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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큐리 Aug 12. 2020

시장 너머의 시장_차마고도

feat 차마고도의 마방

1. 차마고도

<참고문헌 : KBS인사이트아시아 차마고도 제작팀, “차마고도”, 윤영수 구성, 2007>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큐레이션의 가장 극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이들은 마방(馬幇)이다. 이들이 활약하는 무대는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교역로 차마고도(茶馬古道_Ancient Tea Route)이다.

차마고도의 경로는 크게 세 갈래인데 마방이 주로 활동한 경로는 세계 차茶의 본산이자 보이차(普洱茶)의 산지인 윈난의 푸얼시(普洱市)에서 출발하여 따리(大理_대리)를 거쳐 티벳의 라싸(拉薩_Lhasa)로 가는 여정이다. 오직 사람과 말 또는 노새가 짊어지고 걸어서 도달하는 길이다. 이 경로의 거리는 약 5,000㎞이며, 평균 해발고도가 4,000m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다. 오래된 길(古道)이자 높은 길(高道)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고도 하지만, 낭만과는 거리가 먼 생존의 현장이기도 하다. 티벳 고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차는 생명수나 다름없으며, 마방들의 3개월 여정은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만년설을 뒤집어 쓴 5,000m 이상의 설산(雪山)들과 진사강(金沙江_금사강_장강의 서북쪽 상류), 란창강(瀾滄江_메콩강 상류), 누강(怒江_노강_살윈강 상류)이 아찔한 협곡을 이루기 때문에 강을 만난 마방들은 외줄에 의지해 사선을 건너야 한다.


마방은 길을 떠나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노새들이 짊어지고 갈 물품을 정하고 순서에 따라 적재하는 일이다. (마방과 함께 길을 나선 동물은 말이 아니라 실제로는 노새이다. 말은 평지에서는 빠르지만 고산지대에서 힘을 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암컷 말과 수컷 당나귀의 교배종인 노새는 지구력이 뛰어나고 고도 적응력도 우수하기 때문에 마방은 노새를 주로 활용했다)  

교역물품뿐 아니라 여정 중에 사용할 식량과 생활도구 등 준비하여 적재할 물품은 수백 가지에 달한다. 반면 노새 한마리가 짊어질 수 있는 짐의 최대 무게는 60kg이기 때문에 무게 한도 내에서 필요한 짐만 선별하여 올바른 순서에 따라 적재해야 한다.


오랜 경험으로 숙련된 리더인 마궈토가 물품과 짐을 선별하고, 순서에 따라 적재하는 기준을 마련하여 일행을 이끌게 된다. 마궈토는 여정 내내 가장 앞에서 무리를 이끌게 되는데 나이많은 늙은 자가 선두에 서는 이유는 철저한 준비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상황에 따른 올바른 대응이야말로 수 개월의 위험한 여정에서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마궈토는 경험많고 사람을 잘 따르는 암컷 노새를 선두에 세워 어린 노새들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하며, 지치거나 부상을 입은 노새에게 처방을 내린다. 무리에 처음 들어온 어린 마방은 언제나 무리의 중간쯤에 배치하여 체력을 보존하도록 살피기도 한다.


물론 상인으로서의 거래 능력도 발휘한다. 흥정을 잘 해야 수십 필의 노새와 몰이꾼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흥이 나지 않겠는가? 마방의 일행들은 모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거나, 아들, 딸이다. 마궈토가 감당해야 할 선택의 무게는 천산이 머리 위에 짊어진 빙하만큼이나 무거웠을 것이다.


이렇게 백척간두의 위험천만한 여정을 오가는 마방들의 사례는 큐레이션의 원형이자 가장 극적인 사례로 꼽을만 하지만 이제 역사에서는 사라졌다. 중국 정부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기차와 차량이 오갈 수 있는 길을 뚫었고 더 이상 사람과 노새가 짊어지고 나르는 형태의 거래는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2. 시장 너머로 가는 길


사실 차마고도의 교역은 시작과 끝, 과정까지 모두 비극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상거래가 실상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는 사실, 이익을 가져가는 자의 이면에는 잃거나 빼앗긴 자들이 존재하지만 실패한 자들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니다. 표면적으로 커머스의 세계는 화려한 상품들과 마케팅 기법으로 가득차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과정도 필요하다. 불편하지만 숨어있는 진실이 미래를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 차 교역의 시작

보통 사람들은 숨 쉬기도 곤란한 척박한 환경에서 야크의 젖과 고기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에게 전해진 차茶는 일상을 견디게 하는 감로수가 되었으나, 그로 인해 벌어진 결과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티벳에 차를 전한 이는 토번 왕국에 볼모로 온 문성공주였다. 어느 날 갑자기 당 태종의 수양딸이 된 어린 여인은 문성공주라는 이름을 지닌 채 3,000km의 대장정에 나서는데, 토번왕 손챈감포의 두 번째 부인이 되기 위해 떠난 바로 이 여정이 차와 말을 교환하는 교역로를 이름하여 차마고도라 부르기 시작한 시초이다.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건너간 때는 서기 640년이다.

당 제국의 서쪽에 버티고서 볼모를 받을 만큼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던 토번 왕국은 이후 차로 인해 서서히 힘을 잃어갔고, 문성 공주가 건너간 때로부터 1300여 년 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벳의 수도 라싸를 점령하는 것으로 완전히 주권을 상실하게 된다. 티벳(토번 왕국)은 현재 중국의 5개 자치구 중 하나로서 소수민족 장족(藏族)이 사는 땅, 서장자치구(西藏自治區)가 되었다.


앞에서 소개한, 마방의 활동 무대인 차마고도의 경로는 윈난에서 라싸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런데 실제로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이름이 유래한 경로는 윈난-라싸 경로가 아니라 쓰촨(四川_사천)과 티벳을 잇는 관(官) 무역로이다. 앞선 경로가 말을 이용하여 차를 운반하는 길이었다면 사천을 통하는 경로는 차와 말이 교환되는 길이었다.


티벳(토번)인들에게 차는 비타민을 제공해주는 생명수가 되었는데, 중국인들은 왜 말이 필요했을까? 말은 바로 전투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역대 중원을 차지한 왕조들 중 유목민족을 계승한 수, 당, 원과 달리 송과 명은 새외 유목민족의 기마대와 싸울 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티벳의 고원에서 방목하는 말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전마(戰馬)였다. 당나라 패망 후 들어선 (중국 통일왕조 사상 최약체로 평가받는)송나라의 조정은 아주 구체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차마사(茶馬司)를 설치한 것이다. 차를 주고 말을 받는 차마교역은 철저하게 중앙 정부가 통제했다. 이후 몽골인들의 원나라에서는 차마무역이 중요하지 않았으나 명대에 들어서는 다시 가장 중요한 군사용 교역이 되었다.


“쓰촨 지역의 찻잎을 정부에서 매입하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오직 서장(西藏_티벳)의 말과 교환할 때만 사용하는 전문적인 역마용 차로 지정한다.”

(출처 : KBS인사이트아시아 차마고도 제작팀, “차마고도”, 윤영수 구성, 2007, 100쪽)


중원을 지키려는 왕조에게 말이 중요했던 것처럼 티벳인들에게 차는 부족한 비타민을 제공해주는 생명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생명수를 통해 중원인들이 티벳인들의 목줄을 잡게 되었다. 문성공주가 결혼 예물로 지참한 여러 물품 중 하나였던 차. 그로부터 2백 여년이 지나, 티벳인들은 차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정도가 되고 만다.

송대에는 그나마 교역이라고 이름붙였지만, 명대에 들어서 차마의 교역은 상거래가 아니라 조공이었다. 송을 지나 명대 초기에만 해도 말 한필에 차 1800근(약 1톤)이 등가로 교환되었으니 말 무게와 차 무게가 비슷했지만 명 후대에 들어서면 완전히 역전된다. 말 한 필에 차 60근이 된 것이다. 말을 바치면 황제가 차를 하사해주었는데, 엎드려 받은 차를 감지덕지 받아오는 것은 그나마 왕국의 지배계층과 승려들이었다. 이들은 토번 왕국 내에서의 차를 독점했다. 차는 권력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은 토번인들과 싸워 이긴 적이 거의 없었다. 고원지대에서 나고 자라 선천적으로 강인한 전사였던 토번인들은 역시 강력한 전마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뛰어난 기마전사이기도 했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릴 만큼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자연환경을 배후에 두고 싸우는 신앙심으로 똘똘 뭉친 기마전사들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토번은 천하대가한(天下大可汗)으로 추앙받던 당 태종마저 공주를 (결혼을 빙자한)볼모로 보내어 화친을 도모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왕국이었다. 이러한 토번 왕국이 차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간 것이다.


2) 차 교역의 결과

1950년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진격해들어오면서 티벳은 주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1959년 티벳인들은 무장봉기를 감행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120만 명 이상의 티벳인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고, 6,000여개의 불교 사원이 파괴되었다. 1988년 다시 한번 독립 시위가 벌어졌지만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간 달라이 라마는 여전히 망명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현재 달라이 라마의 환생자를 찾을 권리를 가진 판첸라마는 중국 정부에 의해 20년간 실종상태에 있다. 중국 정부가 내세운 11대 판첸라마가 존속하는 한, 다음 대 달라이 라마는 중국 정부가 지정하게 될 것이다.)

현재 티벳은 공식적으로 중국의 자치구 중 하나이다. 서장자치구에 남아 여전히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티벳인들은 달라이 라마를 추앙하며 신을 섬기고 있다.  그리고 2006년 중국 정부가 고도(古道)를 폭약으로 부수어 건설한 칭짱철도(青藏鐵路_칭하이 성 시닝 시와 티베트 자치구 라싸 시를 연결하는 총길이 1,956km의 철도)가 티벳과 중원을 거의 완전하게 연결했다.

이제 전마(戰馬)는 필요없으나 중국의 핏줄인 장강의 상류이며, 인도와의 접경지이고 또한 천연자원의 보고인 티벳은 여전히 중국에 중요한 지역이다.


노새와 함께 등짐을 진 채로 힘겹게 고도를 오가던 마방은 사라질 것이다. 길이 사라지고, 마방이 사라져도 티벳인들은 차를 훨씬 용이하게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마방을 재연하는 공연 정도는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라싸의 시장을 장악한 이들이 쓰촨의 상인들이라는 사실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아마도 장족들은 마방 공연의 수익 중 극히 일부만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명 대의 차마교역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3) 인간 세상에 유익한 커머스

서기 640년, 공주의 행렬이 장안을 떠났다. 토번 왕국의 라싸까지는 3,000킬로미터, 한 달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 될 터였다. 황제의 명을 받아 혼례를 치르러 가는 문성공주(文成公主)의 행렬이었다. 문성공주는 이세민의 친딸이 아니라 수양 딸, 이른바 화번공주였다. 친딸은 보낼 수 없으니 어느 집의 딸을 수양 딸로 들여 이역만리 적국으로 보낼 때 화번공주라고 일컬었다. 문성공주는 당시 당나라의 서쪽에서 강성한 힘을 과시하던 토번으로 보내졌다. 열 일곱 살의 나이에 고향을 떠난 마음이 오죽했을까? 싯귀 한 구절만 남았다.

“천하의 강물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가건만, 나만 홀로 서쪽으로 가는구나”


공주가 가져간 여러 품목 중 토번왕국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차였다. 상품으로서 ‘차茶’는 쌀과 밀과 같은 곡물만큼이나 인간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품목이다. 규모와 역사적 깊이도 심대하다. 그러니 역사의 한 면에서 찾아낸 이야기 중 하나가 처연하고 슬픈 것도 그럴만 하다. 세상사에는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보다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가 더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상거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접하는 상거래는 대개 즐겁고 유쾌하며 만족스러운 일로 묘사되곤 한다. 광고만 하더라도 찡그린 모델을 본 적은 없지 않은가?

소매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모두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불만족의 경험을 주지 않기 위해 상품 기획 단계에서부터 공을 들이고, 판매 후 사용 과정에서의 경험 관리를 위한 대책도 치밀하게 세운다. 이로 인해 소비자의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성공적이다. 만족스러운 고객은 재구매를 선택할 뿐아니라 주변의 지인들에게 추천하는 선행도 베풀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모두가 행복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까?


시장 너머의 시장(Beyond market)은 화번 공주가 수천 리 길을 가듯 머나먼 여정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모두가 동쪽으로 갈 때, 홀로 서쪽으로 가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유익한 커머스를 만들기 위한 인간 MD들의 여정은 먼 훗날 역사를 바꾼 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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