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첫 조우...
그리고 교류가 시작되면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시작한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왔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묻곤 한다. 그러나 이해라는 것은 그 해석이 매우 중요한다.
이해 (理解)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사전적인 의미는 우선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았는데, 이것은 바로 관점의 포지선을 자신으로 보느냐 혹은 타인으로 보는가 하는 이른바 관점의 시선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분별 해석과 포옹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부하고 배워 왔는가에 따라 다르게 변모한다. 즉 주변의 환경에 따라 쌓은 지식의 척도가 이해를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타인 즉 상대방의 관점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의 전제가 될 수 있다.
상대방 즉 타인은 나와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의 예외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동일한 환경을 공유했던 찐친이 그러하다. 비슷한 환경의 테두리에서 같은 것을 경험하면서 자란 찐친은 성향은 다를 수 있으나, 목표는 같은 < 만류귀종>, 혹은 <일이관지> 다르지만 같다의 마인드가 형성이 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한다면 접근하는 방식과 단계는 다를 수 았으나 결국에는 하나의 마인드라는 공통의 마음이 교류되며,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자연스럽게 수반되면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가 될 수 있다. 이 첫걸음의 단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자연스러워지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조금은 다른 이성과의 대면에서 생각해 보자면 그것은 손잡기 라 생각한다. 감정의 교류 그 기본의 교류가 이해된 공감의 소통이라면 이 기본의 다음 단계는 감정의 친밀함 바로 손잡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손잡기에서 느끼는 감정의 친밀함 이 손잡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지 않아도 말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소통이며, 공감이다. 이 공감의 형성은 무언의 기막 즉, 서로가 공통된 강력한 호신강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운기를 통한 끊이지 않는 은은함과 강력함을 수반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내기를 전해주는 그리하여 두 사람의 강력한 기막의 완성, 그 첫 단계가 바로 손잡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서로간의 운기의 소통 경로가 손을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그리하여 격체전공의 첫 시작인 손잡기는 그 무엇보다도 교감과 공유 그리고 공감이라는 기본의 전체가 맞아야 가능한 것이다.
순수하면서도 순수한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면서도 강력한, 나도 가능할까 하는 희망적 미학이 가슴과 체내를 순환하는 현재의 지금, 지금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