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이야기 - 아이의 잘못은 내 잘못?
우리 진우가 학교에서 담배를 폈다. 그것도 학교 본관 건물 밖의 모두가 보이는 벤치에서 전자담배를 연기를 폴폴 내면서 피웠다고 한다. 많은 친구들이 근처에 있었고 그걸 본 다른 여자친구들 무리가 와서 선생님에게 알리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즉시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이 내려가서 담배 피운 두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한 명은 다른 중학교 아이, 한 명은 우리 진우였다. 진우말로는 길에 떨어진 전자담배를 주웠고 호기심에 그날 처음 핀 거라고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반 반장도 같이 핀 걸로 제보가 들어왔으나 첨엔 끝까지 잡아떼다가 결국 인정하였다.
굽은 어깨에 까무잡잡한 얼굴, 왠지 퀭해 보이는 눈망울이 우리 진우 겉모습이다. 학기 초부터 우리 반을 들어온 많은 선생님들이 진우가 가장 눈에 띄고 힘들 것 같다는 말씀들을 해왔었다. 수업 태도나 평소 하는 행동, 그동안 해온 수많은 장난들을 생각해 보면 가장 일이 많은 아이이긴 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할 때 나는 속으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 꼭 그런 거 같진 않은데...’ 그렇게 보신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진우 바르게 만들어서 꼭 달라진 우리 반과 진우를 보여줘야지 싶은 마음이 더 생겼다. 그러던 와중에 흡연 사건이 터진 것이다. 호기심이든 아니든 일단 학교라는 울타리 안의 공개된 장소에서 핀 거부터가 머리가 나쁜 거 아닌가 싶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아님 생각이라는 것을 했을까... 왜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행동을 할까...
그렇게 명백한 사안이 발생했으니 선도위원회가 열릴 것은 당연한 거고, 진우와 함께 담배 피운 다른 아이는 반성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또 제보가 들어왔고, 진우가 걸린 그 당일날 저녁에 놀이터에서 또 친구들 부름에 나가서 함께 담배를 폈다는 거였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교무실은 이 일로 또 시끄러워졌다. 아이들은 또 불려 와서 진술서를 쓰고 관련 내용을 다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걸린 아이들이 뭔가 억울했나 보다. 그 와중에 다른 여자친구들의 과거 흡연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고 그 아이들이 함께 선도에 가는지 안 가는지가 남자친구들한테는 궁금한 문제였다.
쉬는 시간, 그중의 한 여학생에게 우리 진우와 다른 반 친구가 찾아가 “너는 선도가? 안 가? ”라고 물어본 것이 또 다른 사안의 시작이었다. 남자 친구 둘이 찾아와 물어보는데 당황해할 틈도 없이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던 것이다. 아마도 뭔가 무섭고 놀랍고 당황했으리라... 그 여학생은 두려움에 떨며 한 시간 내내 펑펑 울기 시작했고 화장실에 숨어서 계속 울었다. 선생님들이 찾아서 데리고 교무실로 와서도 계속 울었다. 너무도 서럽게....
결국 처음 찾아가서 물어본 우리 진우와 다른 반 친구는 또 교무실에 불려 와 엄청 혼이 나고 학폭 이야기까지 거론이 되었다. 협박일 수도 있다고.
교무실이 발칵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여학생들은 울고, 우는 학생들을 또 선생님들은 달래고, 남학생들은 혼이 나고 부장님은 화가 났다. 진우 담임인 나와 다른 반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이 죄인처럼 혼이 날 때도 그 후에도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왜 집에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어떤 불만, 한심함, 답답함이 섞인 책망과 눈초리가 가슴에 새겨졌다. 당장 연락해서 아이들이 반성을 하고 더 이상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도록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우린... 학년부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께서 조사를 하고 어느 정도 사안이 정리가 되어야 집에 연락해서 뭐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언제 즈음 연락을 해야 하나 하고 노심초사 상황이 돌아가는 걸 지켜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졸지에 사안 발생 후에 아무 신경도 안 쓰는 담임이 되어 버렸고, 아이가 1차 흡연뿐 아니라 2차 흡연 및 다른 학생들과 이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트러블조차 담임의 책임이 되어버린 듯한 분위기...
‘왜 아이가 잘못을 했는데 반성을 하지 않고 저러고 다니느냐’는 책망 섞은 눈초리... 더구나 여학생의 이상하게 심할 정도의 통곡 같은 울음소리에 한 번 물어본 우리 진우와 그 친구는 엄청난 죄인이 되어버린 분위기... ‘도대체 담임은 뭐 했냐’는 눈초리...
너무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서 울고 있는 여학생에게도 화가 났다. 자기도 똑같이 흡연했으면서 저렇게 펑펑 울어서, 우니까 선생님들이 위로해 주고 달래주고... 생각 없고 정신없는 남학생들은 말 한마디 했다가 완전 쥐 잡듯이 잡혀서 혼나고... 이게 뭐지..?
내가 두 아들의 엄마라서가 아니다.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뭔가 또래의 여학생에 비해 어눌하고 상황 설명도 서툴고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면 뭔가 앞뒤가 안 맞게 다 생략하고 말을 한다. 그에 비해 여학생들은 너무도 자세히 설명하고 당시에 느낀 자기의 감정까지도 적절히 섞어서 실감 나게 이야기를 잘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들들인 남학생들이 괜히 더 억울하게 혼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어왔다. 그래서인지 혼나는 우리 진우가 더 안타까웠다.
‘반성하는 태도’가 도대체 뭘까?
펑펑 울면 반성하는 건가? 안 울고 돌아다니면 반성하지 않는 건가?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데? 아이들 바르게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바르게 커나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행동이 나쁜 거지, 아이가 나쁜 아이인 것은 아닌데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내내 기분이 너무 나빴다. 뭔가 담임으로 역할을 잘못한 것 같기도 하고 진우의 잘못된 행동이 내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흡연 예방 교육을 안 한 것도 아닌데 왠지 내 책임인 거처럼 비치는 게 억울하기도 하고.
참 희한한 게
큰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없고 수업 분위기 좋은 반은 담임이 훌륭해서 인 거 같고, 말썽꾸러기가 많고 수업 분위기 나쁜 반은 담임이 능력이 없어서인 거 같다. 교직생활 한 두 해 한 거 아니면 그건 담임의 역량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물론 아이들을 정말 방치해서 내버려 두는 함량미달의 담임이나 너무도 뛰어난 역량을 가진 분들은 제외하고 보통의 나 같은 사람들 말이다.
지금까지 교직생활 20년 가까이하면서 내가 맡은 반들은 하나같이 다 좋았다. 특별히 나를 힘들게 한 아이도 없었고 모두 내가 감당가능한 아이들만 운 좋게도 맡아왔다. 올해도 1학년 전체 중에서 우리 반 구성이 가장 평범하지 않지만, 나는 우리 반이 좋고 아이들이 예쁘고 지금은 천방지축이어도 학년말이 돼 갈수록 더 예뻐지고 반듯해질 거라 믿어왔다.
그래서 우리 진우도 다른 선생님들이 나쁘게만 보는 것이 속상하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 나빠서 힘들고 속상한 게 아니라 아이의 행동이 아닌, 아이 자체를 나쁘게 보는 것 같아서 속상한 것이다.
학기 초 긍정으로 똘똘 뭉쳤던 내 마음이 흔들린다. 교사로서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