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덕갑 Jan 12. 2024

삶의 목표를 다시 쓰는 여정 (4)

여행

여러분은 여행을 얼마나 자주 가시나요? 여행을 갈 땐 어떤 마음으로 떠나시나요? 애당초 여행에도 목적을 갖고 가시는 편인가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국내든 해외든 제 발로 여행을 다닌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떠난 여행이나 대학교 MT처럼 여행은 단지 사회생활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땐 제가 여행을 싫어하거나, 여행에 관심이 없거나, 여행 말고 다른 놀거리를 훨씬 더 선호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 동부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 여행 좋아하네..?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여행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여행 경비에 대해서도 머뭇거렸고, 여행지에서 겪을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꺼렸습니다. 여행 자체가 재미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으니깐요. 그런데 해보기 전에 결과를 알고 하는 일이 얼마나 있나요? 그런 일은 별로 없습니다.


여행은 나 자신에게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보여주고, 세상의 여러 진미를 먹어보게 해 주고, 비일상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몇 화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한 것처럼, 스스로 관대하지 못한 사람에게 여행이란 사치품이자 감히 누릴 수 없는 호사입니다. 그러한 자기 인식을 벗어나면서 여행을 가보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심리상담을 등록한 지 두 어 달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인생에서 반복되는 문제

우연한 기회를 통해 규칙적으로 운동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 덕분에 담배를 끊기로 했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따릉이를 타고 퇴근한 경험이었고, 담배를 끊게 된 우연한 기회란 금연치료제의 존재를 알아차린 일이었습니다. 두 가지는 사소한 우연이었지만, 그 뒤로 저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운동하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났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루틴이 생겼습니다. 12년 동안 피운 담배도 끊을 수 있었습니다. 벌써 금연 기간 500일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2~3년을 돌아보면 생애 가장 건강한 일상을 보낸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2022년 9월 9일 이후로 담배를 피운 적이 없습니다.


운동이나 금연과 같이 제 자신을 돌보는 행위는 자신을 돌보는 마음가짐으로서 저의 내면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의 이점을 점점 더 깨우칠수록, 좀 더 건강해지고 싶었고 좀 더 행복해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나 자신을 더 자유롭게 만들어준다고 느꼈습니다.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 졌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산다

그전까지 저의 인생관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흘러가는 대로 살자' 정도가 되겠습니다. 어느 순간 그렇게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흘러가는 대로 살고자 하면, 실제로 흘러 다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표류하는 삶이었지, 여유롭게 흐르는 삶은 아니었습니다. 삶에 대한 회의감. 심리상담을 등록한 배경에는 이러한 삶에 대한 회의감이 중대한 요인이었습니다. 내 삶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


한편 심리상담을 등록하게 된 또 다른 배경이 있었습니다. 저의 감정이나 행동을 보았을 때 삶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바로 일생일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수동적으로 하게 되는 문제였습니다. 삶의 여러 순간마다 나를 고장내고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나의 발전을 막기도 하며, 내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일생일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수동적으로 한다는 건 어떤 상황일까요? 가장 흔한 예시로는 청소년기의 진로나 진학 문제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대학교 진학에 관한 문제는 여러 가정에서 첨예한 화두가 되곤 합니다. 어떤 학교에서 어떤 학문을 전공할 건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직무로 일할 것인지와 같은 진로 문제와 진학 문제 말이죠. 이러한 문제는 당사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영역입니다. 그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삶을 상당 부분 결정해 버리기 때문에, 당사자의 희망과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계획할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애당초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부모나 선생님 같은 어른들에게 너무 의존하게 됩니다. 어쩌면 사회의 경쟁이 너무 심해서 그런 고민은 팔자 좋은 소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아이들은 꿈을 꾸고 자기 인생을 계획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한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과거의 나를 위로해 봅니다.


그 시절 나의 희망은 안타깝게도...


그러고 보면 흘러가는 대로 산다는 태도는 일종의 회피였습니다. 내가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산다면서 여유를 부렸습니다. 사실 여유 있는 척이었을 겁니다. 실상은 불안하고 두려워서 아무런 선택도 도전도 하지 않는 도망자의 삶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왜 그렇게 위축되었을까? 스스로 벗겨내어 볼 껍데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깊은 원인에 대해서는 좀 더 성찰이 필요하므로 일단은 행동과 극복에 집중해 봅니다.



여행할 결심

사실 심리상담을 등록할 무렵에 퇴사나 이직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쯤 퇴사 기념 여행을 다녀온 뒤에 실제로 직장을 나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비행기 표를 덜컥 예매했습니다. 인천 공항을 떠나 뉴욕 JFK 공항으로 향하는 항공편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어딘가 혼자 여행하러 가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퇴사와 여행이라... 둘 다 잘할 수 있을까?


여행 초보가 고른 곳은 미국 동부였습니다. 왜 미국이었을까요? 지난 에피소드들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자라나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드린 것입니다. 규칙적인 운동, 금연, 감사일기, 성찰적인 글쓰기, 그리고 심리상담 등. 그때 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자유롭게 살아가거라.' 마침내 제 내면의 열망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떠나고 싶을 때 원하는 곳으로 떠나는 것만큼 자유로운 것이 있을까요? 저는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를 숭상하는 미국의 정신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모험이 매력적인 이유는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이루기까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험을 떠나는 사람은 저마다 떠나야 하는 이유를 마음속에 품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가 없다면 모험은 방황이겠죠.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연습

뉴욕 여행은 중대한 모험이었습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자 하는 연습. 내 거취를 제한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뿌리치는 능력을 기르고 싶었습니다. 그게 경제적인 제약이든, 막연한 두려움이든... 스스로 주도하는 방식대로 여행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경험은 분명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청사진을 그리고, 그걸 실제로 이뤄내는 경험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출국 날짜가 조금씩 다가왔습니다. 미국에 사는 친구들과 만날 약속, 혹은 단독 일정 채워나갔습니다. 미국 내에서 움직일 국내선과 여러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물가 상승과 환율 변동 때문에 경비가 훨씬 더 많이 나갈 것 같았습니다. 물론 기대감이나 설렘도 컸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걱정되고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미국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총기나 마약 사고를 당하면 어떡하지?' 심지어는 '지금이라도 그냥 위약금 물고 취소할까..?' 바보 같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미국 여행 별거 없을 거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냥 서울 여행도 괜찮았을 것 같다...


그동안 두려움과 같은 감정이 나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쳐왔을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두려움, 망설임, 창피함, 생소함, 귀찮음, 민망함 등. 감정의 저항 때문에 포기하고 기피한 것들이 많습니다. 일상의 사소한 일도 그렇지만, 일생일대의 중대한 일도 감정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점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면 상처 주거나 받고 싶지 않았고, 남들이 떠나거나 비난할까 봐 불안했던 것 같다. 그런 문제로부터 완전히 초연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저는 유독 두려움이 컸습니다. 내가 원하는 걸 관철하는 마음의 힘이 부족했습니다. 적절한 시점에 충분한 용기로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 그게 참 어려웠습니다. 여행을 기다리는 동안 스스로 묻고 대답해 보았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걱정되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거냐고. 앞으로도 그렇게 수동적으로 살 거냐고.


이윽고 모험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보름이 약간 덜 되는 기간 동안 미국 동부를 여행했습니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 내가 기획하고 준비한 여행이었습니다. 낯선 도시를 직접 탐험하는 일이 이렇게 짜릿할 줄 몰랐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여행 다니는 동안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 느낀 점은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망설이고 주저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내 의지를 가로막는 감정을 극복하고 나니, 한 단계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반드시 봐라

어느 여행지든 그곳에 가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혹은 그 안에서 반드시 들렀다 와야 하는 곳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주에 여행 간다면 한옥마을은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처럼요. 뉴욕 시티도 마찬가지로 해봐야 할 것들과 가봐야 할 곳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습니다. 브로드웨이 극장가의 명성은 정말 위대해서, 일부러 여행 조언을 듣지 않더라도 일정에 넣게 되는 곳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 사람들에게 뉴욕 여행을 간다고 운을 띄우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반드시 보라는 권유를 많이 들었습니다. 과연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만한 명성과 추천을 받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여러분은 여행 계획을 세세히 짜는 편인가요? 아니면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인가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는 기대에 부푼 여행 초보였지만 계획은 거의 없었습니다. 뉴욕 시티를 여행한 지 이틀째 정도 되던 날, '다음 일정은 어디로 가볼까' 하던 와중에 대망의 뮤지컬 티켓을 예매하게 됩니다. 꽤 유명한 작품의 당일 티켓을 찾아보는데 마침 맨 뒷줄에 한 자리가 비어있었습니다. 얼마나 유명하고 대단하길래 거의 모든 좌석이 매진되는 걸까? 과연... 그 작품은 바로 민스코프 극장(minskoff Theatre)에서 상연되는 라이온 킹이었습니다. 그 공연은 다른 극장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티켓 값도 훨씬 비쌌습니다.


엄청난 구석이었지만 티켓 값은 $190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좋은 좌석에서 봤다면 감상이 달랐을까 싶기도 하네요. 많은 이들이 무조건 가보라고 했던 것에 비하면 그냥 그랬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반드시 볼 필요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뉴욕 시티 같은 곳은 한 번 가기가 힘드니까 더 혹했던 것 같네요. 저 같은 사람은 그냥 스테이크나 한 접시 더 썰었다면 훨씬 만족하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그날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세간의 평가가 어떻든, 남들이 얼마나 권하든 말든,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진정한 만족을 느낄 수 있겠구나. 물론 모든 일을 다 겪어보고 정할 수는 없지만,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밀고 나가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나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

한편, 저는 해외여행을 가본 경험이 몇 번 없었습니다. 휴양지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일이나 오지를 탐험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다른 나라의 도시에 가보는 일도 그다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 갈 돈이 없었습니다. 성인이 되기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외여행은 아주 사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감히 시도해 볼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 국내여행도 그렇습니다. 다행히 여행 가자고 불러주는 친구가 아예 없지는 않았는데, 그마저도 막 스무 살이 되던 때였고, 그 이후로는 대학교 MT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여행 경험이 적은 것은 여행의 매력을 몰랐던 것도 있었지만, 나에게 좋은 걸 보여주고 좋은 걸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 별로 없었나 봅니다. 앞서 여러 에피소드에서 말한 것처럼, 제 자신은 항상 채찍질하고 굶주리게 해야 하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여행과 같은 호사도 가당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에 대한 척박한 태도는 말 그대로 나의 경험을 더욱 척박하게 만들었습니다. 자발적으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뇨... 반면에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보니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 한가득입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풍경을 네모 화면에 담는 일이 그렇게 즐거울 줄 몰랐습니다.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들도 그렇고, 그곳에서만 가볼 수 있는 미술관, 박물관 등등. 이 세상에는 나에게 선물할 수 있는 경험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반드시 호화롭게 휴양을 떠날 필요가 없었지만 뭐가 그렇게 아깝고 두려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기회가 닿는 한 많은 곳을 여행해 보기로 마음먹어 봅니다.


두려워할 게 없었다.




자세한 여행 수기는 언젠가 다른 글로 써볼까 합니다. 이번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05화 삶의 목표를 다시 쓰는 여정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