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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 혼자 이혼한다 Dec 29. 2023

연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밥이 주는 쓸쓸함

별거남의 연말 일상 (1)

크리스마스가 지난 어느 날 아침, 연희동 뒷골목 허름한 국밥집에 들어간다. 


"이모, 여기 국밥 하나요."


TV에서는 연신 관심도 없는 정치 애기가 쏟아진다. 아침 10시, 대여섯 개 테이블이 있는 작은 국밥집에 오픈 시간에 맞추어 온 손님이라고는 나와 옆 테이블에 중년 부부이다. 


"그럴 거면 이혼하지 여태까지 뭐 하고 있어요?"


어렴풋이 들려오는 높은 목소리 톤의 옆 테이블 아주머니를 힐끗 보니,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닌가 보다. 


"하나 있는 딸 때문이지. 이제 대학생인데, 그래도 시집갈 때까지만 참고 사는 거지."


결국 자식 때문이구나... 옆 테이블 중년 커플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도 전에, 나 자신이 문득 처량해진다. 


내 처지에 맞추어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나 같은 별거남의 동선이 다른 별거남 혹은 이혼남들과 유사해서 그런지, 내가 가는 곳마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것으로 추측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어느 날, 뒷골목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 나도 가끔은 여우 같은 와이프와 토끼 같은 자식들과 함께 살면서 오손도손 밥상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식사를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이제 그런 풍경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동화 속의 세상같이 느껴진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창가 너머로 맛있는 저녁을 먹는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에게도 창 문 너머의 세상 같이 느껴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아침밥. 


하지만 지난 A와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아침밥조차도 "고통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산물이었다. 현실에서는 밥 한 그릇을 만드는 것도, 누군가 장을 봐야 하고, 주말 아침에 피곤한 몸을 일으켜 요리를 해야 하고, 먹기 싫다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식탁에 앉혀야 하고, 그리고 밥을 먹고 난 뒤에 설거지와 뒤처리를 해야 한다. 결국 여러 단계의 고통의 프로세스를 누군가는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주말 아침이면 목격한 광경은 마루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두 아들과 침대에 등을 돌린 채 자고 있는 A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겠지. "네가 아침밥을 하면 되는 게 아니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간혹 내가 아침밥을 하는 날이어도 내가 참문 너머로 보던 그 모습은 아니었다. 결국은 나와 아이 둘만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식탁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침밥을 먹는 모습은 "고통의 분배" 문제 이상의 장벽이 있었던 것이다.


성냥팔이 소녀가 창문 너머로 보았던 가족의 식사 장면은 배고픔을 채워주는 음식 이상이 있던 것이다. 바로 그 집 안의 "온기". 즉 "따뜻함"이다. 


나는 누군가 나를 향해 웃어주는 따뜻한 미소를 언제 보았던 것이 있는가? 사실 A와의 지난 결혼 생활은 "고통의 분배" 그 이상의 결핍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고통의 참고 견디며, 뛰어넘을 수 있는 온기의 부재.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일까? 나의 미소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연말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까?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직은 어렴풋이 들어오는 연말의 끝자락에,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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