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헤어지자는 건가 싶었어)
우리 자랑스러운 교수 남자 친구를 타지로 떠나보낸 뒤, 솔직히 눈물로 밤을 지새우진 않았지만 마치 처음 독립한 때처럼 늘 보고 싶었다. KTX를 타면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가 너무 바빴기 때문에 우리는 몇 달 뒤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정말 그렇게 바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때까지도 나는 헤어지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늘 함께 있었기 때문에 헤어지는 선택지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내 남자친구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 보였다. 그리고 야속하게도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렇게 몇 달씩 떨어져 있던 건 처음이기에 나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를 말하고 싶었고, 내 남자친구는 자기가 이룬 성과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학생도 있어. 수업 들어가서 질문받았는데 첫 질문으로 교수님 영재라서 조기졸업했냐고 물어봤어. 세미나 했는데 교수님이 완벽하다고 하셔서 진짜 기분이 좋았어"
"맞아 우리 오빠는 거의 미성년자 같지"
"아 근데 나 앞으로도 한동안 못 와. 뉴욕대학교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가게 됐는데 1년짜리야"
"응? 확정 난 거야?"
"웅 신청했는데 진짜 힘들게 뽑혔어 나 멋지지?"
이 중요한 걸 또!! 나와 상의도 없이 결정해? 이건 쌍욕을 해도 합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앉아있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가성비를 좋아하는 내 똑똑한 남자 친구가 발견한 최고의 카페, 바로 맥도널드였다. 그리고 내 앞에 놓여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그것은 천 원이라는 놀라운 가성비를 자랑했고 그 망할 놈의 아이스는 몇백 원이 더 비쌌기 때문에 우리는 여름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었다.
갑자기 내 처지가 안타까우면서 나를 버리고 뉴욕으로 가겠다는 이 남자가 지금 웃고 있네? 저게 나를 비웃는 건가? 내 고운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근데 그렇게 길게 가는데 어떻게 나한테 상의도 없이 결정할 수 있어?"
"말할 수가 없었어. 강의 준비하고 세미 나하고 논문 쓰고 실험하느라 얼마나 바쁜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아니! 화장실은 갈 거 아냐? 내가 똥보다 못한 존재야?"
그렇게 오랜만의 데이트는 싸우는 것으로 끝났다. 점심 먹고 만나서 저녁 먹기 전에 헤어졌기 때문에 세 시간도 만나지 않았던 것 같다. 맥도널드에서 커피 한잔도 다 마시지 않았으니까.
내가 화해하려고 말을 걸었을 때, 남자친구는 간다는 말도 없이 KTX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집에 도착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제야 아 이거 헤어지고 싶은 건가? 그제야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