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엄마, 그리고 애착 이론
안유성 셰프는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던 일식 요리사다.
'안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20대인 내 눈에 나이가 지긋한 어른 그 자체로 보인다.
그런 그가 방송 후 SNS에 짧은 글과 사진 몇 장을 올렸다.
명장이라고 불리는 다 큰 어른이 새벽에 홀로 나와 엄마 사진을 들여다봤을 모습을 상상했다.
그렇다. 안유성 셰프도 누군가의 어린 아들이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들 모두 누군가의 어린 아들, 딸이었던 때가 있었다.
겉모습만 달라졌을 뿐 내 안에는 어린 시절의 내가 살고 있다.
그래서 '엄마'라는 단어는 우리 모두의 '눈물 치트키'가 되곤 한다.
외동딸인 나는 특히 엄마와 어릴 때부터 단짝친구처럼 지냈다.
어릴 때 엄마와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같이 즐거운 일을 찾아다녔던 기억뿐이다.
남대문시장을 구경한 뒤 쪼그려 앉아 먹는 국수의 맛, 서점에서 직접 책을 고르는 재미, 학교 빠지고 소풍 갈 때의 기분,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 누군가는 쓸데없다고 할지 몰라도 우리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는 작은 정성들.
나는 엄마로부터 삶에서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네 살 때부터 아꼈던 '곰순이'라는 이름의 곰인형이 있다.
엄마는 손바느질로 곰순이 옷을 직접 만들어주곤 했다.
그럴 때 어린 나는 꼼짝 않고 엄마가 바느질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엄마 옆에 기대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빨리 입혀보고 싶다."라고 말할 때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 노인이 된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엄마 옆에서 곰순이 옷이 완성되길 기다리던 그 순간이라고 말하게 될 것 같다.
요즘 우리 엄마는 내가 데이트를 나갈 때 예쁜 옷을 골라주고 머리를 매만져준다.
나의 연애 고민을 언제나 진지하게 들어주고, 나와 남자친구의 기념일에 예쁜 케이크를 선물한다.
'곰순이 옷'에서 '케이크'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 안에는 똑같은 것이 담겨있다는 걸 안다.
다만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 것이 아쉬울 뿐이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걸 깨닫는 때는 왜 늘 한 박자 늦은 때일까.
하루 끝에 엄마가 있는 집에 돌아올 수 있는 날들은 얼마나 남았을까.
"네 짐 빠지면 우리 집은 진짜 텅텅 비겠다."
엄마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할 때 난 조용히 목 뒤로 눈물을 삼키기도 한다.
엄마는 앞으로 찾아올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엄마의 대비'는 '곰순이 옷'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을.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형성하는 정서적 유대(애착)가 생애 전반에 걸쳐 대인 관계, 정서 조절, 성격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는 심리학 이론이다. 애착은 유아와 부모 사이의 강하고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를 말하는데, 이러한 유대는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하여 건강한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애착이론과 관련된 실험 중 '낯선 상황 실험(Strange Situation Experiment)'이 있다. 이 실험에서는 아이와 양육자가 함께 있다가 양육자가 자리를 떠났을 때 아이의 반응을 관찰했는데 애착을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1. 안정 애착(Secure Attachment): 양육자에게 언제든 기댈 수 있다는 믿음을 품게 된 상태로, 든든한 안전기지가 생겼다고 표현할 수 있다. 안정 애착이 형성된 경우 아이에게 세상은 더 이상 낯설고 두렵기만 한 공간이 아니라 편안하고 안전한 놀이터가 된다.
2. 불안-회피 애착(Avoidant Attachment): 양육자가 아이의 감정적 요구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면 아이는 양육자에게 관심을 덜 보이며, 떠나거나 돌아올 때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3. 불안-양가 애착(Ambivalent Attachment): 양육자가 일관성 없이 양육할 경우 아이는 양육자가 떠날 때 매우 불안해하며, 돌아오면 분노의 감정과 의존적인 행동을 동시에 보이게 된다.
4. 혼란형 애착(Disorganized Attachment): 학대나 방임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양육할 경우 아이는 양육자에게 접근하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혼란스러운 행동을 보인다.
애착 유형은 유아기에만 머무리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된 후의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안정 애착을 형성한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 친밀감과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 이론을 접하자마자 난 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난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사람. 나에겐 엄마가 그렇다.
내가 노인이 되어도 엄마는 언제나 나의 안전기지일 것이다.
노인이 되어도 엄마를 생각하면 한없이 어린아이가 되고 말 것 같다.
요즘은 엄마가 돌아가신 외할머니 이야기만 하면 울보가 되는 이유를, 좀처럼 울지 않는 아빠가 친할머니 입관식에서 눈물을 보인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면 더 알게 될까.
아직은 엄마 없는 삶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엄마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날 것임을 안다.
그래서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의 엄마와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것.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엄마와 딸이 꼭 함께 써야 하는 이모티콘을 선물하며 “귀엽다”고 즐거워하는 것.
따뜻한 저녁을 같이 먹고, 예쁜 것을 구경하고, 농담하며 웃고, 좋은 영화를 함께 보는 것.
내일도 딱 오늘 같기를 바라는 것.
내일도 딱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