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아부와 존중 사이
왜 돈이 많은 사람이 검소하고 겸손하기까지 하면 멋져 보이는 걸까요?
술집(점심에는 식사 메뉴 중심 + 저녁에는 술과 요리 중심)에서 밥집으로 식당의 정체성을 전환, 확립한 후에 명확하게 드러난 변화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허세 가득한 진상 꼰대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역시 술이란, 과하면 허세를 부르는 몹쓸 놈의 음료임에 틀림없습니다.
개업 초기부터 가게를 찾은 손님이 있었지요. 그는 자수성가한(본인이 그렇다고 하더이다) 사업가로 인근에 커다란 빌딩과 사업체를 갖고 있는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때론 직원들을 데리고 오거나 때론 지인과 함께 저희 가게를 찾아주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게를 찾아주는 고마운 고객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발길을 끊었습니다. 함께 오던 직원들은 그들의 보스가 저희 가게를 찾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하였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본인'에게 물어보라 하였지요.
저는 왜 그가 가게엘 찾아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명백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저와 초능력자와 직원들에게 친절을 가장한 갑질과 꼰대 짓을 하였습니다.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잠깐 나오라, 술 한 잔 받으라 하는 행동을 처음에는 고생하는 식당 주인을 격려하는 것이라 여기고는 고마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상함(?)은 제가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표현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술 더 떠서 손님이 뜸한 시간에는 큰 소리로 자신의 부와 힘을 과시하려 애썼습니다. '한 달에 의료보험료로 수백만 원을 낸다', '대한축구협회장에 출마하여 한 표차로 아쉽게 탈락했다' 따위의 TMI로 자신의 부와 힘을 자랑하였습니다. 식당 주인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도 말이지요.
이 사람은 이다지도 골목대장이 되고 싶은 걸까? 몇 번이나 그의 행동을 참다가 결국 폭탄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 폭탄에 본인이 제일 큰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말입니다. 쪽팔려하는 그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손님과 식당 주인 사이에 갑과 을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나 ‘갑과 을의 존재는 없다’고 단언하는 식당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쉽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듭니다.
저만의 착각일까요? 오직 프로의식으로 무장하여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난 손님과 주인 간의 아름다운 관계에 입각하여 장사를 하여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제가 어설픈 초보이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라는 사람부터가 한참 모자란 사람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식당도 접객 방식에 대해서는 확실한 노선을 견지해야 하는데 저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 죽도 밥도 될 수가 없는데 말입니다. 손님보다 더 노련하고 여유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식당 주인의 탓입니다.
어쨌건 우리 가게에 호감을 갖고 있기에 또 찾아준 손님을 저는 제 발로 차버렸습니다. 고객을 존중하려 애썼지만 아부까지 할 수는 없었습니다. 상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저를 책망하신다면 타고난 성품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책할 수밖에요. 물론 잘잘못을 가리기 전에 저는 저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 불편한 고객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만 접어야 하겠습니다. 갑자기 그런 일을 들추어내어 마음속을 어지럽히기가 싫어지네요. 아무튼 아직 멀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