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덕갑 Jan 26. 2024

자유에 대한 두 가지 정의

수동적 자유와 능동적 자유

‘자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당장 하늘에 새 한 마리가 훨훨 날아가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흥겨운 음악 소리와 축제의 소음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도 내 앞길을 막지 않고, 그 무엇도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지 않는다면, 훌쩍 떠나버릴 수도 있겠죠. 자유를 만끽하며 여행 다니는 삶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자유를 둘러싼 역사적 갈등이나 충돌을 떠올려 봅니다. 문명의 역사 중에서 대다수 시민들이 정치적 자유를 누린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날 법과 정치 제도는 여러 가지 자유권을 정의하고 있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보면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철학적 주장이나 여러 사상가들이 떠오를 수도 있겠습니다. 자유에 대한 철학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 제가 블로그에 쓴 글을 보니 거의 10년 전에 자유론을 읽은 적이 있었네요. 내용은 거의 다 까먹었습니다. 이번에 '자유'에 대해서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으면서, 「자유론」을 한 권 샀습니다. 조만간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자유'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은 무궁무진하고 다차원적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룰 자유는 어떤 걸까요? 좀 더 자세하게 다루기 이전에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스타일은 저도 싫어하는 편이라서 가능한 일상적인 내용과 언어로 전달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가 자유를 느끼게 된 몇 가지 경험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여정'에서 찾은 자유의 의미

지난 여섯 편의 에피소드에서 삶의 목표를 다시 쓰는 여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제 삶에 대해서 수기 형태로 써본 것인데, 어쩌면 지루하게 읽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이나 키워드 위주로 요약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목록은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며, 괄호 안의 숫자는 지난 에피소드의 여정 회차입니다.


규칙적인 운동 (3)

금연을 통해 니코틴 중독 탈출 (3)

취미 활동과 예체능 (5)

심리상담과 성격 강점 검사 (1)

감사일기와 행복의 기술 (2)

여행과 자기 주도적 삶 (4)

현재: 퇴사하고 잔고 까먹으면서 글 쓰는 중


지난 2~3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정리해놓고 보니 최근 몇 년 동안 내적으로 성장한 배경이 보입니다. 운동, 금연, 취미, 상담, 일기 쓰기, 여행 등.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동안 훨씬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글로 남기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 퇴사했는데, 막상 돌아보니 안정적인 직장 생활이 내적 성장의 양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여러 변화와 성장으로부터 얻은 결실은 바로 행복의 원천과 자유에 대한 자각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가 일상에서 느낀 행복감을 한 겹 두 겹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행복감의 이면에는 제가 자유롭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혹은 좀 더 자유로워진 순간에 진솔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서 달리기 실력을 조금씩 늘릴 수 있었는데, 마침내 10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원래 1km를 달리기도 힘들었던 몸이었지만, 10km를 달린 날에는 무한정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것은 내 몸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 것이라서 자유로워진 경험이었습니다.


자유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구나. 30대에 접어들고 나서 가치관을 새롭게 세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종류의 자유는 단순히 어느 제약에서 벗어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규율과 통제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죠.


수동적 자유와 능동적 자유

이쯤에서 제가 다루려는 '자유'의 범위를 조금 줄여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정치 이념이나 경제 구조 등에서 말하는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에서 말하는 자유주의 이론이나, 완전 경쟁 시장과 같은 논의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대신에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거나 일상생활을 누리면서 마주하는 여러 문제와 현상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제가 관찰한 자유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수동적(passive) 자유입니다. 수동적 자유란 단지 무언가로부터 구속되지 않는 상태를 뜻합니다. 자유라는 단어의 일상적인 의미에 가깝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능동적(active) 자유입니다. 능동적 자유란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나 선택권이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두 가지 자유 모두 우리의 행복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수동적 자유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에 우리의 통제 밖에 있습니다. 이와 달리 능동적 자유는 우리의 관점과 노력에 따라서 성취 여부가 달라집니다.


조금 추상적이라면 오래 달리기의 예시를 다시 가져와 보겠습니다. 과거의 저는 사지 멀쩡한 신체를 지녔음에도, 빠르게 걷기 몇 분 만에 지치게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걷고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신체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덜 자유로웠습니다. 사지 멀쩡한 몸을 갖고 태어나서 걷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수동적 자유에 해당합니다. 반면 후자의 자유는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향상할 수 있는 능동적 자유에 해당합니다. 빠르게 걷기와 함께 계단 오르기나 달리기를 통해 하체 근력과 심폐 지구력을 기르다 보면, 언젠가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나의 신체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구나 하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 벌린의 두 가지 자유

자유를 두 가지 개념으로 분리한 사례는 이미 수많은 철학자들이 논한 바가 있습니다. 이사야 벌린은 「자유의 두 개념」이라는 논고에서 두 가지 자유의 개념을 아래와 같이 정의합니다. 첫 번째는 소극적(negative) 자유.


주체가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또는 스스로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방임되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


한편 적극적(positive) 자유는,


한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 말고 저것을 하게끔, 이런 사람 말고 저런 사람이 되게끔 결정할 수 있는 통제 및 간섭의 근원이 누구 또는 무엇인가?


요컨대 소극적 자유는 타인이나 외부로부터의 간섭이 없는 상태라면, 적극적 자유는 나의 행동이나 상태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입니다. 이사야 벌린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각각의 개념이 현실에 작용하는 양태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개념이 '자유로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서로 다른 개념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위와 같이 현대의 자유론이 정의한 소극적/적극적 자유와 앞서 언급한 수동적/능동적 자유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그 둘 간의 의미를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분할 의도는 없습니다. 비슷한 개념을 가져와서 이름만 바꾼 짭퉁이 아니냐고 비난하더라도 반론할 생각이 딱히 없습니다. 다만 이사야 벌린과 같은 철학자들의 관심이 정치·사회적인 자유에 맞추어져 있다면, 본 시리즈에서는 개인의 생활양식이나 자기 계발의 영역에서 추구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다루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유의 역설

흔히 자유라고 하면 단순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닐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담배나 SNS와 같이 습관성 중독을 생각해 봅시다. 제가 흡연자일 때에는 원할 때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자유인 줄 알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담배를 못 피우게 되면 자유가 박탈당했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담배를 끊고 나서 돌이켜보니, 제가 담배를 원하는 것 자체가 애당초 착각이었습니다. 니코틴 물질에 중독된 탓에 담배를 찾는 것일 뿐이었죠. 중독에서 벗어난 지금은 그때 담배를 피우느라 쓴 시간과 돈이 저의 자유 의지에 반해서 사라진 것 같습니다.


담배를 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마침내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니코틴 중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것입니다. 운동을 통해 신체 능력이 개선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규칙과 규율 속에서 스스로를 수양해야 합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가능한 많은 선택지를 갖고, 가능한 최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이른바 자유의 역설입니다.


물론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 또한 자유로운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라는 단어를 들을 때 떠올리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자산가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들은 소득 분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훨씬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이러한 수동적 자유 또한 누군가의 행복감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만 나의 통제를 벗어난 영역에 대해서 자유를 갈망하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올 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의 수준을 어떻게 지키고 가꾸어 나갈지 고민해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들로 시야를 돌리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고 유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한한 욕구와 유한한 자원

하지만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자유롭기는 이룰 수 없는 목표입니다. 완벽한 자유는 말 그대로 이상향입니다.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지만 자원은 유한하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희소성의 원칙입니다. 자유에 대한 욕구 또한 무한하지만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입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 차원에서 완전한 자유로움은 결코 닿을 수 없습니다.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려면 삶의 제약도 존재한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조금 막연하니까 몇 가지 기준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능력치를 몇 가지로 추리고, 어떤 영역에 얼마나 투자할지 고민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중에서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자유가 무엇인지, 내가 더 소중히 여기는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각각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삶의 목표를 생활양식으로서 구체화하고 일상적인 루틴을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우선 세 가지 자유를 가장 중요한 자유로 꼽았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건강과 관련된 것입니다.


1. 신체적 자유

2. 정서적 자유

3. 정신적 자유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사람들과의 관계나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자유도 꼽아보았습니다. 위의 세 가지보다는 외부 세상과의 상호작용에 더 무게를 둔 항목입니다. 혹은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들입니다.


4. 경제적 자유

5. 기술적 자유

6. 예술적 자유


여섯 가지는 조금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각각의 영역은 서로 조금씩 겹쳐있습니다. 예를 들면 규칙적이고 꾸준한 운동을 통해서 신체적 자유와 정서적 자유를 동시에 지향할 수 있으며,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펼치다 보면 경제적 자유에 이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자유의 항목이 많은지 적은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모든 영역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스스로 각 영역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각각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적절한 전략과 계획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여섯 가지 영역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 다루어보겠습니다.


자유의 의미란?

'자유'에 대한 제 나름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자유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게 떠오르시나요? 여러분에게 자유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그리고 자유가 특히 더 중요한 영역이 있다면, 삶에서 어떤 부분들인가요? 자유인줄 알고 좇아온 것이 알고 보니 자유가 아닌 경우도 있었을까요? 과거에는 자유로움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구속으로 바뀐 것들이 있을까요?


저에게 자유라는 가치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정이나 화합, 혹은 인류애와 같은 다른 가치들은 어떤지 스스로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어떤 가치가 더 중요한지는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느끼기에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나를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없는 삶은 노예, 기계, 가축의 삶입니다. 반대로 자유를 실천함으로써 미지의 세상에 발 딛게 되고, 자유를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자유를 되찾은 삶은 내가 나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삶입니다.


한편 그 누구도 완전한 자유를 이룰 수 없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자유를 이룬 삶을 목표로 할 것이 아니라, 자유를 지향하는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처하게 되는 상황이나 환경이 매번 변하고, 우리 자신도 변하는 것처럼 자유의 지향점 또한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자유의 지향점을 잃지 않도록 살피며 살아가야 합니다. 삶의 목표를 달성 가능한 것으로 정하면, 그 이후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영영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정하면 평생 추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기고, 그것은 무한한 삶의 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여생 동안 자유를 지향하는 삶을 살기로 하였습니다. 제 나름대로 정의한 자유를 사상과 개념의 차원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형태로 만들고자 합니다. 흔히 말하는 라이프 스타일로서 자유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여유가 된다면 이러한 삶의 방식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가 탄생한 배경을 잠시 말씀드려 보았습니다.


'자유로운 삶을 살자.'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의 잠재력을 제한하는 구속을 떨쳐내고 더 넓은 세상과 자아를 발견해 봅시다.




참고자료: 1)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지음, 헨리 하디(Henry Hardy) 엮음,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  박동천 옮김, 아카넷(2014), p343.

이전 07화 삶의 목표를 다시 쓰는 여정 (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