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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Jul 19. 2024

산으로 들로

시골의 하루

여름은 구릿빛 피부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로 시작되었다.


할머니 집에서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동 틀무렵 집을 나선 할머니는  간단한 농기구를 챙겨 들고 밭으로 향하셨다.

밤새 식었던 대지는 새로운 뜨거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풀새마다 방울진 이슬이 다리 사이를 적셔주던  , 밭으로 향하는 길은 고즈넉한

산세의 아침을 깨워주고 있었다.


일찍 떠오른 햇살에 눈이 부신 우리들이 하나둘 잠을 깰 때쯤

광주리 가득 먹을거리를 안고 할머니는 대문을 들어서곤 하셨다.

이른 밭일을 마친 할머니 손에 들려온 갖가지 먹거리는 우리들 아침상에 올라 ,

어느 날은 오이를  된장에 찍어 먹고

어느 날은 참기름 두른 물렁한 가지나물로

어느 날은 된장에 빠진 호박과 매운 고추로 밥상 위에 올라오곤 했다.


시골에서의 생활은 단조롭기 그지없었다.

도시에 살던 손녀들에겐  별다른 일을 시키지 않으셔서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우리들은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같이 투닥거리다 그것마저 재미없어진 우리는  할머니를 따라 길을 나선다.


아침 먹은 뒤 해가 중천에 올라 뜨거움이 절정에 달하기 전에

할머니와 같이 15분남짓 걸리는 시골길을 걸어 밭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잠시도 걷지 않았다.

지금은 걷는 것도 귀찮아 내내 앉아 있다 보니 운동부족이란 단어를 훈장처럼 달고 살지만......


땀이 흘러도

가는 길이 멀어도 우리들은 할머니 뒤를 종종거리며 따라 달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 내기도 하고

잠시 멈춰 들풀도 꺾어가며  뜨거운 지열로 익어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즐거웠다.


할머니가 일군 밭은 산소가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조그만 냇가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약간 경사진 곳에 있던 밭에는 할머니의 손길 따라

주렁주렁 달린 먹거리가 풍성한 여름을 보여주었다.


그곳에서 호박도 따고 , 오이도 가져오고

깻잎의 진한 향기도 담아 오신 거였다.


수건 두른 머리 위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할머니는 쭈그린 채 일을 하셨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밭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메뚜기도 잡고

잠자리 따라 온 밭을 휘젓고 다녔다.


노란 나비도 하얀 나비도  

여기 사뿐 저기 사뿐 거리며 여름 한낮을 함께 했다.


처음엔 손에 잡지도 못하던 메뚜기를 잡아 뒷다리만 그러쥐고

``인사해 봐,``

까딱까딱..

``인사해 봐``

까딱까딱..

내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닌 메뚜기의 인사받기로 한동안 즐겁다.


``야야~~~ 나무는 밟지 마라.. 저~~ 기로 가서 놀아~``

할머니 목청이 높아지면 우리는 깔깔대며 멀리 도망을 갔다.



선크림이라는 것도 모르던 시절

그렇게 뙤약볕에 노출된 온몸은 새까맣게 변하고

개학 전 집에 돌아갈 때쯤이면 우리 모두

하얀 이만 드러낸 못난이 인형 같았다.



한바탕 뛰어놀고 돌아오면 세차게 펌프질 한 차가운 물로 등목을 했다.

한 사람씩 차례대로.

그 차가움이란......

온몸이 오그라드는 극한의 시원함으로 끈적끈적해진 온몸을 말끔하게 씻어 내렸다.


장날이 아니면 갈 일 없는 시내에서만 맛볼 수 있던 과자랑 껌이

귀하던 시절,

밭에서 따온 노란 옥수수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겹겹이 싸인 껍질을 벗겨내고

단맛 진한 신화당과 짭조름한 소금으로 삶아내 주셨다.


뜨거운 옥수수를 손에 들고 호호불어가며 옥수수피리 불듯 먹어 대던 일

한 알씩 , 혹은 입안 가득 한입 베어 물면

톡톡 터지는 뜨거운 옥수수의 단짠.


주먹만 한 감자를 수북이 삶아 굵은소금과 내어주시면

우리들은 설탕, 설탕을 노래 불렀다.

설탕 종지에 꾹 눌러 푸~~ 욱 찍은 감자는 달달한 그 맛이 일품이었다.


한창 자랄 나이의 우리가 먹을 거라곤 감자와 옥수수가 전부여서

출출해진 배를 채워줄 간식으로 제격인 고마운 음식이었다.


노곤해진 우리는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밑에 드러누워 낮잠을 잤다.

곤한 잠을 자는 아이들의 숨소리가 잦아드는 오후 한낮.

그렇게 시골의 하루는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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