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c May 24. 2024

나의 단상.

나의 단상


첫 조우...


그리고 교류가 시작되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시작한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왔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묻곤 한다.  그러나 이해라는 것은 그 해석이 매우 중요한다.


이해 (理解)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사전적인 의미는 우선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았는데, 이것은 바로 관점의 포지선을 자신으로 보느냐 혹은 타인으로 보는가 하는 이른바 관점의 시선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분별 해석과 포옹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부하고 배워 왔는가에 따라 다르게 변모한다. 즉 주변의 환경에 따라 쌓은 지식의 척도가 이해를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 즉 상대방의 관점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의 전제가 될 수 있다.


상대방 즉 타인은 나와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의 예외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동일한 환경을 공유했던 찐친이 그러하다. 비슷한 환경의 테두리에서 같은 것을 경험하면서 자란 찐친은 성향은 다를 수 있으나, 목표는 같은 < 만류귀종>, 혹은 <일이관지> 다르지만 같다의 마인드가 형성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한다면 접근하는 방식과 단계는 다를 수 았으나 결국에는 하나의 마인드라는 공통의 마음이 교류되며,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자연스럽게 수반되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가 될 수 있다. 이 첫걸음의 단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자연스러워지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조금은 다른 이성과의 대면에서 생각해 보자면 그것은 손잡기 라 생각한다. 감정의 교류 그 기본의 교류가 이해된 공감의 소통이라면 이 기본의 다음 단계는 감정의 친밀함 바로 손잡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손잡기에서 느끼는 감정의 친밀함 이 손잡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말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소통이며, 공감이다. 이 공감의 형성은 무언의 기막 즉, 서로가 공통된 강력한 호신강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운기를 통한 끊이지 않는 은은함과 강력함을 수반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내기를 전해주는 그리하여  사람의 강력한 기막의 완성,   단계가 바로 손잡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서로간의 운기의 소통 경로가 손을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그리하여 격체전공의  시작인 손잡기는  무엇보다도 교감과 공유 그리고 공감이라는 기본의 전체가 맞아야 가능한 것이다.


순수하면서도 순수한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면서도 강력한, 나도 가능할까 하는 희망적 미학이 가슴과  체내를 순환하는 현재의 지금, 지금의 오늘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