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가고 있는 중입니다만
'달리기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마라톤, 저 뛰어도 될까요? 라는 책에서 저자가 한 말이다.
러닝에 관한 공부를 하다가 찾아낸 책인데 저자가 정형외과 의사이고 마라톤 풀코스를 100회나 완주한 사람이라니 어느 정도는 달리기에 대해서 믿을 만한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달리기가 유행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다.
나는 이것저것 시작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뭐가 있을까?
수영도 있고 배드민턴도 있고 영어나 중국어 공부도 그렇다.
식당을 하면서 요리책도 많이 샀지만, 제대로 만들어낸 것은 많지 않다.
시작은 찬란했지만 그 끝은 초라하고 부끄러웠다.
달리기도 그럴 수가 있기에 이렇게 사방에 떠드는 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마라톤까지는 굳이 욕심을 내지 않더라도,
두 달 반에 걸친 내 달리기가 내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살이 빠져 몸매가 날씬해지고 있고 찐빵 같던 얼굴에 바람이 빠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물가고 있는 삶에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 명백하여 기쁘다.
아무튼 달리기는 무턱대고 달리는 것이 아니다.
말장난 같지만 내가 생각하는 아무튼 달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것과 다르다.
아무튼 달린다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달리는 것을 말한다.
러닝에 대한 환경을 따지고 달릴 수 없는 핑계를 먼저 대기 시작하면 나는 달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아무튼 달리기는 생각하고 달리는 것이다.
목표를 생각하고 달리는 이유를 생각하고 러닝에 대한 공부를 하고 달리는 것이다.
달리면서 나를 돌아보고 한물가고 있는 중년의 인생을 사유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달리면 유행에 편승하여 육체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
달리기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하며 처음으로 한 일은 내 발에 맞고 내 발을 보호해 주는 러닝화를 산 것이다.
하루에 적어도 5킬로 이상을 달리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아무 운동화나 신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왼발에 족저근막염 증상이 있기에 바닥에 쿠션이 없는 일상의 운동화는 신을 수가 없었다.
내 몸과 발에 맞는 러닝화를 사기 위해 사전 조사를 열심히 하고 AI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아식스 브랜드로 결정하고 강남의 오프라인 매장까지 시간을 내어 갔지만, 내 발에 맞는 사이즈는 이미 품절이었다(러닝이 유행은 유행이었다).
러너와 전문가들이 추천한 젤카야노건 젤님버스건 그림의 떡이었다.
아식스 러닝화가 좋은 것은 동양인의 발 체형에 맞추어 발볼의 사이즈를 세밀화했다는 것이다.
발볼이 넓은 내게 맞는 러닝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 팔리고 없다니.
나이키 러닝화는 동양인의 발 체형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발볼이 넓은 러닝화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미즈노 네오젠 280 사이즈를 샀다.
비싸다.
그러나 맘에 들었다.
다행히도 이 신발을 신고 두 달 반동안 300킬로를 달렸다.
이 러닝화가 특이한 것은 보통 러닝화와는 달리 양말을 신는 것처럼 신어야 한다는 거다.
따라서 신고 벗을 때가 불편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러닝화를 까다롭게 고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러닝의 초심자라도 러닝화는 자신의 발에 맞는 좋은 것을 고를 일이다.
*
어제는 12킬로를 달렸다.
아침 8시, 기온 0도.
차갑다.
두꺼운 장갑을 꼈지만 달리는데 손이 저리다.
머리도 띵하다.
목표는 8킬로였지만, 마지막에 욕심을 내어 4킬로를 더 달렸다.
걷는 이보다 느린 속도이니 달린다고 말하기도 창피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슬로우 조깅이 속보보다 힘들고 칼로리 소모가 크다는 것이다.
메타세쿼이아숲길은 그 파랐던 잎이 바래어 떨어져 이불처럼 길 위를 덮었다.
신발의 쿠션에 더해 더욱 폭신거린다.
그 길을 늦가을이라고 우기며 아무튼 달렸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 나는 또 밖으로 나가 달릴 것이다.
오늘은 7킬로 정도만 얌전하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