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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미 Jul 26. 2024

나 같은 기계들 (이언 매큐언)

독후감

  - 잡역부, 말동무, 경제수단, 섹스돌
  - 인격체, 동급, 반항, 사랑
인간과 똑같은 AI로봇이 있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들을 적어봤다.
인간과 구분되지 않을 AI의 존재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

과연 로봇에게 위로받고, 충만하고, 때론 질투할 수 있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찰리가 거금을 들여 산 AI(아담)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바람을 피웠다고 들었을 때 그는 분노했지만 로봇이기에 용서했다.

찰리에게 아담은 경이로운 존재이자 친구였지만 언제든 전원을 꺼버릴 수 있는 기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담이 미란다에게 사랑한다 고백하지만 미란다는 그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담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인간은 오롯이 사랑이라 느낄 수 있을까?

아담은 너무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게다가 지적이며 비집고 들어갈 빈틈이라곤 없는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때론 바보 같은 판단을 일삼고 잘못된 줄 알면서도 일을 그르치고 심지어 게으르기까지 한 생물학적 인간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재이다.

인간이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육체적 고통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육체적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로봇의 충고는 마치 한 번도 힘들어 본 적 없는 지성인이 책에서 배운 대로 바른말만 일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말 네가 뭘 안다고? 네가 아파봤냐고 따져 묻고 싶을 것이다.

로봇이 돈을 벌어주고, 잡일을 대신해주고, 내가 시키는 일을 해주는 건 당연하지만 법의 잣대를 대고 인간을 판단한다거나 평가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로봇을 신뢰하지만 존중할 수 없기 때문일 거다.

아담은 죽어가는(?) 과정에서도 나 같은 기계들과 당신 같은 인간들에게 메마른 시를 읊는다.
  "우리의 잎이 지네.
   봄이 오면 우린 새로 태어나겠지만,
   그대는, 아아, 한 번에 지네."

이쯤 되니 중경상림의 양조위가 떠오른다.
실연 후, 비탄에 젖어 연인과 함께 썼던 물건들에게 말을 걸며 슬퍼하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비누에게, 수건에게 말을 걸고 위로받는 그에게 아담이 있었다면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그가 물건에 말을 걸었던 건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아담도 침묵의 의미와 여백의 미를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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