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생각보다 세상에는 감사한 일이 많다
지난달 말에 자주 가는 서점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원하는 책을 미리 주문해 픽업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서점 바로 옆에 딸린 문구용품 가게에 눈이 갔다. 요즘 기록에 정성을 들이느라 사용하는 문구용품에도 신경을 쓰게 되면서 지나치기 힘든 장소가 되어버렸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곧장 가게 안으로 들어가 다양한 디자인의 메모지가 가득한 코너 앞에서 한참을 구경했다. 나가려고 하는 찰나에 눈에 띈 독특한 메모지가 있었는데 바로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을 수 있는 감사 일기였다.
메모지 상단에 ‘I FEEL GRATEFUL’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감사 일기 메모지를 보고 이상한 호기심과 의욕이 발동했다. 하루에 하나씩 적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하나씩 벽에 붙여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임 없이 하나를 집어와 집으로 향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10분만 투자한다면 매일 적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일기를 쓴 며칠은 꽤 순탄하게 적어 나갔다. 오늘은 글을 쓰기 전 벽에 붙은 메모장을 한 데 모아서 한 장씩 찬찬히 읽어보았다. 일기를 쓴 첫날은 버스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면서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었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밝은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보게 되어 감사하다는 문장이 적혀 있다. 또, 원하는 책을 생각보다 저렴하게 구입했다는 것에 한껏 신나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친구들이 내가 생각나면 거리낌 없이 바로 연락을 남겨주는 것, 개인 운동을 지도해 주시는 선생님께 수없이 칭찬받은 일, 며칠간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무릎 통증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유산소까지 완벽하게 끝냈다는 사실이 손바닥보다 작은 메모장 하나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지금까지 대략 열 장 정도를 이렇게 적어 본 결과, 하루동안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전부 채우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세 가지가 넘은 날이 훨씬 많았다. 한 가지의 이벤트로 두 가지 감사할 일이 생겨버려 칸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적을 게 많아지다 보니 어느 날은 한 번 매일같이 감사 일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 큰 압박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감사 일기를 적기 시작했던 당시에도 해야 할 일이 상당해서 잠을 줄이는 상황이었던 터라 매일 적어간다는 것이 꽤나 버거웠다. 그래서 지금은 그 메모장에 감사 일기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그 이후로 감사 일기를 매일 쓰는 걸 포기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감사함으로 가득한 하루를 흘러가는 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더해져 오히려 전보다 많이 적고 자주 곱씹어 본다.
이제 감사 일기를 따로 쓰지 않아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일기에 하루동안 겪은 행복했던 일을 적다 보면 자동적으로 이런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도 같이 남기게 된다. 예로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과 나에게 좋은 일이 찾아왔다는 사실, 그 뒤에는 ‘감사하다’라는 말이 꼭 한 줄씩 덧붙여져 있다. 언젠가부터 내 일기장이 감사 일기장이 된 것이다. 감사 일기 메모장을 매일 쓰겠다는 다짐이 나에게 여러 번 압박으로 다가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꾸준히 기록해 나가고 있다.
어제는 친구를 만날 일이 있었다. 친구는 소소하지만 감사한 일 가득했던 하루를 신나서 이야기하는 내가 작은 행복들에 감사함을 느낀다는 사실에 신기하고 재미있어했다. 일기에 적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일종의 기록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대화로 감사함을 풀면 그것이 상대의 기억뿐 아니라 내 기억에도 오래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이야기란 특별한 기록의 한 가지 종류가 아닐까 싶다.
매일 감사 일기를 쓰면서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쌓인 메모장을 들여다보면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있어서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주된 요인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우연한 행복에 가장 감사해하는 것 같다. 길을 걸어가다 예쁜 카페를 발견한 날, 예상밖으로 몸 컨디션이 좋아 운동이 순탄했던 날, 생각이 멈추지 않고 물 흐르듯 글감들이 떠오른 날, 날씨가 좋아서 예쁜 노을과 달을 볼 수 있는 날 등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행복에 감사해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오늘도 쌓여가는 기록들로 또 한 번 나를 알아간다.
저의 '일상 질문 에세이'를 읽고 나서 오늘의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하루에 하나씩 공책에 적어보는 습관을 들여보시길 권합니다. 가장 추천드리고 싶은 방법은 나만의 생각노트를 한 권을 만들어서 하루를 시작하기에 앞서 노트 페이지 상단에 그날의 날짜와 질문 하나를 나란히 적어두세요. 그러고 나서 하루를 보내다가 갑자기 답이 떠오르는 순간 생각이 달아나지 않도록 공책이든 메모장이든 상관없이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세요.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그 기록들을 나만의 생각노트에 옮겨 적으면 끝입니다. 메모장이나 포스트잇에 적어둔다면 그대로 공책에 붙이면 되니 더욱 좋겠네요.
질문을 보고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을 수 있어요. 살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들로 글을 써 나가려고 하기에 저 역시도 답을 생각하고 글을 쓰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거든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아서 고민하는 시간이 드는 게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네요. 시작은 한 줄이라도 괜찮으니 틈날 때마다 질문에 대해 습관처럼 생각하는 하루를 만들어 나가길 바랍니다.
하루가 아닌 일주일, 심지어 한 달이 걸려도 상관없어요. 그저 일상을 보내다가 질문에 대한 생각이 명확해지는 순간, 그 누구도 의식할 필요 없이 자신만의 대답을 자유롭게 공책에 적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생각노트를 통해 자신만의 생각들이 쌓이다 보면 훗날 그 기록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주는 창이 될 거예요. 일상 속에서 자신에 대해 적어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내가 이제는 나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이 온답니다. 그 순간 찾아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마음껏 누려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로 자신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날마다 쌓여가는 기록들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보는 그날까지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