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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붕어 Nov 23. 2024

서울대 대학원생의 특징

추구미와 도달가능미


초등학교 교실을 떠나 대학원 생활을 한 지도 벌써 한 학기가 다 되어간다.

대학원 생활을 선물상자라고 한다면 나의 첫 학기는 상자는 열지도 못하고 포장만 구경하다 흘러간 듯하다.

원래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를 열기 전이 가장 설레고 즐겁지 않은가.

난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그저 모든 것이 새롭고 행복한 시간 속에 살고 있다.

열일곱도 아니고 스물일곱 살에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설레는 일이니까.


한 학기를 지내며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서울대 대학원에는 (겉으로 보기에) 나와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정말 많다.


먼저 나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난 책을 읽고 필사하는 걸 좋아하지만 책을 사모으는 걸 더 좋아하며 끝까지 읽지 못하는 책도 참 많다.

난 관심이 생기는 건 열심히 하지만 관심 밖의 내용은 최대한 쉽고 빠른 방법(가성비)으로 끝내고 싶다.

난 독립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직도 때때로 <짱구는 못 말려>를 보며 리락쿠마 띠부씰을 모은다.

난 정서 조절에 관심이 많지만 나 스스로의 정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남자친구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난 무언가를 판단할 때 꼼꼼히 따져 묻는 걸 잘한다고 자부하지만 정말 이야기를 해야 할 순간엔 입을 다물기도 한다.

난 영어 논문도 책 읽듯 술술 읽고 싶지만 chat GPT를 불러내는 경우가 많다.

난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재미있다고 느껴질 때도 아주 가끔 있지만 학식 메뉴에 더 집중이 잘 된다.

난 상대방의 계산적인 모습이 싫다고 말하지만 나 스스로 계산적인 생각을 할 때도 많다.


이 모든 모습이 나다.

내가 원하는 것과 별개로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고 추구하고자 노력해도 그게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엔 정반대의 것을 동시에 좋아하기도 한다.

난 나의 이런 모든 모습을 인정하고 살고 싶다.


비슷한 맥락에서 요즘 '추구미'와 '도달가능미'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추구미: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
도달가능미: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이미지. 추구미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를 의미함.
추구미와 도달가능미

내가 추구하는 것과 실제 모습이 다른 경우도 많다는 걸 알기에 상대방과 이 점을 열어놓고 대화하고 싶다. 

그래서 난 나의 어떤 부분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대화 상대가 좋다.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나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기 어렵다.

배운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아 힘들었다는 내용의 자조적 농담을 했는데 주변에서 예상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아 민망해졌던 경험이 몇 번 있었다.

그 뒤로는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대 사람들은 매우 진지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닌 사람도 있지만 겉에서 보기에 굉장히 빈틈이 없어 보인다.

추구미에 도달한 사람들인 것 같다.

어떤 것에 대해 어렵다거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고 삶에 대해 열정적인 자세를 늘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패에 대한 경험이 별로 없어서인지 현학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경우도 꽤 많다.

또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런 성향으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배울 점을 얻는 순간도 참 많다.

다만 나와는 다르게 느껴져서 인간적으로 친밀해지긴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서울대생이 작성한 서울대생의 특징(출처: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완벽주의(perfectionism)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의 결점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타인에게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자기 은폐(self-concealment)로 나타나는데, 자기 은폐란 능동적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정보를 감추는 것을 의미한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이상적인 자아에 대한 기대와 자기 비난적인 특성은 수치심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엔 스스로에 대해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는 건 나도 대학원 생활에 적응을 하면서 어느 정도 나의 모습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하고 싶은 말을 그냥 삼켜버리는 나를 보면서 

나도 이 집단에서는 완벽주의를 표방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 고민한다.




얼마 전 교수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평소에 진심으로 궁금했던 걸 여쭤봤다.


"교수님, 저는 저만 빼고 다 알고 있는 건가 싶은 게 제일 궁금해요. 동기들은 수업 내용이 흥미로웠다는 이야기를 주로 하는데 전 정확히 그게 뭔지 이해를 못 하겠거든요. 지금은 모른다고 말하지만 졸업할 때쯤 되면 알지도 못하면서 모른다는 말도 못 하게 될까 봐 걱정돼요."


"다들 똑같이 몰라요. 그냥 아는 척하는 거예요. 나도 잘 모르는 거 가르칠 때 많아요. 모른다고 말하는 게 용기 있는 거예요. 그게 더 어렵잖아요."


자조적 농담은 하지 못하는 대학원생 자아가 새로 생긴 것 같지만

적어도 모를 때 모른다는 말은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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