. 주달관이 쓴 진랍풍토기를 보면 야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캄보디아에서 주를 이루는 크메르인 이외의 사람들을 칭하는데 산간지역에서 정글에 기대어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을 칭한다. 예전에는 미개인들이라 칭하며 사람처럼 대하지 않거나 노예로 부리기도 했다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 소수의 민족들이 살아남아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대단한 것이다. 이들의 삶은 그대로 숲이며, 나무이며, 바람이고, 코끼리이다. 이러한 삶이 살아남아 이 시대에 다양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수많은 나무들이 오직 소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요, 세상의 과일이 오직 사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 땅과 기후와 지형의 조건을 적응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사는 '다른 사람', 다른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거 하는 일이다.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는 프놈펜의 프랑스 문화원에서 연 '부농의 날' 행사에 우연히 다녀오게 되었다. 나를 이 부농의 집에 소개를 해준 인류학 박사이자 교수인 카트린이 주최하는 행사였고, 나를 가이드하고 함께 지낸 행이 Heng 행사에 주빈으로 참석했다. 이 얼마나 완벽한 끝맺음인가.
그들은 둘러싼 환경 속에서 완벽히 바람과 빛과 자연의 신호를 알고 그들에게 내리는 자연이 선물인 것을 안다. 그 자연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아는 자들이다, 그 무엇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땅을 누리는 자들, 땅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 풍요로운 민족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농족이 사는 집과 부농의 전통 옷. 오른쪽에 있는 행은 영어를 하는 가이드이며 NGO 활동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부농족들은 문맹이 많다. 크메르어와도 독립된 다른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