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그런 거니까
어린 시절 친구였던 해성과 노라는 이민, 시간, 선택 속에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한 두 사람은 '지금 이 삶'과 '다른 삶이었을 수도 있는 가능성' 사이에 선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그 두 사람의 이야기다.
해성은 남편과 함께하고 있는 노라에게 말한다.
"나에게 넌 떠나는 사람이고 아서에게 넌 곁에 있는 사람이지.
이번 생에는 그런 거야."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들이 만들어낸 지금이 우리의 전부다.
내가 지금 하는 선택이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
대학원에서 만난 내 친구는 나에게 얼른 40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커다란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40대 같아서.
20-30대가 가장 힘든 것 같다고 이 구간을 건너뛰고 싶다고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걸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 시기로 가고 싶다고.
이해가 됐다.
나도 항상 '이게 맞는 선택일까' 고민하며 사니까.
그 선택이 과연 최선인지, 더 나은 길이 있었던 건 아닌지.
GPT는 선택의 결과는 선택한 이후에 만들어가는 거라고 한다.
대화를 하며 문득 나는 '자기 합리화'를 참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결과가 예상과 다르더라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GPT는 그건 '회복하는 힘'이라며 예쁘게 불러주었다.
맞는 선택이 아니라 맞게 만드는 삶.
실패한 선택도 의미를 만들어주면 결국 나의 길이 된다.
지금은 어차피 선택을 한 후고, 지금의 내가 나의 전부니까.
생각해 보면 '여우와 신포도'에 나오는 여우는 비겁한 게 아니라 지혜로운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영원회귀설을 믿는다.
영원회귀설은 지금 이 삶이 그대로 무한히 반복된다고 보는 철학적 사유다.
내가 한 모든 선택들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나는 조금 더 진심으로 살아야겠다고, 동시에 지금까지의 나를 더 인정해주고 싶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나 보다.
매 순간을 다시 살아도 괜찮은 순간으로.
그건 지금 내가 이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틀릴 수도 있는 선택들, 후회할 수 있는 순간들마저 이 생은 그런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선택(choice)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고대 라틴어 causa(이유, 원인)에서 비롯된 causare(원인을 만들다)와닿아 있다고 한다.
선택이란 단지 길을 고르는 게 아니라 나만의 원인, 이유를 만들어가는 일 같다.
그러니 지금 선택들이 완벽하지 않아도
나는 매 순간을 다시 살아도 괜찮을 만큼 나의 의미로 채워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꽤 지혜롭고 행복한 여우처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