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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아 조인순 작가 Jul 07. 2024

중년의 쓸쓸함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쓸쓸한 생각이 들어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쓸쓸함이 친구가 된 지 괘 오래되었는데도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고 낯설다. 그런데 와인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쓸쓸해졌다. 결국 와인 마시는 것을 그만두었다.


  술은 유희이며 망각의 물이라 마시고 나면 술이 깰 때까지 불쾌하고 기분이 더럽다. 되도록 술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술을 마셔야 한다면 과음은 삼가고 기분 좋을 정도로만 마셔야 한다. 술을 마실수록 쓸쓸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즐거울 때 마시지 않고, 쓸쓸함을 잊기 위해서 마셨기 때문이다.


  누구든 혼자 있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첫 번째가 술이다. 외롭다고 한 잔 두 잔 혼 술을 마시다 보면 술에 젖어 습관이 되고, 폐인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가끔은 술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때는 절제하며 마셔야 한다.


  두 번째는 의존적인 삶이다. 외롭고 쓸쓸하다고 가족이든 친구든 누군가에게 기대게 되면 외로움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길엔 아군보다 적군이 더 많다. 그리고 영원한 아군도 없다. 가족이라 해도 너무 의존적이면 부담스러워한다. 혼자인 것을 받아들이고 외로움을 친구 삼아 잘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두 가지만 명심하면 자기 자신의 주도적이고 멋진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필자도 혼자가 되었을 때 많이 혼란스러웠다. 식탁에 숟가락이 줄고, 밥그릇이 줄고, 현관에 신발이 줄었다. 집안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이 무덤보다 더 조용했다. 오로지 움직이는 것은 필자 혼자였다. 끼니때도 잊고 하루 종일 컴 앞에 앉아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검은 어둠이 무겁게 집안 가득 내려앉아 점령하고 있었다. 무겁고 칙칙한 어둠이 어깨 위에도 머리 위에도 내려앉아 있었다. 어둠에 깔려 식식할 거 같았다.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빈 둥지가 되니 쓸쓸하고 공허함을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설명이 불가했다. 어느 날은 여행을 가고, 어느 날은 집안 구석구석을 치우고, 어느 날은 서랍들을 정리하고, 또 어느 날은 옷장을 정리하고, 또 어떤 날은 가구를 옮기고, 책장을 정리하고, 거실을 서성이고, 소파에 처박혀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혼자서 꼼짝도 안 했다. 신이 주는 선물일까 저주일까를 생각하며 거울 속의 자신에게 묻기도 했다. 이게 현실이냐고…….


  중년의 쓸쓸함에 익숙해지기까지 많은 시간 속을 방황하며 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중년의 쓸쓸함은 청춘 때 느꼈던 쓸쓸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청춘에 느꼈던 쓸쓸함은 열정과 패기로 가득한 젊음과 함께 했지만, 중년의 쓸쓸함은 희망보다는 현실의 안주(安住)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기를…….

 

  가족과 친구들에게 기대며 살아가도 되지만, 그것은 잠깐이다. 어차피 모든 것은 혼자 감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존적인 삶을 살기 싫었다. 나약한 모습을 가족과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아직은 속물적 근성이 남아 있어 마지막 발악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 병간호로 지쳐있는 친구가 어느 날 그랬다. “넌 다행인 줄 알아 이것아. 수발들 부모도 남편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은 무섭고 겁나는 중년의 홀로 서기를 하며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밤길을 혼자 걸어가느라 죽을 만큼 힘들었고, 지금은 견딜 만하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진행형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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