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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Apr 14. 2024

글을 쓴다는 것

오늘도 책상 앞에 앉은 채로 시간이 갔다. 나에게 글쓰기의 가장 어려운 단계는 무엇을 쓸지 소재를 찾는 것이다. 이야깃감이 정해져야 초안을 쓰고 퇴고도 할 텐데 항상 가장 첫 단계에서 막혀 버린다. 며칠을 고민하다 마침내 마감일이 되었다. 하릴없이 노트북만 바라보다가 결국엔 슬쩍 옆으로 밀어 놓았다. 빈 페이지 속, 커서가 깜빡인다. 어쩐지 얄미운 생각이 든다. 은근히 나를 채근하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하는 것 같달까? 오늘도 서로 눈싸움을 하지만 지는 쪽은 언제나 내가 된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내내 쉬지 않고 깜빡거리면서도 커서는 절대 지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푸념이나 늘어놓기로 했다. 일찌감치 글을 쓰려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닌데 번번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되니 약이 오른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끙끙거리면서도 써야 할 글은 결국 써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지인 L은 입버릇처럼 ‘글은 마감이 쓰는 것이니 오늘이 마감일이 아니라면 그냥 놀아라.’ 하며 놀아버릴 것을 독려하곤 한다. 크게 웃으며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지만, 불안한 마음에 정말 놀아버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감에 닥쳐서야 글을 쓰고 있으니 어쩌면 그의 말이 영 틀린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쓰게 되는 건지, 무엇이든 쓰다 보면 끝을 맺게 되는 건지, 혹은 또 다른 메커니즘이 있는 것인지 속 시원히 알게 되는 날이 있기는 하려는지. 그러다 무엇이든 글을 한 편 쓰고 나면 내심 신통하기도 하다. 명작이 아닐지라도 ‘이걸 내가 썼다고?’ 놀라게 된다. 종이 위에 쓰인 이야기며 문장이 내 안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글자를 통해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을 목도 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드디어 벚꽃이 만개했다. 반나절 겨우 시간을 내어 꽃그늘 아래를 걸었다. 지난겨울은 길고도 길었다. 반면 기다리던 봄의 전령이 머무는 날은 짧고도 짧다. 그럼에도 놀 일을 마다하고, 비록 단 한 줄의 글조차 쓰지 못하면서도 책상을 떠나지 않았던 나의 시간은 분명 의미가 있었겠지. 그 시간이 언젠가는 내게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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