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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Sep 19. 2023

불안

5. 너무 다른 너와 나

내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스러웠다.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꼭 하고야 말았고 한 가지에 빠지면 완전 깊이 빠졌다 나오는 편이었다. 레고를 시작했을 때는 레고를 조립했다 분해했다를 수십 번을 질릴 때까지 반복하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하곤 했다. 적은 피스였을 때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레고 종류가 늘어날수록 브릭을 찾는 소리가 매우 스트레스 일 때도 많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4살 때 집에 없는 레고 시리즈를 레고방에서 4시간 동안 한 적이 있었다. 또 장난감에 빠지면 시리즈를 모두 모아야 끝이 났다.  어렸을 때라서 잘 가지고 노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남편은 잘 사주는 편이었다. 같이 살 때는 출장도 많았고,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어서 그런지 가끔 보는 아이에게 참으로 관대했다. 주말 부부로 지내면서도 오랜만에 만난 아이에게 잔소리를 할 수 없다며 되도록 좋은 얘기만 했고 너그러웠다. 가끔은 아들이니까 아빠로서 엄하게 중심을 잡아 줬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저 아이는 본인이 겪지 않으면 절대 깨닫지 못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도 남편도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을 경험을 많이 못하게 해 준 것일까? 알아서 챙겨주면 고마워할 줄 아는 아이가 아닌 그걸 당연히 여기는 아이가 돼버렸다. 본인이 스스로 챙기기보다는 남이 안 챙겨 준걸 탓하는 모습이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학원에서 같은 문제집인데 이름을 안 쓴 두 사람의 교재가 바뀌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문제집 찾느라 늦게 끝나게 된 날이었는데 나는 가볍게 `이름을 써놓을걸 그랬네` 했더니 `이름 쓰라는 말 안 했었잖아. 그러니까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버럭 화를 냈고 또 나와 말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들은 즉흥적이고, 남 탓이 많고, 책임감이 부족한 편이다. 한없이 본인에게만 관대하다. 학교 준비물을 챙기라면 그냥 다른 애들 거 빌려 쓰면 된다고.. 왜 할 수 있는 일을 안 하는 것인가?! 나로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앞을 내다보고 미리 예측하고, 벌어질 일을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이다.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 FM적인 사람. 초등학교 때는 나가 놀기 전에 반드시 숙제부터 끝냈고,  중학교 때부터는 집안일을 하며 엄마의 역할을 도왔다.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끔 엄마가 저녁에 일을 가셨을 때면 내가 오빠와 아빠의 저녁을 직접 차려드렸다. 물론 설거지도 내 몫이었다. 대학교 때는 방학 때면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하고는 바로 취직을 해서 내 용돈을 뺀 나머지는 모두 부모님께 생활비로 드렸다. 결혼할 때까지.. 효녀는 아니었지만 책임감 있는 성실한 딸이었다. 때로는 너무 버거웠고, 이런 생활을 벗어나 월급 한번 진탕 써보는 게 소원이었다. 좀 더 나를 챙겨볼걸 하는 후회. 좀 더 이기적이었으면 어땠었을까 하는 아쉬움. 돌이켜보면 이 버거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결혼이라는 탈출구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와 아들은 성별도 다르지만 성향이나 기질도 정반대이다. 깔끔하고 정갈한 나는 지저분하고 너저분한 아들의 방을 보는 게 매우 불편하다. 예전엔 내가 다 치워줬는데 올해부터는 스스로 하게 하려고 꾹 참다가 자기 전에 한번 치우라고 얘기하면 귀찮다고 안 하고, 미루고 너저분하게 그냥 두고 버틴다. 귀를 막고 사는 거 같은 이런 상황들이 매우 힘들다. 이젠 억지로도 안 통하고,  나보다 힘이 세진 순간부터는 건드릴 수도 없다. 넌 도대체 뭔데. 사춘기라고 유세 떠나. 그저 나만 속상하고, 나만 답답할 뿐이다. 내 눈엔 스스로 하는 게 없어 보이고 놓치는 게 많다 보니 잔소리를 많이 했지만 이젠 잔소리도 안 통하고 그저 거리 두기를 하면서 지내는 중이다. 공부도 손 놔버리고 하루종일 미디어 속에 갇혀 사는 아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속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선배엄마들의 조언대로 라면 기다려주면 자기의 자리로 돌아온다는데.. 과연 그런 기적이 내게도 허락될까?! 난 여전히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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