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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갑 Jan 19. 2024

삶의 목표를 다시 쓰는 여정 (완)

취미, 여정의 맺음말

여행 전후 느낀 점

저는 30대의 사춘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육체는 진작에 사춘기를 지났지만, 정신은 어쩌면 3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소년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다'던 목소리가 이제는 '삶이 수수께끼일지라도 내 삶이므로 괜찮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변성기를 겪은 듯, 지난여름을 넘긴 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미국 동부 여행은 아마도 그 변화의 정점에 있었던 일이 아닐까 합니다. 멀리 미국까지 다녀와서 수백만 원의 경비를 썼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좇아야 만족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뻔하고 당연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쉽사리 믿지 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라는 조언과 달리 그에 정반대로 맞서는 조언도 자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하라는 조언처럼요.


정답을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과 남들이 필요로 하는 일 사이의 균형. 그동안 남들이 필요로 하고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일에 몰두한 게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솔직하고 투명하게 돌아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저는 유명한 뮤지컬 공연보다는 한적한 공원을 걸으며 이곳저곳 사진을 찍는 게 더욱 만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의 삶이 혼란스럽고 무기력했던 것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작정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되는 걸까? 여러분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그러한 삶을 살고 계신 분, 원하는 목표와 방향이 있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분, 어떤 걸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분. 남들이 뭐라 하든 내 갈 길을 가겠노라 하면 덜컥 겁이 납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취미 생활

노래 부르기

아주 어릴 적에 미술 학원에 다닌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유치부나 초등부 정도 되는 시기였을 겁니다. 그때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 인상적인 기억은 별로 없던 걸로 보면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나 봅니다. 몇 달 정도를 다니다가 미술 학원은 관두게 되었습니다.


미술 학원 이후에 간 곳은 태권도 도장이었습니다. 거기서는 한 두 달 정도 다니다 관두었습니다. 도장에 나간 지 한 달 만에 심사를 보았는데, 결국 노란 띠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운동 신경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러고 보면 학창 시절에도 운동을 즐기지 않는 편이었네요. 그랬던 제가 규칙적으로 헬스장에 가는 게 무척 신기합니다.


태권도 이후에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됩니다. 당시의 저에게 피아노는 여자 아이들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울며 불며 떼를 썼습니다. 절대 피아노 학원은 가지 않겠다. 차라리 미술 학원에 보내달라. 그 뒤로 몇 달간 학원을 다녔으니, 그날 생떼는 결국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인지 그때는 여자 아이들의 행동을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일러 문이나 웨딩 피치 같은 만화 영화는 친구들 몰래 봤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남자 일, 여자 일이 어디 있냐 하지만, 저의 어린 시절에 성 역할에 대해 훨씬 엄격한 태도를 가졌다는 게 놀랍습니다.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학원 중에서는 가장 오래 다닌 곳이었습니다. 피아노는 미술이나 태권도보다는 훨씬 오래 배웠고, 학원을 관둔 이후로는 다른 학원에 다닐 일이 없었습니다. 피아노 치는 법은 아쉽게도 금세 까먹었습니다. 어떤 능력이든 지속적으로 갈고닦지 않으면 결국 사라지는 법입니다.


시간이 흘러 초중고 학창 시절을 거치면서, 예체능 중에서는 음악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선 교내 합창부 활동도 하고, 가창 대회에 나가보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자주 놀았습니다. 학교 시험이 끝난 날이면 번화가 노래방으로 달려갔습니다. 심지어 시험 준비 기간에도 노래방에 자주 갔습니다. 그땐 오락실 노래방을 줄여서 오래방이라고 불렀는데, 저희 동네만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노래 부르는 제 모습은 저뿐만 아니라 저의 친구들도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절친한 친구 중에 한 명은 그가 저의 팬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팬이라고 하는 경험은 정말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그 친구가 결혼할 때 저에게 축가를 부탁했는데, 가창력이 예전 같지 않다며 거절했습니다. 


가창력은 사실 핑계였습니다. 학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괴로웠는데, 그땐 어떤 일에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혼자 연습을 하든 트레이닝을 받든 성심성의껏 도와줄 수 있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축가를 부탁한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많이 서운했겠죠? 그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하면 이해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노래 실력이 나빠진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일 겁니다.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더니 노래 한 곡을 다 부르기가 힘이 들더라고요. 목소리가 예전처럼 나오지 않는 걸 느끼면서 노래방에 가는 빈도도 점차 줄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나니 노래방을 좀처럼 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노래방에 가는 게 꺼려졌습니다.


그러다 담배를 끊고 나서 집 근처 코인 노래방에 몇 번 가보게 됩니다. 담배를 끊은 지 거의 1년 정도 되었을 때일 겁니다. 너무 오랫동안 노래를 안 불러서 그런지 여전히 어색하고 스스로 불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담배를 한창 피울 때와 달리 목이 한결 가볍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노래 부르는 시간이 즐거웠다는 걸 상기하게 됩니다. 어릴 적에도 노래 부르는 게 좋았는데 여전히 그렇구나. 한동안 목도 아프고 자신감도 없어서 즐기지 못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불러보니 너무 즐거웠습니다.


노래방을 점점 자주 찾으면서 예전의 가창력을 조금씩 회복하는 것 같습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볼까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 봅니다. 취미로 하는 활동이라도 가르침을 받고 연습과 노력을 기울이면 실력이 늘어납니다. 실력이 늘어남으로써 전에는 못했던 걸 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자유로워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림 모임

중고 거래로 유명한 국내의 어느 모바일 앱이 있습니다. 그 앱은 중고 거래 중개뿐만 아니라 위치 기반의 동네 커뮤니티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데요.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비슷한 동네 사람들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친목을 다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네 사람들과 함께할 모임을 개설하고 사람을 모으는 식으로요.


주말을 좀 더 알차게 보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동네 모임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친목만을 위한 모임은 거부감이 들어서 무언가 취미 활동을 공유하는 모임이 좋겠다 싶었습니다. 모임을 찾아다니면서 몇 번의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한두 번 만나고 나서 모임이 와해된다든지, 자기네 교회에서 하는 심리상담에 참여해 보라든지... (심리상담은 안 받겠다고 했더니 모임도 파투가 났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모임을 겪고 나서 드디어 정상적인(?) 모임을 찾게 됩니다. 모임의 목적은 '주말에 카페에서 함께 그림 그리기.' 마침 용도가 거의 없는 아이패드가 놀고 있었는데, 이걸로 그림이라도 그려보자 하면서 모임에 나갑니다. 혼자 시작했다면 금세 포기했겠지만, 역시 같이하면 오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모임이 벌써 만으로 1년이 넘었으니 새삼 귀한 모임이구나 싶습니다.


그 모임에서 그림을 순수하게 취미로만 그리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본업과 조금씩은 관련이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미술을 배워본 것은 고등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저는 완전히 초심자 수준이었습니다. 마침 서점에서 따라 그릴 수 있는 아이패드 드로잉 책을 사서 모임에 가져가봤습니다. 업으로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은 제가 베끼는 그림을 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귀가 얇아서 그런지 잘한다고 해주면 더욱 신이 나서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그동안 혼자서 조금 해보다가 접은 취미들이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면 즐겁다는 걸 새삼 배웠습니다.


나답게 사는 사람들

그림 모임에서 만난 분들은 따로 본업이 있거나 부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림 그리는 삶을 우직하게 이어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 좁고 정체된 인간관계에서는 그렇게 예술가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림 그리는 삶이 소득도 불안정하고 장래가 불안하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하는 일이기에 할 뿐이라고 합니다.


한편 저는 그때 직장 생활 4년 차에 접어든 시기였지만, 마땅히 장기적인 목표라고 할 게 없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건강 문제로 학업을 중단하였고, 4년 전 우연히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큰 탈 없이 처리할 정도로만 살고 하루하루를 지내왔습니다. 간혹 직장에 불만이 생기면 더 나은 처우를 위해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동기부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삶이 불안하지만 원하는 일을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그리고, 그대로 살면 되는구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동안 불안과 걱정만 많았습니다. 목적 없는 삶은 정체하거나 방황할 뿐이었습니다.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은 더 나은 처우를 기대하며 전문성과 업무 역량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조직에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적절히 보상받는 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경제와 사회가 작동하는 것이며, 개인적으로도 경제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을 테니깐요. 하지만 어떤 명함을 갖고 다니는지, 매달 월급으로 얼마가 들어오는지는 삶의 불안을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단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걸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반드시 퇴사를 해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무렵에 겪고 있던 내면의 변화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퇴사를 고민할 무렵 오랜 친구들 몇몇과 우연히 연락이 닿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연락을 돌리고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고 실은 그럴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친구와 만나서 이야기 나눌 수 있었는데, 주로 대학교 다닐 때 알게 된 친구들이었습니다. 마침 고민이 많을 때였는데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과 접촉하게 된 게 신기했습니다.


친구들 이야기를 자세히 하기는 그렇지만, 그들 모두가 계획대로, 목표대로, 혹은 바람대로 잘 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는 분명 목소리에 영혼이 충만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눈에서는 은은한 광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열정의 대상이 조직 생활이든, 학업이든, 종교든, 혹은 예술이든. 주위를 둘러보니 나답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눈에서 광기가 흘러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유난스럽다고 부담스러워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사람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부담스러워하는 마음은 어쩌면 제 마음에 있던 시기나 질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열정이나 목적의식은 제가 한동안 갖지 못한 것이었기에 미운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일련의 변화들을 겪으면서 제 안에서도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 또한 나답게 사는 삶을 갈망하게 됩니다. 나답게 살고 싶다가 아니라, 나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봅니다. 내 안의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나다운 삶이 뭘까?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내 삶을 어떻게 살아야 나답게 살 수 있는 걸까?


여정의 일단락

삶의 의미에 대한 의문은 살면서 오랫동안 고민한 질문이었는데,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없어서 항상 괴로웠습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질문에 정답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막연하고 불안합니다. 그러다 문득 깨우친 것은 삶이 수수께끼라는 관점이었습니다. 삶이 수수께끼라는 말은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이유라는 말입니다. 왜 사느냐 묻는다면 그걸 알아내기 위해 살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적당히 힘들면서 적당히 살 만한 삶을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위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나서 그동안의 삶을 긍정하고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내 삶이니까 괜찮다. 그동안의 방황과 부진에 대한 자책이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 시간들 또한 내 삶이었기에 괜찮은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의 의미는 내 마음대로 정해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떤 미래가 펼쳐지든 내 삶이라서 괜찮을 것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내 삶이라서 괜찮지 않을까요? 삶의 의미란 수수께끼처럼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한 의미대로 그저 살아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보다가 뭔가 모순이 생기면, 수정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자유로운 삶을 살거라, 덕갑'


규칙적인 운동은 신체 능력을 개선함으로써 몸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상담과 글쓰기는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를 주저하는 마음에 날개를 달아서 현재에 충실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담배를 끊으면서 니코틴에 구속된 정신을 해방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변화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저에게 큰 행복감을 주었고, 그 중심에 자유라는 가치가 있었습니다. 프롤로그에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나는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나는 자유로워질 때 행복감을 느껴.


하지만 '자유'는 조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자유가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나는 왜 그러한 자유로부터 행복감을 느끼는지 자세히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실천 계획과 시스템을 개발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작업이었고, 나와 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봄에 등록한 심리상담을 시작으로 해서 지난가을까지, 개인적으로 내면의 변화를 겪은 6개월이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만큼 빠르게 변화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다니던 직장까지 퇴사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에 더욱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불안정해졌지만, 삶이 올바른 곳으로 전향하고 있는 느낌에 벅찬 마음이 듭니다.


제 나름의 삶의 목적을 찾은 것 같지만, 이건 일시적인 것일지도 모릅니다. 몇 달 뒤에 달라져 있을 수도 있고, 몇 해 뒤에 그땐 틀렸다고 돌아볼 수도 있을 겁니다. 인생의 의미나 목적이란 애당초 정답이 없는 문제니깐요. 절대적인 답은 없겠지만, 그때그때 달라지는 변화를 느낄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삶의 목적이 달라진 순간을 겪어본 경험이 있을까요? 아니면 변함없이 확고한 목표를 갖고 계신가요? 혹은 삶의 의미가 없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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