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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17. 2023

수영을 시작하기 힘든 이유

수영

수영 처음 시작 할 때 심리적으로 큰 장벽이 하나 있다.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 아니 당연히 수영하는데 수영복 입는 거지 그게 왜 문제냐고? 이런 심리적 장벽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당신은 놀랍도록 뻔뻔하든가, 너무 자기중심적이어서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좋은 말로 번역하자면 자존감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수영 입문자들은 흔히 이런 걱정을 이야기한다. 뚱뚱해서, 노출이 부담스러워서 시작하기가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너무 흔한 고민이고 질문이라, 답변도 거의 정석적으로 준비되어 있다.


1. 남들은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2. 모두 다 수영복을 입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다.

3. 어차피 물속에 있어서 안 보인다.

4. 각자 자기 운동하느라 힘들고 자세 신경 쓰기 바쁘다.


 사실, 훑어보는 사람, 훈수 두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고 실제로 그런 사람도 세상에 존재한다.(심한 진상은 카운터에 신고하자) 근데 그게 내가 운동하는 것, 수영을 배우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모든 세상 사람들이 에게 애정을 주고, 응원해야지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남의 눈치 보지 말자. 그냥 시작하자.


 수영을 시작하는 데는 현실적인 장벽도 있다. 수영이 처음이라면 정해진 시간에 단체강습을 받는다. 오늘은 새벽, 내일은 저녁, 어떤 날은 시간이 돼서 낮에 강습을 받을 수가 없는 거다.

- 자유수영을 하면 되지 않나? : 수영을 아예 할 줄 모른다. 흔한 워터파크나 바닷가도 수영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가지 않는단 말이다.(친구 없어서가 절대 아님)

- 원하는 시간마다 개인강습을 받으면 되지 않나? : 주머니 사정이…


 수영장마다 조금 다르지만 보통 선착순 혹은 추첨제 등으로 회원을 모집한다. 강습이 거의 정원을 꽉 채워 마감되기 때문에, 내일부터 수영 시작해 볼까. 하고 바로 시작하긴 어렵다. 수영은 인기가 많다. 자리가 없다.


 나는 시에서 운영하는 수영장을 다닌다. 추첨제로 회원을 모집하는데, 새벽 6시 수업에 첫 강습을 신청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 응모 당첨 0회의 전설로, 복권을 절대 사지 않는 사람이다. 이상한 이야기로 튄 것 같지만, 포인트는 '응모 실패'에 있어서 최고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점이다.


 놀랍지 않게도 나는 수영 초급반 추첨에서 ‘탈락’했다. 홈페이지에서 그 단어를 확인했을 때, 정말 상처받았다. 탈락이라니. 강조하듯, 빨간색의 굵은 글씨였다. 나의 지난 악몽 같은 탈락경험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수영하려고 시도했어, 너네가 날 탈락시켜서 못한 거야. 나중에 수영 못해서 물에 빠져 죽으면 다 너네 탓이야. 살인마야! (속으론 새벽에 안 일어나고 운동 안 해도 돼서 싱글벙글함)


 여기서 내 수영이야기는 끝나는 줄 알았다. 사실 그땐 정말 그랬던 게, 지금까지 수영할 줄 몰라도 잘 살아왔는데 그냥 살아도 문제없잖아. 하고 다신 응모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당첨된 복권도 집어던져 버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당첨됐지만 수업등록 하지 않은 인원이 있어, 대기자 추가 등록 할 수 있었다. 대학입시 때 예비 X번으로 문 닫고 들어간 친구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 동네 사람에게 감사를 전한다.

덕분에 나는 수영을 시작하게 됐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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