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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갑 Feb 02. 2024

삶의 여섯 가지 영역과 균형 감각

육각형은 완벽주의가 아니다

원래 자유의 육각형은 육각형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점이었다가, 곧 선이 되었다가, 삼각형과 사각형을 거쳐 마침내 육각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육각형의 꼭짓점은 각각 자유의 영역을 가리키는데, 제가 자유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면서 하나씩 늘어난 것입니다. 제 나름대로 삶에서 중요한 영역을 여섯 가지로 추렸습니다. 이러한 6대 영역은 앞선 에피소드의 '여정'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제가 지향하는 여섯 가지 자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려고 합니다.


자유의 두 가지 정의

지난 화에서는 자유의 두 가지 정의에 대해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한 가지는 수동적 자유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의지나 노력과는 관계없이 주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의사와는 다르게 사라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우리가 더 가질 수도 없고 지켜낼 수도 없습니다. 말 그대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수동적 자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적어도 활자를 읽을 수 있는 눈이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계실 겁니다. 신체 부위가 존재하고 올바르게 작동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상태에 비해서 분명 더 자유로운 상태입니다. 이러한 능력을 스스로 가져야겠다거나 버려야겠다고 선택할 수는 없기에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입니다.


시력이나 청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을 파괴해야만 하는 극단적인 상황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반대로 기술의 발달로 신체적인 기능을 되살리거나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만큼이나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게 없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어떤 자유가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 점에 감사와 축하를 주고받읍시다.


능동적 자유

또 다른 자유는 능동적 자유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앞의 수동적 자유와는 달리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성격의 자유입니다. 제가 자유라고 이름 붙인 것, 특히 능동적 자유의 경우에는 삶이나 생활의 주도권을 가리킨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혹은 통제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삶의 주인이 되는 자유. 자유가 없는 상태란 노예의 상태입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노예처럼 살아온 순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알게 모르게'라는 말은 미묘합니다. 누구도 노예를 자처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노예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도 그 본심은 다른 욕구가 숨겨졌을 겁니다.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도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자유를 공짜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유를 잃는다는 건 어떤 걸까요? 제 경험상으로는 담배가 자유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담배는 내가 선택한 기호식품이며, 내가 원할 때 피우는 줄 알았습니다. 그게 흡연할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담배를 끊으라는 메시지를 접하면 기분이 나빠집니다. 금연이 강제되는 상황은 나의 자유를 빼앗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담배를 끊고 나서는 그동안 니코틴 중독 때문에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담배를 원한다는 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오히려 담배에 썼던 돈과 시간을 다른 곳에 쓸 수 있게 되어서 더욱 자유로워졌습니다. 이처럼 중독에서 벗어날 건지 말 건지는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금연하기로 능동적으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비로소 니코틴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요약하자면 개인이 누리는 자유는 크게 두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는 수동적 자유이며, 다른 하나는 능동적 자유입니다. 전자는 그저 나의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반대로 후자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더 높은 수준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실생활에서 두 가지 자유를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자유를 두 가지로 나눔으로써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자.'는 태도에 대해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사지 멀쩡하게 태어나서 공원을 걷거나 달리고, 근력 운동을 하며, 높은 산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감정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태어나 보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태어나서, 사상과 종교를 자유롭게 가질 수 있는 일은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내가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자유와 행복 중에서는 제가 달리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자유의 여섯 가지 영역

 앞서 밝힌 것처럼 자유의 육각형은 여섯 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신체적 자유(몸의 자유)

- 정서적 자유(마음의 자유)

- 정신적 자유

- 경제적 자유

- 기술적 자유

- 예술적 자유


앞의 세 가지는 자기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것입니다. 몸, 마음, 그리고 정신은 한 개인으로서 적절히 기능하는 데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뒤의 세 가지는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삶을 풍족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육각형 완벽주의

자유의 여섯 가지 영역을 정의하면서 조금은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자유의 육각형이라는 아이디어가 중압감을 주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받곤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한 두 가지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여섯 가지 모든 영역에서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신체적 자유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하고, 정서적 자유를 이루어야 한다면서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에 얽매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는 외모, 성격, 학력, 자산, 직업, 집안의 여섯 가지의 능력치가 모두 최고치에 달하는, 이른바 육각형 인간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책에서 꼽은 여섯 가지의 능력치는 선천적으로 결정되거나, 개인의 온전한 노력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것입니다. 저자는 완벽주의 신드롬을 꼬집으며 MZ 세대가 좌절하거나 자조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저의 관점에서는 육각형 인간론이 내세우는 속성은 모두 수동적 자유에 해당합니다. 육각형 인간론이 '트렌드'라고 불릴 만큼 영향력 있는 키워드인지는 조금 의문이 들긴 합니다. 어쨌든 수동적 자유란 우리 의사와 달리 주어지는 것이고, 우리가 개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통제 밖에 있는 것을 갈망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에 대한 욕망은 무한하지만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합니다. 유한한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우리의 수명입니다. 불로장생을 꿈꾼 사람들 중에 그 꿈을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완벽한 자유를 목표로 삼을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능동적 자유를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설계해야 합니다.


완벽주의 대신 균형감각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것 자체로도 마음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미완성에 대한 걱정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실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시리즈도 제 자신이 정서적으로 좀 더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쓰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삽시다'라는 식으로 주제넘는 주장을 하는 대신, 제가 '삶의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서술해 보기로 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고 목표를 세우는 과정.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자유에 영감을 받는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들고, 그렇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육각형을 밖에서 바라보면 속이 꽉 찬 완벽한 도형 같지만, 육각형의 내부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요? 정가운데 지점에서 바라본 육각형은 여섯 가지 방향으로 균일하게 흩어져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점을 외모, 학력, 집안 같은 것들 대신에 우리가 쟁취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봅시다. 각자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여섯 가지로 요약해 보면 됩니다. 저는 단지 그 여섯 가지를 몸, 마음, 정신, 그리고 경제, 기술, 예술의 6대 자유 영역으로 정했을 뿐입니다.


신체적 자유

첫 번째 자유의 영역은 신체적 자유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신체를 갖고 살아갑니다. 신체의 타고난 특성은 사람마다 다르며, 신체가 자유로운 정도도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신체의 수동적 자유란 이처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들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유한한 수명이나 유전적 한계와 같은 속성들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규칙적인 운동, 식단 관리, 혹은 적절한 수면 시간을 통해 신체적 자유를 증진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건강 관리라는 것들이 결국은 신체적 자유를 지켜내려는 노력을 일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건강 상태의 일부는 가족력이나 유전처럼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것도 있지만, 능동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정서적 자유

나머지 두 가지 필수적인 자유는 정서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입니다. 두 가지 용어가 미묘하지만 잘 구분 지어 보겠습니다. 정서적 자유는 마음과 관련된 영역을 가리킵니다. 자기 마음을 잘 다스려야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막연한 두려움이나 불안감 때문에 삶의 중요한 선택을 망설이거나 회피한 적이 있을까요? 혹은 과거에 겪은 경험이나 트라우마가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며 삶을 구속하고 있지 않나요? 이러한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대단히 어렵겠지만, 심리 상담, 명상, 일기 쓰기 등을 통해 정서적 자유를 개선할 수 있을 겁니다. 


정신적 자유

정신적 자유는 합리적인 판단 능력, 학습 능력, 혹은 중독으로부터의 자기 통제와 같이 지적인 주체로서 살아갈 자유를 가리킵니다. 살아가면서 글을 읽고 쓰거나 샘을 해야 하는 순간이 너무 많습니다. 적절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자신의 삶도 적절히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신적 자유 또한 신체적 자유와 같이 타고난 부분과 개발 가능한 영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 자유를 능동적으로 넓히는 일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로 이어집니다.


경제적 자유

나머지 세 가지 자유는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부가적인 영역입니다. 그 첫 번째는 경제적 자유입니다. 경제적 자유는 흔히 지출보다 불로소득이 많은 상태로서 노동이 불필요한 상태를 일컫습니다. 저는 이러한 형태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 모두에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돈을 벌거나 쓰는 방식을 원하는 대로 정하는 것 또한 능동적이며 충분히 자유로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거나, 퇴사로 인해 실제로 생계가 어려워진다면 그 직장에 경제적으로 예속된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는 것이야 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방법입니다.


기술적 자유

다음으로는 기술적 자유입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빨리 질지 예상하기도 어렵습니다. 한편 새로운 기술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기술 발전으로부터 소외될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멀어지기도 합니다. 흔히 고령자를 위주로 발생하는 디지털 소외 현상이 그러한 예시입니다. 디지털 소외 문제에 있어서 '고령'의 기준은 앞으로 점점 더 낮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기술적인 자유를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술적 자유

마지막으로 예술적 자유를 꼽았습니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자유와 행복감,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예술 활동을 직접 영위하거나 소비하는 일 모두 삶을 한층 자유롭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특히 창작은 그것이 꼭 경제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자유로운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투자가 필요합니다. 시간, 노력, 비용 등. 표현하고 싶은 바가 있더라도 그걸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러한 표현 능력을 가능한 한 개발해 보는 것이 예술의 능동적인 자유입니다.


육각형의 균형감각

지금까지 삶의 육각형을 정의하고 각각의 꼭짓점에 자유의 깃발을 세워보았습니다. 목표가 여섯 가지나 되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것처럼 중압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면 한결 가볍습니다. 애당초 완벽한 자유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실제로 각각의 목표를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습관이나 루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지속가능한 루틴을 만들면 매 순간 고민하거나 동기부여할 필요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또한 각각의 영역에 얼마나 투자할 건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신체적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유산소 운동은 주 2회, 근력운동과 유연성 운동은 각각 주 1회와 같이 시간과 자원을 구체적으로 할당하는 것입니다. 각각의 영역을 어떻게 개발할지 저도 고민 중입니다. 고민의 결과를 공유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위의 여섯 가지 항목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꼭 여섯 가지가 아니라도 각자의 가치관을 도형으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각자 어떤 가치를 중시하며 살아가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삶을 살고 계실 수도 있고, 혹은 그러한 목표 자체를 거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경우든 잘하고 계십니다. 언젠가 여러분의 가치관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어집니다.



참고자료: 1) 김난도 외, 『트렌드코리아 2024』,  미래의창(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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