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친구들과 셋이서 산행을 갔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할 일도 없고, 요즘 명절은 예전 같지가 않다. 어린 시절 시끌벅적한 명절은 아니다. 친척들이 서로 오가지 않으니 좀 쓸쓸하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간편해서 좋다. 세상이 변했으니 어찌하겠는가. 울 집도 작년까지만 해도 동생네 가족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갔다.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 올부터는 오지 말라고 했다. 각자 편하게 지내자고.
날은 더워도 가을은 우리들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산엔 벌써 밤이 익어 떨어져 있다. 올해 처음 보는 가을을 하나씩 주우며 산길을 걷는데 어떤 여자와 마주쳤다. 우리보다 연배로 보이는 그녀는 우리 일행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아휴, 안녕하세요? 반갑네요. 저는 오늘 여자들은 처음 봐요.”
“저희는 몇 명 봤는데요.”
“그래요? 저는 남편도 없고, 애인도 없어서 이렇게 명절날 혼자서 산에 왔어요. 집에서 나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왔는데 여자들을 보니 너무 반갑네요.”
“...?”
그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남편도 없고, 애인도 없다고 한다. 모든 것이 궁금한 필자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또 뭔 상황인지. 그런 것을 굳이 광고까지 하고 다닐 필요가 있는지. 명절이 남편과 애인 사이의 뭔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남편과 애인이 있다고 해서 명절이 달라질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녀는 우리 일행을 계속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이런 명절엔 남편이나 애인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남편도 없고, 애인도 없어서 혼자 있어요. 어디 갈대도 없고 해서 산행이나 할까 하고 나왔는데 남자들만 보이고 여자들이 안 보여서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아, 우덜도 읍써요. 야도 읍고, 지도 읍다고요!”
갑자기 그녀의 말에 미스인 친구가 발끈하며 우리 둘도 남편도 없고, 애인도 없다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문직에 종사하며 평생을 솔로로 당당하게 사는 친구가 그녀의 말이 어지간히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남편이 퇴직하고 집에만 있어서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도 한마디 했다.
“아, 이 나이에 남편이 있어도 내다 버릴 판인데 돈만 있으면 돼지 남편이 뭔 필요가 있어요. 우리 남편은 퇴직하고 집에만 있어 어디도 마음대로 못 가고 죽을 맛인데 다행인 줄 알아요.”
그녀는 친구의 말을 듣더니 다시 말을 걸었다.
“아니, 두 분은 아직 젊고 예쁜데 왜 남편도 없고, 애인도 없어요?”
“아, 읍쓰면 없는 거지 이쁜 거랑 뭔 상관이유~”
친구의 말에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멋쩍게 웃었다. 친구는 갑자기 끼어들어 이상한 말을 하는 불청객 때문에 불편해 보였다. 그녀는 말이 하고 싶고, 사람이 많이 그리운 것 같았다. 그녀는 계속 따라오며 귀찮게 해 우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