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과 금연
심리상담과 감사일기는 제 자신과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스스로에게 엄격한 성격 탓에 고충을 겪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성에 차지 않고, 스스로를 존중할 줄 몰랐습니다. 왜 그때 더 잘하지 못했을까? 그게 최선이었을까? 그렇게 게으르고 의욕이 없어서 무슨 일을 해낼까?
한편 현대 사회의 여러 단면이 개인에게 탁월함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요구하는 정도가 아니라 때때로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생애의 거의 모든 순간을 경쟁에 내몰린 채 살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학업 경쟁, 취업 경쟁, 혹은 성과 경쟁까지. 나에게 부족한 것들이 있는지 끊임없이 보채게 되고, 나에게 없지만 남들이 가진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가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평생을 제 자신에게 인색하게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에피소드에서 다룬 것처럼, 심리상담 중에 받은 강점검사를 계기로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강점검사 자체는 단지 제가 가진 여러 성격 상의 강점을 중요도에 따라 나열해 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들이 저의 강점인 줄도 몰랐습니다. 나에게도 괜찮은 구석이 많이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항상 스스로 모자란 부분만 바라보았던 저에게는 인식의 전환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자기 자신을 대하는 마음이 훨씬 너그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배우는 걸 좋아하고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를 잘 통제할 수 있다.' '나는 사진 찍기 좋은 구도를 잘 찾을 수 있다.' '나는 문서화하거나 도표를 깔끔하게 만들 수 있다.' 심리상담과 일기 쓰기를 이어나가면서, 스스로 칭찬할 만한 일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나의 장점을 찾고 나를 칭찬하는 일도 실력이 늘어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운동을 거의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오래 달리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달리는 속력과 지구력을 점차 늘려나가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마라톤에도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칭찬하고 존중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한 마음도 심폐지구력처럼 점진적으로 길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과 경험은 그대로였지만, 달라진 것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였습니다. 그동안의 나 자신은 무언가 부족하고 결핍되어서 항상 채찍질해야 하는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무언가 해낼 수 있고 가진 게 많은 기특한 청년으로 보였습니다. 나는 생각보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내가 가진 장점을 더 잘 찾는 사람이 되어 갑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이처럼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게 무척 놀라웠습니다.
내가 실제로 어떤 걸 가졌는지, 얼마나 훌륭한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를 대하는 내 마음과 관점이 중요하다는 걸 몸소 깨우쳤습니다. 이런 감정이 나를 사랑하는 감정일까요? 한 세기의 삼분의 일이나 살고 나서야 '나'라는 인간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강점검사나 감사일기 등은 저의 자기 인식 전환의 중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두 가지가 직접적인 전환점이었다면, 오랜 기간 누적된 변화도 있었습니다. 바로 운동과 금연입니다.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 퇴근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지하철 역 출구 앞에 줄지은 따릉이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곧장 따릉이 어플을 깔고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그날 봄바람을 가르며 한강 자전거 도로를 달린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때 다니던 직장의 위치는 국회의사당역 근처였고, 그때 살던 집은 노들역 근처였습니다. 지도로 경로를 확인하고 페달을 밟습니다. 여의도 한강 공원으로, 한강 공원에서 노들섬으로 이어지는 경로였습니다. 그때가 아마 처음으로 자전거 퇴근을 하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바삐 퇴근하는 사람들과 차량들을 뒤로하고 여의도 공원에 들어갔습니다. 공원 너머의 동여의도에는 마천루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걸을 때 보는 풍경과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가는 풍경은 사뭇 느낌이 다릅니다. 높은 빌딩이 많구나 하면서 한강 공원으로 나가는 통로로 들어갔습니다. 터널을 지나자 시야가 탁 트입니다. 공원과 한강이 펼쳐졌습니다. 햇빛을 받은 강물이 반짝이고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칩니다. 콧구멍 가득 강바람을 들이 마쉬며 페달을 밟아보았습니다. 페달을 밟을수록 마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만 같습니다.
강 건너편의 도시 경관이 천천히 흘러갑니다. 여의도에서 동쪽으로 향하다 보면 한강철교가 나타납니다. 그 위로 서울역이나 용산역을 오가는 기차와 1호선 지하철이 지나다닙니다. 그날도 여러 열차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겠죠. 평소라면 저런 열차 속에서 사람들 틈에 뒤섞여 있을 퇴근길이었겠지만, 그날 자전거 위에서 만끽한 풍경, 바람, 공기, 그리고 개방감은 너무나 특별한 기억이었습니다.
며칠 뒤 따릉이 정기권을 결제했습니다. 퇴근길에 종종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심지어 퇴근 후 여가 시간에도 따릉이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잠실대교까지 다녀왔는데, 따릉이 대여시간을 초과할 뻔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거의 안 했던 저에게는 조금 무리였나 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항문외과를 가보게 되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저에게 과로했는지 물었습니다. 과로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한동안은 자전거를 탈 수 없었습니다.
해가 바뀌고 날씨가 풀리는 동안 저는 이사를 했습니다. 노들역 근처에서 지금의 사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 해 봄에 저렴한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합니다. 돌아보면 노래방, PC방 혹은 게임 결제 같은 것 말고는 취미 활동에 돈을 써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자원이 부족하다고 느끼며 살아서 그런지, 무언가 나를 위해 돈을 쓰는 일에도 인색했나 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안정적인 소득이 생기고 나서야 나를 위한 소비에 눈을 뜬 것입니다.
새로 이사한 집은 당산동에 있었는데, 한강 공원이 매우 가까웠습니다. 계절 좋을 때 운동하려고 일부러 한강과 가까운 곳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 해 여름도 한강 자전거 도로를 신나게 달렸습니다. 언젠가부터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고 체중은 항상 80kg을 넘는 저였습니다. 그런데 몸무게는 70kg 정도까지 내려갔고 운동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자전거를 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운동하는 루틴의 가장 이로운 점은 내 몸이 더욱 자유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을 땐 15분 남짓한 퇴근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숨이 차고 다리에 알도 배겼습니다. 무리하게 타면 항문외과에 가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몇 달씩 자전거를 타다 보니 전보다 훨씬 빨리 달릴 수도 있었고, 남산에 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달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엔 빨리 걷기만 해도 금세 지쳤지만, 몸이 만들어지면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달리기에도 도전하게 되었는데, 잘 달린 날에는 여의도 한 바퀴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웨이트 트레이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번 조금씩 중량을 늘리다 보면, 그만큼 강해지는 느낌에 짜릿한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는 동안 근육도 자랐을 것이고, 나 자신에 대한 애정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을 겁니다.
돌아보면, 즉흥적인 자전거 여행은 일상의 운동 루틴이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내가 잘 몰랐던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더욱 계발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어쩌면 운동처럼 놓치고 지나간 원석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면 더 다양한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됩니다.
한창 운동에 흥미를 붙일 무렵, 오랜 친구 중 하나를 손절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담배입니다. 그때는 주로 한강 공원에서 유산소 운동을 했는데, 숨이 차서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많은 흡연자들이 '언젠가 끊어야지' 하면서 끊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그런 골초였습니다. 니코틴 중독은 극복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온갖 합리화를 통해 흡연 생활을 이어가게 만듭니다.
그놈의 호기심 때문에 시작한 담배를 12년 동안 피웠습니다. 어쩌면 제가 담배를 처음 배운 시기부터 저의 인생이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의미가 각별했습니다. 인생의 내리막을 끝내고, 더 나아질 나날을 살아가기... 그러던 어느 날 챔픽스라는 니코틴 중독 치료 약물을 우연히 알게 됩니다. 왠지 이 약으로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금연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보 홈페이지를 참고해 보시면, 특정 병의원에서 프로그램 참가 신청과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금연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처방받은 치료제는 '니코챔스'라는 약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약효가 있는 동안은 담배 맛이 뚝 떨어집니다. 이걸 왜 피우나 할 정도로 맛이 없어집니다. 저는 일주일 정도 약을 먹다 보니 담배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거의 500일 가까이 지났으니 일단은 금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치료제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담배를 끊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여러 금단현상으로 고통받기도 하고, 미미한 부작용으로 새벽마다 깨곤 했습니다. 그래도 몇 주 정도 지나면 적응할 만한 일이었고, 마침내 담배를 끊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담배를 피운 게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방치해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 자신에게 미안하고 자책하는 마음도 듭니다. 삶의 목표가 애매하고 원하는 바가 모호할 때에 스스로에게 무책임해지는 것 같습니다. 무책임하게 건강을 해치고, 무책임하게 생활합니다. 그동안의 무기력이나 저성과의 원인 중에 하나가 담배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지난 12년 동안 허비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돈, 시간, 건강, 관계,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흘러가버린 시간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배웠습니다.
규칙적인 운동과 금연을 통해서 저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엔 알아차리지 못한 미묘한 변화였습니다. 그 변화란 스스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마음이 조금씩 천천히 자라난 일입니다. 좀 더 건강하고, 좀 더 행복하고,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 졌습니다. 나 자신이 그러한 삶을 살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혼자 힘으로는 여전히 막연한 구석이 있었기에 심리상담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화에서 다룬 것처럼, 심리상담을 통해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상담 자체도 도움을 주었지만, 글쓰기의 도움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감사일기나 감정일기처럼 성찰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삶과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느낍니다.
자전거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에게 자전거 타는 방법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설명이야 해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자전거를 타려면 페달을 번갈아 밟는 느낌을 깨우쳐야 합니다. 또한 페달질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미묘한 요령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배우기가 어렵습니다. 직접 해보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느낌을 익혀나가야 합니다. 자전거 이론을 아무리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하더라도, 실제로 자전거를 타는 일은 별도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방법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전거 타기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느낌도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깨우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우연히 시작한 운동과 금연, 그리고 심리상담과 감사일기를 계기로 자기 사랑의 감각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새로 태어난 기분입니다.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나 자신을 어떻게..? 이때 필요한 것은 적당한 거리감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주체와 나 자신 간의 약간의 거리감. 스스로를 약간 떨어져서 보면 나 자신은 대상이 된다. 이 가여운 인간에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걸 먹이고 좋은 걸 입히고 좋은 걸 보고 듣게 할 건지 고민하게 된다. 이 가여운 몸뚱이가 좀 더 건강할 수 있도록 운동에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이 가여운 영혼이 좌절하지 않도록 삶의 이정표를 바로 세워야 한다.
감정일기 - 자기 사랑(2023. 07. 18)
삶에 대한 긍정과 자기 사랑의 감각을 깨우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 막연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조건 없이 수용하고, 나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도록 지지하는 일. 자기 사랑의 여러 가지 형태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자기 사랑의 감각을 깨우칠 무렵에도 저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서 애쓰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수수께끼이다. 어쨌든 태어나버린 이상,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무엇을 남길 것인지 스스로 찾아내는 수수께끼이다. 과연 나는 누구란 말인가?
감사일기 - 삶 (2023. 07. 02)
삶의 의미란 어쩌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평생 동안 찾아다녀야 하는 수수께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어반복적이고 허무하게 들립니다. 저는 오히려 그러한 관점으로부터 큰 위안을 받습니다. 삶의 의미를 도통 알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나니 모든 게 괜찮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삶은 수수께끼'라는 엉터리 같은 의미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동안의 방황과 고통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그저 '내 삶이었기에 괜찮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경험과 더불어, 저는 제 삶을 긍정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수수께끼와 같은 삶이지만, 그 의미와 목적을 찾는 여정을 이어나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