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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ie Oct 18. 2023

아줌마가 뉴스 한복판에 산다는 것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의 여파

나에게 그동안 이른바 국제 뉴스라 하는 것은

일단 사건 사고 뉴스에 당장 내 생계에 영향이 있는

각종 경제 뉴스 지나고,

지접저분한 국내 정치와 스포츠 뉴스까지

다 돌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던 것이었다.  

나라 밖 각종 천재지변과 전쟁 혹은

외국 수반들의 행보에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나의 허덕거리는 일상과 너무 멀리 있었다.


지구 저편의 안타까운 사연에

출근길 지하철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지만,

또 사무실 들어가 하루를 불사르고 있노라면,

아침의 그런 감상 따위 깡그리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참 팍팍하고 매정한 삶이었다.


그런데 뉴욕에서는

국제 뉴스의 한 줄 한 줄이 나의 평범한 일상에 맞닿아 있다.

UN 총회 기간에는 맨해튼 온 동네 도로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폐쇄되기도 하고

중남미 어딘가라고 추측만 한다 뿐이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 나라의

불법이민자들과 클래스메이트가 되기도 한다.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만 40년 꾸준히 살던 개구리에게는

때로는 신선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한 일상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터졌다.

전쟁의 여파가 뉴욕 아줌마의 삶에까지 미칠 거라고

단 1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충격의 강도는 강력했다.


변화는 동네 엄마들 톡방에서 시작되었다.

결국은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아서 여기도

동네 엄마들이 주축이 된 맘톡방이 있다.

엄마들 톡방이 그렇듯,

서로 칭찬해 주고 추천해 주고 정보 공유하는 평화로운 방이었는데,

하마스의 전쟁 범죄에 아이들이

다치는 뉴스에 마음이 아프다는 글 하나가 불을 댕겼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죽을 때는 관심도 없다가

이스라엘 아이들이 죽고 다치니 이제야 마음이 아프냐는

날 선 대답이 튀어나오자 단체 톡방이 순식간에 활활 불탔다.


십수 년 전에 처음 영어 이메일 쓰는 방법을 익힐 때,

대문자로만 문장 쓰거나

느낌표 세 개 이상 쓰는 것은 현피 뜨자는 표현이니

절대로 하지 말라고 배웠는데

분노에 가득 차 대문자로만 꼭꼭 눌러쓴 문장들이 수도 없이 오고 갔다.

문장 하나에 느낌표가 몇 개나 박혔는지 세기도 어렵다.


그저 전쟁에 대한 정치적 의사 표현이 아니라  

누군가는 가족이 팔레스타인에 있고,

또 누군가는 이스라엘 군에 불과 몇 년 전까지 복무를 했다.

탁상공론이 아니다.

그야말로 목숨이 걸린 문제

뉴스에서 접하는 나라밖 소식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문제, 내 가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그날 쉽게 톡방의 불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곤 타임스퀘어 인근에서

각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대규모 집회를 해서 도로가 통제되었다.

그 때문에, 남편도 크게 길을 돌아 평소와 다른 퇴근길을 찾아야 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대형 중화기로 무장한

NYPD들이 도로 곳곳을 가로막고 있어

전쟁터 한 복판에 떨어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막내 어린이집 근처에서는

미국의 적극적 지원을 요구하는 문구와 함께,

하마스에 납치된 이스라엘 민간인들의 사진들이 벽에 붙었다.

그저 애들이랑 잘 놀아주는 젊은 아빤 줄 알았던

어린이집 친구 아빠는 진지하게 이스라엘 자원입대를 고민하고 있다

(이 가족이 이스라엘 출신인지도 이번에 알았다.)


그러던 와중에, 시카고에서는 6살 배기 팔레스타인 아이가

무슬림 혐오 미친놈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괜한 기분 탓인지 동네 놀이터에 히잡 쓴 엄마들이 줄어들었다.

 

뉴욕에 사는 건,  

전 세계를 작게 모아 놓은 작은 지구에 사는 것 같다.

세계 곳곳의 비극이 내 일처럼 다가온다.


이제 더 이상 그저 신선하거나 흥미롭지 않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빌어

하느님이 지은 세상에 극악무도를 행하는 자들의  

행위가 하루빨리 종식되길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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