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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햇살 Jan 06. 2024

의존형 인간의 고백 -1

이미지출처: 언스플래시


  "작가님은 너무 의존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 해봐야 하는데 너무 의존적이네요."               

  

  4년 전, 책 쓰기에 도전했다. 무려 거금 오백만 원을 넘게 내고. 수중에 돈이 없어 대출까지 받았다. 남편에게는 비밀로 했다. 난 그때 왜 그리 무모했던가. 왜 그리 과감한 결정을 했던 거니. 글을 써본 경험은 일기나 대학 때 과제로 쓴 리포트가 전부였는데. 무엇이 나를 그토록 강렬하게 이끌었던 것인지 그때 무모하고 충동적이었던 마음을 좀 들여다보고 싶다.




  첫째를 낳고 육아 우울증으로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대학 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통화를 하다 언니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언니도 나처럼 첫 아이를 낳고 육아우울증을 겪었는데 그러던 중 글쓰기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글을 쓰며 우울한 마음을 이겨내고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간 단단히 벽처럼 쌓아온 선입견이라고나 해야 할까? 어떤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책이란 것은 자고로 유명하거나 뛰어난 업적을 남긴 뛰어난 사람들이 쓰는 거 아닌가? 책... 책이라니? 가까운 사람의 출간 소식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가능한 거라면 ‘한번 도전을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과 ‘언니는 정말 좋겠다. 이제 유명한 사람이 돼서 부자가 되는 건가? 부럽다 정말...’ 하는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동시에 날아와 꽂혔다. 하지만 이내 글을 써볼까 하고 떠오른 생각은 자라가 등껍데기에 머리 감추듯 이내 쏙 들어갔다.

  

 ‘에유- 내가 글이라니 무슨- 그게 가능하겠어? 그래, 나는 아니지만 언니라면 가능할 법도 했겠다. 대학시절 그 언니가 좀 남달랐어?’


  대학시절에 아주 열심히 공부하던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배언니는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에 임용준비를 했다. 가방에만 책을 담고 다니는 것뿐 아니라 바퀴가 달린 큰 캐리어에 전공 책들을 가득 담아 그 가방을 끌고 다니며 공부를 하는 거였다. 보여지는 액션, 그 행동 자체만으로도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전해졌는데 언니는 진짜 최선을 다했던 거다. 그 결과 졸업과 동시에 임용고시에 합격하는 쾌거를 누렸다. 나도 언니의 모습을 본받아 1년 뒤 임용을 합격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임용보다는 조금 다른 곳에 꿈이 있던 난 그 꿈을 포기하면서 뒤늦은 공부를 시작했고 노력은 했지만 행동과는 다르게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외워야 할 분량이 버거웠다. 시험 유형도 잘 파악되질 않았고 서술형에는 무얼 써야 하는지 깜깜하기만 했다. 졸업과 동시에 합격은커녕 재수를 해야 했다. 친구 손에 이끌려 노량진에 가서 직강을 들었지만 두 번째 시험도 불합격이었다.

  그렇게 몇십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기억 속 멋지게 남아있는 선배언니. 오랜만에 닿은 언니의 책 출간 소식은 그 언니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고 이내 수긍했다. 출구가 없는 어떤 어두운 골목 같은 육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했던 나에게 언니의 출간 소식은 한줄기 빛과 같았다. 책을 쓰면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자존감도 높아지지 않을까? 육아우울증에서 나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책을 쓸 수 있었는지.      


  “언니, 책은 어떻게 써요?”

  “응, 배우면 다 할 수 있어.”

  “배워요? 어디서요?”

  “응, 배우는 곳이 있어.”

  “정말요? 알려줄 수 있어요 언니?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럼, 너도 배우면 할 수 있을 거야.”    

 

  언니는 어떤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글쓰기 코칭 선생님이라고 했다. 다음날 코칭 선생님과 전화연결이 되었다. 문자가 먼저 도착했고 통화 약속을 잡았다. 드디어 통화 연결이 되었다. 글은 어떻게 쓰는지, 한 번도 어떤 책을 위한 글을 써본 적이 없는데 과연 나 같은 사람도 이제 정말 가능한 것인지 그 외에도 다양한 질문을 했다. 그분은 배우면 무조건 쓸 수 있다는 확신에 가득 찬 말을 해주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통화하는 동안 그 코치는 나를 작가님이라 불렀다. '작가? 나쁘지 않은데?' 난 이미 작가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명 서점 가판대에 오른 내 책을 상상해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분은 비용을 제시하고 생각을 해보고 결정하라고 했지만 통화가 끝나기도 전에 그 상상을 꼭 이루고 싶었다. 내 열정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저 할게요! 할게요!”

  

 생각보다 비용이 컸다. 아주 약간 망설였지만 '그래 이 정도 돈을 내는 건데 당연히 되겠지. 어떻게든 도와주겠지' 생각했다. 어두운 길목에서 비로소 초록색 출구표시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것만, 글쓰기만 하면 곧 비상구를 찾아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글쓰기'라는 단어는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육아우울증 뿐만 아니라 이걸 하고 나면 별것 아닌 것 같은 내 인생도 굉장히 빛나게 될 것만 같았다. 왠지 모르지만 지금과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환상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책은 어떻게 쓰는 거지? 모르겠다. 배우면 된다니까' 통화를 끊자 잠시 꿈을 꾼 듯했다.

      

  그때, 난 그 사람의 확신에 가득 찬 말을 믿는 게 아니라 내 믿음을 믿었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돈만 내면 '작가'라는 자리로 나를 데려가 주길 바라는 황홀한 기대를 품었다.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인 채로 무기력하고 우울한 상황에만 벗어나고 싶은 열정에 사로잡힌 나 자신을 환상 속에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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