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빵 봉투를 열었다. 소포지 특유의 투박한 재질과 누런빛 종이 색감이 꽤 감성적이다. ‘안에는 별사탕이 들어 있다’는 안내 문구에 배시시 반가운 웃음이 일었다. 조심스레 입구를 뜯어 과자를 덜어내었다. 고소하고 담백한 건빵과 달콤한 별사탕을 오도독 씹으며 지난 안산 여행을 떠올려 본다.
탄도항의 이름은 이미 들어본 적이 있었다. 지난 6월 전곡항에서 서해랑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제부도로 이동하던 때였다. 사방에 펼쳐진 갯벌과 바다를 보며 탄성을 내뱉던 중에 저 아래 작은 섬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곳, 하얀색 풍력발전기와 어우러진 풍경이 멋진 누에섬이다. 탄도항에서 썰물에 맞춰 걸어갈 수 있고 노을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단다. 마침 내가 있던 제부도에서 지척이니 꼭 들러보고 싶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섬이 바로 마주하고 있음에도 제부도는 화성시, 누에섬은 안산시라는 것이다. 단 몇 km의 이동만으로 두 개의 도시를 여행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했는데 마침 수필문학추천작가회 2023 연차 대회 일정에 탄도항이 있었던 것. 어찌나 반갑던지 단박에 참여를 결정하였다.
행사 당일, 오전 9시에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1시간 20여 분 만에 탄도항에 도착했다. 흐린 가을날의 회색빛 하늘은 바다를 닮아 있었다. 습기 머금은 차분한 공기에 온몸의 긴장이 이완되는 순간, 머리칼을 부드럽게 헝클어 버리는 바람은 내게 장난을 걸어오는 듯했다. 즐거운 마음이 주변을 온통 흥미롭게 바꿔 놓는 것, 그것이 여행의 마력이 아닐까. 누에섬으로 가는 1.2km의 바닷길을 따라 걸으며, 늘어선 바위와 날아가는 갈매기 등에 시선을 나누고 도통 거두 지를 못한다. 갯벌에는 수없이 많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무언가 작은 녀석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느라 분주하다. 무얼까 싶어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어찌나 재빠른지 일거에 숨어버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주 작은 게 들이 바글바글. 귀여워 함박웃음을 지으며 불쑥 나온 얘기가 “이게 칠게인가요? 튀겨먹으면 맛있다던데~” 아차, 그 작은 생명이 내 말은 미처 듣지 못하였기를.
온통 하늘과 바다와 곧은길이 있는 곳,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닿게 되는 누에섬은 외곽을 따라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기보다는 천천히 걷고 오래 머물고 싶은 소박하고 따뜻한 풍경을 지닌 섬이다. 섬 위에는 등대 전망대가 있어서 3층은 전망대로, 4층은 등대로 쓰이는데 전망대에 오르면 인근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일행과 같이 움직이다 보니 아름답다는 낙조를 보지 못하고 서둘러 떠나게 되었다.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론 이곳을 다시 찾아야 할 이유를 남겨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여행에서 돌아와 안산시에 관한 안내서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미술관이며 바다향기 수목원, 안산갈대습지 등 둘러볼 곳이 많은 흥미로운 도시이다. 내년엔, 봄이면 지천으로 야생화가 가득하다는 풍도를 방문해 보려 한다. 풍도에서만 볼 수 있다는 풍도 바람꽃과 변산 바람꽃, 복수초 등 이름도 생소한 꽃들의 향연이 궁금해진다.
글을 쓰다 보니 하나씩 집어먹던 건빵 봉투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추억이란 가끔 엉뚱한 소재와 붙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탄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사회자와 가위바위보 게임을 했다. 게임에는 영 재주가 없는 나인데 그날은 웬일인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상품으로 건빵을 획득했다. 이 한 봉의 과자에 여행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고소한 건빵과 달콤한 별사탕을 먹을라치면 앞으로도 탄도항과 누에섬을 떠올리지 않을까.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기억을 더 하였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을 얻은 소중한 하루가 나의 가을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한 번의 여행이 다음을 부르는 곳, 다양한 매력이 가득한 도시 안산에 다시 방문할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