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한 듯 양손의 장갑을 매만진 후커튼 열듯이 풀을 파헤치며 나아갔다. 용감한 눈빛과 등산복으로 무장했지만 이를 비웃듯 가시 있는 풀들이 여기저기 찔러댔다. 찔린 부위는 화끈거렸고 옷은 전부 땀으로 젖었다. 야생화는 일주일사이로 꽃이 피고 지는 경우가 허다해서 이렇게 힘들게 갔는데 제발 피어있길 바랐다.
'발견! 잠자리난초!!'
가시에 따끔거리던 고통을 잊은 채서둘러카메라를 들었다. 찰칵. 찰칵.
주위에있던 벌레들이위협하듯 귀에서 '웅웅' 거렸지만, 예쁘게 꽃을 피우고기다려준 잠자리난초를 보느라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얼마나 촬영했을까 이제는 가만히 보며 관찰을했다.
'와. 얇다.'
습지에서 만난잠자리난초는전체적으로 얇고 길었다.곧게 선 줄기의 위쪽에 꽃들이 피어있는데,꽃잎은 세 갈래의하얀색이었고 중앙에 있는 꽃술대는 노란색이었다. 꽃의 모양을 보니 왜 '잠자리'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얇고 긴 꼬리 같은 부분(거(距))이 꽃에서 이어져 내려오는데 그 모습이 꼭 실잠자리 같았다.자세히 볼 수록 신기한 구조에 새삼 자연의 신비를 느꼈다.
참고로잠자리난초와 비슷한 꽃을 발견했는데 꼬리 같은 부분이짧다면 그건 '개잠자리난초'이다.
화실로 돌아와 세밀화를 그리는데 계속 숨을 멈추고 그리길 반복했다. 잠자리난초가 너무 얇다 보니 호흡조차 방해가 돼서 손이 흔들릴까 숨을 들이켜고 색칠한 후 내쉬고를 반복한 것이다.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함 속에서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리곤 커다란 뿌듯함이 내게 주는 선물로 다가왔다. 물론 가시에 찔리는 등 약간의 시련도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며 느끼는 감정들이 참 좋았다.
어쩌면이런 과정이 있었기에 잠자리난초가 더 오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