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좀 그만하자는 생각 좀 그만

가만히 눈을 감고

by 이영

카페에 홀로 가만히 앉아 계신 어르신을 봤다. 눈썹마저 희끗희끗하지만 깔끔히 정돈된 하얀 머리에 말끔한 남색 체크 남방을 입은 채 구부정하지 않고 고고하게 앉아 계셨다. 테이블엔 주문한 음료가 담긴 머그컵 한 잔만 있었고 그 이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대단한 물건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흔한 휴대폰이나 책, 심지어 가방조차.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히 손에 쥔 물건도 없었다. 그야말로 ‘덩그러니’라는 단어를 그려 놓은 정밀화 같은 모습이었다. 가끔 잔을 들어 음료를 마시는 약 3초간의 짧은 행동을 제외하면 동작이 전무했다. 그의 시선은 통창을 향해 있었지만 밖을 보고 있는 것 인지, 오롯이 생각 중인데 단지 눈이 떠져 있는 것 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어르신은 잔잔한 호수였고 내 맘 속에선 파도가 치고 있었다. 근래에 볼 수 없던 진귀한 모습임을 인지하고 여러 가지 상상만 더해갔다. 와중에 음료, 충전기, 휴지, 노트북, 책 한 권, 휴대폰 등이 엉켜 있는 내 앞의 테이블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중인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나에게 카페라는 곳은 음료 주문을 통해 앉아 있을 권리를 얻어낸 뒤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장소라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기 위한 임시 사무실, 통화나 회의를 위한 중간 기착지, 혹은 더위나 추위를 피해 실내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임시 거처로 사용하고 있었다. 오늘 또한 뭔가를 하러 온 것이고, 동시에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멍하니 있는 사람보다 뭔가 하는 사람이 더 나아 보인다는 착각 속에서, 가만히 앉아 쉬는 법도, 넘치는 생각을 정리하는 법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내가 여유가 없는 건가. 매번 제대로 뭔가를 하는 것 같진 않은데 뭔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가만히 못 있는다. 차라리 모든 인풋을 차단한 채 우두커니 있는 게 몸과 마음을 위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던가, 쉴 거면 생각을 비우고 쉬던가. 뭐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너무 불안하다.


누워서 쉬고 있다는 말이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다는 말이 돼버린 요즘의 나는 오늘만은 가만히 좀 있어봐야겠다.

tempImageuLOLKB.heic


keyword
이전 14화보이지 않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