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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ie Oct 03. 2023

뉴욕에서는 나도 시골쥐

도시 항마력이 떨어질 때는 기차 타고 Poughkeepsie

평생을 도시에서 살아왔다.

어릴 때, 시골 외갓집에 가면

우리 사촌들은 나를 "서울 고모 딸"이라고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시골쥐와 도시쥐 동화에서도

나는 도시쥐 편이었다.

"맛있는 것도 많고, 재미난 것도 많고 너무 좋아"

한국에서 나는 도시살이에 최적화된 도시쥐 그 자체였다.


그런데 뉴욕에 왔다.

뉴욕의 도시력(?)은 서울과 비교할 수가 없다.

도로는 좁고, 낡았다.

신호 대신 눈치껏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과

보행자들만큼이나 신호 따위 우습게 생각하는 차들이

범벅이 된다.

귀에 이어폰 꽂고 한들한들 산책 나가겠다는 심정으로

맨해튼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안 된다.

여기는 전쟁이다.


소리는 또 어찌나 시끄러운지,

한국에서 평생 들은 자동차 클락션 소리보다

뉴욕에서의 두 달 들은 게 더 많다.

소방차나 앰뷸런스라도 지나가면

1km 전방부터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지하철은 뭐 더 말할 것도 없는데,

낡은 것도 낡은 것이지만 더럽다. 너무너무 더럽다.


처음으로

도시가 아무리 재밌어도

시골집에서 흙 파고 사는 게 좋다고 떠난

시골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이 도시를 견뎌낼 힘이 없다.


그런데, 차도 없이 사는 가난한 뉴욕 다둥이네 집은 선택지가 많지 않다

기차 타고 제일 멀리 갈 수밖에..

Grand central 역에서 Metro North Railroad 기차를

타고 종점까지 가기로 했다.

종점 Poughkeepsie에 옛날 기차가 지나던 다리를

산책할 수 있게 만든 Walkaway over the Hudson이라는

관광명소도 있다고 아이들을 꼬셨다.

(사실 아이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들뜬 것은 아빠뿐)


매 시각 50분에 Grand central station을 출발하는

주말 Metro North railroad는

20년 전 청량리에서 강촌 가는 기차 비슷한 분위기다


자전거 이거 지고 기차 타는 한 무리의 레저족부터

도대체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모르겠는데 깔깔거리면서 숨 못 쉬는 학생들로,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꽉 들어차 있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아이 목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시끄러웠다.

우리 가족 함께 앉을자리도 찾을 수 없어,

둘셋으로 쪼개 앉았다.

아이들도 이국의 소음에 눌려 약간은 기가 죽은 듯했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하나둘씩 역이 지나면서

공기가 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뱃속까지 짜내서 귀를 때리는 소음을 만들던 학생들도 잠잠해졌다.

도시에서 묻어온 독기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창 밖으로 허드슨 강이 흘렀다

2시간이 지나,

우리는 Poughkeepsie에 도착했다.

고풍스러운 포킵시 역

Poughkeepsie는 한 때는 철도 교통 요지로 활발한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한적한 소도시다.

그 바로 인근의 Beacon이 BTS RM 덕분에 인지도가

올라간데 비해서, Poughkeepsie는 아직 조용하다.

아이들을 꼬셨던 Walkaway over the Hudson도

강촌이나, 청평 어딘가 있을 것 같은 한편으로는

친숙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평이한 아이템이었다.

자꾸 가평 갔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있는데 미국이다.   저 다리 위를 경치를 즐기며 걸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좋았다.

종종 제트스키 아저씨의 굉음을 제외하면,

(이 마저도 너무 청평 같은데 TT)

한적하고 조용한 강가에서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풀냄새

맡으면서 소박하게 싸 온 주먹밥 점심을 나눠 먹는

그 순간이 나는 좋았다.

강가 놀이터에서 개운하게 놀고 돌아오는 큰애와 막내.   전세계 놀이터 투어 상품이라도 만들고 싶다.

도시의 독을 풀어내고

또다시 도시로 향한다

도시의 소음과 인구밀도와 더러움에 또 나가떨어지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어딘가 잠깐 피해있을 곳을 찾을 수 있어서..

돌아오는 기차의 시발점이라 역과 기차 모두 한적하다.

Tip!

Walkaway over the Hudson에 가려면 엘리베이터가 운행하는 날인지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뉴욕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라,

엘리베이터가 운행하지 않았다.

코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두고, 멀리 걸어서 다리까지 진입하느라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했었다.

둘째가 영어로 읽은 문장 중에 제일 슬프다고 했다. 나도 그래...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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