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잊고 고무장갑을 끼지 않았다. ‘아차!’하고 손을 내려다본다. 컵 한두 개 씻는 터라 무심코 설거지를 한 모양이다.
나는 내 손이 참 좋다. 이유야 얼마든지 댈 수 있다. 손의 크기, 손바닥과 손가락의 비율, 심지어 약간 긴 듯한 손톱 모양도 맘에 꼭 든다. 사실은 생김이 어떻더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내 손을 사랑했을 테니까. 그리 예쁘던 손이 변하기 시작했다. 40대 중반을 넘어가자 매끈하던 손마디가 굵어지고 손등의 피부는 얇아지더니 주름이 늘어갔다. 얼굴에 기미가 생기듯 손등에도 얼룩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숫자가 점점 더 많아졌다. 손은 언제나 시선 닿는 곳에 있기에 세월 따라 변하는 과정을 피할 도리 없이 낱낱이 지켜보는 중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한 여자 연예인이 손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녀야, 보이는 것이 직업이니 그럴 테지만, 손을 곱게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쓰지 않거나 햇빛에 노출하지 않는다나. 그 말이 조금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손을 어떻게 쓰고 싶을까. 그는 어떻게 쓰이고 싶을까.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다. 손으로 참 많은 재료를 다루었다. 연필이나 목탄 등은 그나마 사용이 간단한 편이지만 물감이라도 쓸라치면 언제나 손이 더러워졌다. 피부에 묻은 것은 씻으면 지워지기라도 하지, 손톱 밑에 들기라도 하면 잘 빠지지 않아 몇 날 며칠을 두고 봐야 했다. 곱게 그림만 그렸더라면 좀 나았으려나? 커다란 캔버스도 짜고 합판이나 목재 등의 재료를 다루며 별별 하고 싶은 작업은 다 해 보았으니 돌아보면 참 많은 수고를 끼쳤다.
다양한 취미 생활도 해 왔는데 그중 특히 좋아하는 것은 요리와 텃밭 가꾸기. 여러 가지 식재료를 조합해 음식 만드는 일이 참 재미있다. 어디선가 맛있는 걸 먹으면, 돌아와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한 상 차려 먹는 일도 즐겁다. 좀 더 제대로 배워볼까 싶어 요리 강좌를 듣다 보니 어느새 한식, 양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였다. 사실 요리라는 것은 유독 손을 혹사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위생이 중요하기에 손을 수시로 씻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온갖 재료를 썰고 볶고 튀기다 보면 칼에 베이거나 화상을 입는 일도 종종 생긴다.
아, 나는 태양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쏟아지는 햇빛 아래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좋다. 고랑을 만들어 봄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어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수확하여 이웃과 나누는 일까지 모든 과정이 행복하다. 음식 만들 때 사용 할 바질, 딜, 루꼴라 등 각종 허브며 오이, 가지, 아스파라거스 등의 채소를 직접 키우고 텃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상추를 뜯어 식사하는 일은 말할 수 없이 큰 즐거움이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한다’라는 것은 대부분 손이 하는 것이기에 때로는 무거운 것을 들거나 거친 장비를 만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오염되고 씻는 것을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하니 두 손에 참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하다.
언젠가 문득 내 손의 나이 듦을 발견했던 날, 이제는 좀 곱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었다. 그렇다면 고운 손을 만들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덜 하며 산다면 어떨까?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이 출력되었다. 내 손은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고 나의 역사라고. 주름과 거칠어짐은 나이테처럼, 지난 삶의 여정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아무런 역사도 담지 않은 고운 손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많고 앞으로도 그 순간을 즐길 것이다. 모든 것을 고마운 나의 손과 함께하겠지. 그러니 좀 더 소중하게 다뤄줘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래 봐야 설거지할 때 잊지 않고 고무장갑을 끼거나 잠자기 전, 한번은 크림을 발라주는 정도겠지만. 가을이 되자 손의 건조함이 심해지고 있다. 반면 손의 수고로 인해 나의 가을은 다채로운 빛으로 채워져 간다. 앞으로의 시간도 고마운 두 손위에 기록될 것이다. 보습을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다. 이왕이면 예쁜 주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