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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붕어 Nov 02. 2024

대학원 가는 거 쓸데없을 텐데

심리 공부의 쓸 데


“대학원 가는 거 하나 쓸데없을 텐데. 어차피 계속 선생님 할 거. 시간 쓰지 돈 쓰지. 차라리 재테크 공부를 하지 그래? “


내가 처음 대학원에 합격했다고 알렸을 때 이런 반응을 자주 마주했다.

교사가 일반대학원에 가는 건 정말 쓸 데가 없나?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의 선택을 예상을 통해 한다.

직접 경험해 보고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인생에서 마주하는 덩치 큰 선택들(진학, 직업, 결혼)도 마찬가지다.

'이 직업이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예상한다.

(만약 선택 이후의 삶을 직접 경험해 보고 선택할 수 있다면 결혼하는 부부는 가뭄에 콩 나듯 하지 않을까)

그러니 난 아이들이 좋아서라기보다 나라는 사람이 아이들을 '좋아할 것 같아서' 교대에 진학한 것이다. 


결과가 예상과 달라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예상으로 한 선택이지만 난 운이 좋았던 거다.

교사로서 만나는 아이들이 참 좋았다. 

어린이와 대화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무해함이 있다.

일을 하면서도 ‘난 어른들 속에 섞이기보다 아이들 속에 숨을 수 있는 직업을 잘 선택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꽤 묵직해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을 가볍게 즐길 수만은 없었다.

난 모르는 게 많은데 '무엇이든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이 버거운 때도 많았다.

이 역할만 하다 보면 나 스스로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 버릴까 걱정도 됐다.

배움에 대한 부족함과 서울대학교라는 기회비용으로 인한 아쉬움을 채우기에 대학원은 최적의 선택지였다.


이번 주 세미나 수업에서 심리학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에 나오는 뻔한 이야기들 말고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정말 인간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의 의미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어떤 문제를 풀어가 보는 기회가질 있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책임 전가만큼 쉬운 일이 없다.

그리고 책임 전가는 누군가가 어떤 것에 대해 확신할 때 발생한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나?' '그런 나는 상대방에 대해 작은 것이라도 확신할 수 있나?'

심리학은 나의 내면에 있던 모든 확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인 듯하다. 




기능적 고착(Functional fixedness)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한 대상이나 물건에 대하여 기존에 사용해 오던 방식으로만 사용하도록 한정시키는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을 의미한다.

양초, 상자 속에 든 압정, 성냥으로 벽에 양초를 고정하라는 과제를 주면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아래 그림과 같이 상자를 활용한 방법이 있지만 사람들은 상자를 압정을 담는 용도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이 방법을 잘 떠올리지 못한다고 한다.

기능적 고착은 사람들의 인지 편향, 고정적 사고의 예시로 제시된다. 

익숙한 것들은 정말 힘이 세다.

사물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안의 확신은 나의 신념으로 나타난다.


책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됐을까?>의 작가, 심리학자 네시베 카흐라만은 말한다.

'신념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는 성장과 성숙을 거듭하고 삶의 변화를 마주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이 오래된 나침반을 한 번 점검해 보고 필요하다면 새롭게 수리해 볼 때가 됐다.'


나에게 있어 대학원의 쓸 데는 나침반에 대한 점검이다.

쓸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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