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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Oct 17. 2024

지금 보다 완벽한 순간은 없다.

마드리드> 부르고스> 따르다호스



10월 5일 아침 5시

숙소를 즐길 여유도 없이 잠들었다가 여느 순례자들처럼 5시에 눈을 떴다.

다시 시작인가?


잠을 깨면서 어제 하루 겪었던 모든 것들이 날아갈 새라 메모로 남겨 두었다.

그런 기억이 어디 날아갈 거란 생각은 안 들지만 순간을 간직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침 6시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8시까지 차마틴 기차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7시에는 숙소를 빠져나가야 한다. 나는 여유 있게 초행길을 가고 싶어서 짐을 챙기고 다시 순례자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트래킹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짚어 들었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가장 빠른 길로 기차역까지 가야 하는 게 중요했다.

잘못해서 길 중간에 정체되면 큰일이니까.


숙소 맞은편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아침서부터 공원산책을 하는 마드리드 시민들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나는 길이 정체되는 느낌을 받아서 바로 근처 지하철역을 검색 후 내려서 이동 경로를 변경해 지하철을 타고 차마틴 역까지 이동했다.



출근 지하철 타기

마드리드는 지하철도 태그리스 카드가 작동하는 것이 너무 다행이라 생각한다.

만약 따로 카드를 구매했어야 했다면 그만큼 또 시간 허비를 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아침 시간이라 더 지하철이 붐볐기 때문에 나 역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다.


어제 탔던 지하철과 오늘 탔던 지하철 종류가 아주 많이 달랐다.

어제의 경우 한국의 지하철처럼 마주 보는 구조였다가 오늘 지하철은 프랑스 지하철처럼 앞을 보고 타는 구조였다.


차마틴 역은 한국의 지하철 1호선처럼 정차하는 역이 많고 기차역과 지하철이 뒤섞여 있어서 도착 전까지 나는 여유롭게 역에 도착하면 바로 게이트로 들어가면 되는 구조인줄 알고는 여유를 부리며 커피와 크루아상을 들고 게이트를 찾아다녔다.



차마틴 역에서 기차 승강장 찾기

차마틴 지하찰역과 기차역은 승강장이 다르게 되어 있는 곳이라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어제 도착해서도 한참을 지하철 출입구를 찾느라 고생했었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산티아고행 부르고스 기차를 찾는 것 자체도 또다시 기차역을 뛰어다니게 만들었다.


여유를 부리며 샀던 뜨거운 커피와 크루아상 그리고 나무지팡이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승강장을 잘못 들어가 역무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길을 돌리기를 반복했다.



까칠한 스페인 사람들이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나를 끌고 올바른 곳에 데려다주었다.

이러니 내가 안 반하고 배겨?


커피가 너무 뜨거워서 게이트 도착 전에 커피를 의자에 두고 움직였다가 겨우 승강장 기차 타는 곳을 발견했다. 마치 커피를 챙겨서 결승점까지 도착하는 미션처럼 나는 다시 커피를 두고 갔던 벤치로 가서 커피를 챙겨서 기차를 탔다. 아침서부터 뜀박질에 벌써 힘을 다 뺀 것 같다.



짐검사

나는 보따리상 마냥 커피와 크루아상 봉지를 들고 백팩과 보조가방 그리고 나무지팡이까지 주렁주렁 짐 검색대에 짐을 내려놓아야 했는데 뒷사람이 한참 기다려야 할 정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승강장을 찾느라 뛰어다니며 땀을 흘렸고, 정신이 없는데 짐을 풀어헤치고 있는 영락없는 홈리스꼴이다.



기차 출발 8:45

기차에 올라타 짐칸에 배낭을 내려놓고 겨우 땀을 식히며 화장실을 다녀온 후 그제야 나는 긴장을 풀고 의자에 앉아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분은 산티아고 안내책자를 읽고 있다. 그녀는 내 가리비 조개 표식을 봤고 나는 그분이 산티아고 책자를 읽고 있는 것을 보고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독일 사람이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휴가차 가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순례길을 걷던 중 잠시 마드리드 휴가를 갔다가 다시 부르고스에서 걸을 거란 이야기를 했다.

이분 역시 순례길을 걸을 계획인데 산티아고 대성당에 가서 관광부터 할 거라나?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을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참 부러웠다. 특히 커피를 좋아했던 이분은 쉬지 않고 커피차가 지나갈 때마다 커피를 주문해 마셨던 기억이 난다.


나는 부르고스 역에서 11시 즈음 내려야 하기 때문에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알람을 맞춰두고 잠깐 눈을 붙였다. 한국이었다면 나는 무조건 창가자리를 선호하지만 유럽을 여행할 때는 꼭 복도자리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화장실 가기에 편하고 왼쪽다리를 편하게 펼 수 있기 때문이다.


지팡이

기차를 탈 때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나의 나무 지팡이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에 치이지 않으며 피해를 주면 안 된다. 나같이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지팡이를 기차에 두고 내릴까 봐 몇 번이나 지팡이를 살피고 계속 체크를 했었던 것 같다.  


예전 해프닝 중에 수비리에서 한 번은 누군가 착각하고 내 지팡이를 가져가려고 하자 근처 소파에서 쉬고 있던 이름 모를 순례자가 그 지팡이는 주인이 있는 거라며 지켜주기까지 했던 애증의 지팡이이다. 지팡이는 나에게 순례길에서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처럼 나의 정신을 땅에 붙잡고 한 발씩 앞으로 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약속

어제 마드리드 출발 전 몽지아와 부르고스에 도착하면 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을 했었다.

여행자들의 약속이 정확하게 약속으로 진행될지는 당일이 돼 봐야 안다.

나는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몽지아에게 소식을 물었다.

우리는 부르고스에서 함께 머물렀던 숙소 앞에서 12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다시 잡았다.


11시 부르고스 역

잠에서 깨어나 내릴 준비를 했다.

부르고스는 중간역에 정차하기 때문에 유럽열차 특성상 도착역 안내를 잘 듣고 스스로 잘 챙겨야 한다.


옆자리 예비 독일 순례자와 ‘브엔 까미노’ 인사를 하고는 기차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재밌었던 것은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중 아는 얼굴이 보였다.

벨기에 순례자 ‘Seiya (세이야)의 프랑스 여자친구 Maud(마우드)'였다.


그녀는 한창 길을 걷고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있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 안녕하세요. 마드리드에서 잠시 휴가를 보내고 왔어요. 그런데 어디 가요?

(여전히 물음표가 떠있는 마우드의 표정을 보며)

마우드: 휴가가 끝나서 산티아고로 바로 갔다가 파리로 올라갈 거예요.

나: 저는 오늘 부르고스에서 다시 걸을 거예요.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쥬를 하며 기차 정체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우리는 짧은 인사를 하고는 각자의 길로 떠났다.



다시 부르고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다시 순례자 모드로 돌아가고 있다.

선선한 바람이 조금씩 불어서 마드리드처럼 한여름 같지 않고 걷기에 딱 좋은 날씨이다.

하지만 스페인의 태양은 아침인데도 여전히 타버릴 것처럼 뜨겁고 구름 한 점 없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었다.


가는 길과 오는 길이 다르니 또다시 물어 갈 수밖에..


 부르고스 버스 1.20유로를 내고 시내 한복판에 보이는 자라매장에 내려서 이제는 익숙해진 Hostel Catedral Burgos숙소로 향했다.


스페인 사람들 표정이 거칠고 불친절해보지만 내 생각에 정확하게 원하는 걸 이야기하면 더 이상 화를 크게 내거나 하는 일은 없다. 말 자체가 경상도 말처럼 쌔다 보니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글쎄 유럽 사람들 특유의 개인주의 깔끔한 성향과 스페인의 정서가 버무려진 게 나는 관계가 깔끔하게 느껴져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여유로운 아침 시간

Hostel Catedral Burgos 숙소 근처에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을 했다.

대부분 아침이라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고 순례자들 중 대부분은 일찍 출발해서 보이지 않거나 하루 더 머물기 위해 남아 있는 순례자들 뿐이다.


아직은 부르고스 전 도시 산후안 데 오르테가에서 걸어서 도착하기에도 이른 시간이다. 그럼에도 벌써 도착해 공립 알베르게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순례자들도 조금씩 보인다.

나는 잠시 벤치에 않아 여유로운 부르고스의 아침을 즐겼다.


내 옆 벤치에는 배낭에 전 세계 국기와 와펜을 가방에 붙이고 버킷햇을 쓴 순례자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그만의 스타일로 길을 즐기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벤치에 앉아만 있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는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웬걸 길 초반에 인사를 나눴던 카를로스 아저씨가 일정이 있어서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여기 부르고스에 있는 것 아닌가? 아마 구간 점프를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알던 친구들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아저씨와 같이 점심을 먹으면 좋겠지만 일정이 있어서 서로 왓츠앱 번호를 교환하고는 쿨하게 인사를 하며 보냈다.


참 인생이란 게 웃긴 게 다시 볼 거라 확신하고 연락처까지 교환했었지만 그 이후 아저씨와 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현재 여기서 결정해야 하는 결정 빼고는 우리들은 모두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몽지아와의 재회는 의미가 깊었다.

모든 인연을 붙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가 처음이 아니라 여러 차례 볼 의지를 낸 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길에서 기적인 것이다.


순례길을 멈춘 몽지아가 나에게 마음을 써주는 것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올라왔다.



부르고스 대성당

부르고스 대성당에 들러 다시 웅장한 모습을 구경하고 무사히 길을 걸을 수 있게 해 달라 아침 기도를 올렸다.

입구에서부터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유명한 유적지이다. 순례자 여권을 보여주면 입장료 할인이 있으나 나는 유명관광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입구 잠시 성당의 웅장함을 즐겼다.


다시 만난 몽지아

우리는 숙소 앞 레스토랑에서 다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한적한 도시분위기에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식당이 열려 있는 곳이 없었다.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유럽 사람들은 무조건 테라스에 앉는다. 앉아서 일광욕을 즐기기 때문에 식당을 고를 때도 야외 자리를 찾아다녀야 했다.

게다가 몽지아는 프랑스인지 않은가?


식사를 하기 위해 그녀의 까다로운 기준을 맞출 만한 장소를 물색해야 했다.

여기는 메뉴가 별로고, 저기는 자리가 협소하다.

성당의 옆면을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감상하는 것도 운치 있어 보인다.


몽지아와 대화를 할 때 장점은 그녀는 4년간의 중국살이를 통해 아시아에 대한 경험과 살면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의 끓임 없이 자극을 주는 프랑스인 다운 질문과 소통 상호작용이 오고 간다는 것이다.

나는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겨우 고른 레스토랑에 앉아 메뉴를 골랐다.


몽지아는 스페인 사람들의 뜨거운 심장과 단순함을 사랑했다.

스스로를 말하기를: 나는 스페인 사람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스페인을 사랑한다고 말이다.


스페인 어린 웨이터가 주문을 받는데 몽지아는 짓궂은 농담을 청년에게 건넸다.

그걸 또 다큐로 받아주는 진지한 스페인 청년이었다.

아마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귀여워 보여 그랬던 것 같긴 하다.


여기서 나는 몽지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몽지아는 3명의 자녀를 둔 대식구이다.

내가 마드리드로 떠나고 그날 밤 자전거 순례자들이

와서 밤새 코를 골아서 잠을 못 잤다고 한다.

그리고 함께 방을 썼던 이스라엘 순례자 역시 오늘 아침에 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점심

스페인음식 대부분이 꼭 메뉴에 고기가 들어가면 야채가 없던가 치즈가 없는 식으로 메뉴가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마땅히 시킬 게 없어서 고기 샌드위치에 야채와 토마토를 추가 그리고 안 마시던 콜라를 시켰다.

몽지아는 레드와인과 신선한 사워도우빵 그리고 올리브 무침을 시켰다.


해가 정수리 위로 떠서 선글라스 없이는 눈을 뜰 수 없다. 내가 메뉴에 없는 음식을 시키자 한참을 스페인어로 웨이터가 상의를 하더니 해주겠다고 한다.

야채와 고기를 따로가 아니라 같이 먹는다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몇 번을 와서 물어보고는 요리사가 돌아갔다.


몽지아: 프랑스에서는 맛있는 샌드위치를 많이 먹었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다 따로 먹어야 해!


나는 이렇게 해가 쨍한 날씨에 다시 걸을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게 길이 멀게 느껴졌다.

몽지아는 오늘 하루 더 쉬는 게 어떻겠냐 물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조금이라도 걸으려고요.라고만 말했다.


부르고스 대성당 앞에 있는 레스토랑 뷰


더 지체하면 너무 많이 늦어질 것이다.

나와 함께 걸었던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하루나 이틀은 앞서 있을 테니까 말이다.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 나만의 룰이지만 사실 나는 벌써 안나와 스티브, 임마뉴엘, 베로니카와 아담이 그리워졌다.


몽지아의 염려는 현명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낮에 걷기 시작하는 것은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멈춰서 쉬는 시간인 반면에 나는 2시가 넘어 다시 길을 걸을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걷기 시작! 14:04

몽지아는 길가에 어린아이 다루듯이 나를 걱정해 주었으나 나는 길을 걸어야 했다.

마치 매트릭스에 뇌에 깊숙이 새겨진 임무처럼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중심가를 벗어나 순례자앱을 켰다.


부르고스 중심가에서 순례길 화살표가 보이는 길로 접어들었다.

순례길 화살표가 나타났다.


몽지아와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인사를 나누고, 완주 후 파리에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누고는 순례길로 길을 떠났다. 아쉽고 정이 든 인연이었으나 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이 만남이 뜻깊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의 목표하는 길 중간에 휴식같이 만난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부엔 까미노!


손을 흔들고는 나는 부르고스를 빠져나가기 위해 한참을 걸었던 것 같다. 아무리 짧은 구간  대략 10KM를 갈 거라고 했지만 어디 쉬운 길이 있었던가?


다시 길을 걷는다.


이곳이 마지막 부르고스 구역이란 걸 알려주는 순례자 동상이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부르고스 외곽에 있는 부르고스 대학교를 지나 강을 지나니 도시를 빠져나오자 조용하고 한적한 고속도로 외곽길이 나타났다. 강이 나타나자 다시 걷는 길이 실감이 났다. 날씨는 달리의 시계가 늘어지듯이 시간도 느리게  천천히 흘러갔다. 그만큼 지루하고, 순례자들이 신을 만난 다고 하는 '마의 구간'에 입성하기 직전이었다.


초반의 적응기간을 지나 이제부터 사막길 한가운데를 관통해야 한다.

베로니카와 에스페란자에게서 점프해서 벌써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나는 '점프'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몽지아와의 아쉬움도 뒤로하고 이 불구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걷다 보니 부르고스에 도착해 몽지아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나눴던 대화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몽지아는 노후에 스페인 시골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고 했었다. 일 년 내내 따뜻하고 햇볕이 가득하고 건조한 날씨는 노년을 살기에 안성맞춤이다.


나 역시 프랑스의 문화와 음식 언어를 사랑하지만, 스페인의 기후는 정말 축복받은 환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시를 빠져나가는데도 한참 걸리고 가끔 표식이 사라질 때도 있어서 구글맵과 카미노앱으로 여러 번 확인을 하며 길을 걸어가야 한다.


걷는 내내 부르고스와 마드리드에서 깊게 들어버린 미련을 털어내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아침시간 걷는 길은 순례자들의 행렬이 마치 단체 관람객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데 오후 2시 이후 홀로 걷는 길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자전거 순례자와 아주 가끔 보이는 늦게 출발한 순례자뿐이다.


외딴 건물에 그라피티를 그리는 예술가의 모습만이 사람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드리드와 부르고스의 북적이는 도시의 소음과 사람들에 둘러 쌓여 있다가 갑자기 정적과 더위에 금방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길가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 집고양이의 표정을 보는 게 걷는 재미였다고 해야 하나?

극단적인 환경에 나는 외로움과 후회감이 밀려왔다. 하루 더 머물며 몽지아와 부르고스에서 놀걸 그랬나 하는 후회 말이다. 하지만 몸은 이미 오키로 이상 걷고 있던 중이었다.


정오의 태양은 타들어가듯이 뜨겁게 머리를 달궜다.

기력 없이 그저 앞으로 걷고 있었다.


허리춤에 묵어둔 빨간색 윈드점퍼를 모자 위에 얹어서 그늘을 만들어 걷기 시작했다.

한낮의 볕은 정말 잘 타지 않는 내 하얀 살 같도 갈색으로 변하게 했다.


큰 챙이 있는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모래먼지만 가득한 길가를 걸으며 더 큰 그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주변이 보이지 않지만 히잡처럼 만들어서 팔과 머리가 불편하지 않게 얼굴에 동여맸다.


딱 앞쪽밖에 보이 않아서 시야가 좁아지니 앞만 보고 걷는 중 이제는 자연림에서 작은 볼일을 보는 것도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길에 익숙해졌다.

따로다호스로 가는 길은 사람이 없으니 수풀 어디로 들어가 볼일을 보는 것도 눈치 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혼잣말로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늦은 시간대 출발한 것을 투덜거리며 걸어가는데 갑자기 옆으로 사람이 나타났다.


부엔 까미노!


몇 시간 만에 부엔 까미노 인사를 건네는 순례자가 나타났다.


나: 지금 걷기 너무 덥고 시간이 늦은 거 같지 않아요?

그때 그 순간 나는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날아왔다.

순례자: "지금처럼 걷기에 완벽한 순간은 없어요." 부엔까미노!


나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머리를 한방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방금 무슨 말을 하고 지나간 거지?

그 순례자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그녀는 정말 빠른 걸음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내가 신기루를 본 건가?


그래 나는 왜 걷고 있었던 거지?

앞으로만 가는 게 다가 아니었다.

지금 걷고 있는 나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순례길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던 것 같다. 인식의 변화와 행동의 각성이 오기까지는 시차가 필요하지만 여기 순례길에는 각자의 길에 맞는 천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여러 고비를 그 천사들 덕분에 넘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걷는 이 순간보다 완벽한 시간은 없다.


어느 정도 길이 익숙해지면서 나는 이 길에서도 불평을 늘어놓고 안락함에 기대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문장은 앞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표식을 자리 잡게 되었다.



오후 다섯 시

부르고스에서 따르다호스는 10KM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다.

나는 황무지 도로길을 지나 작은 마을 Tardajos(따르다호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기부제 알베르게 한 개만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5시에 도착했더니 씨에스타로 아직 식당도 다 닫혀 있고 나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유일하게 열려 있는 기부제 공립 알베르게는 처음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잠을 잘 잘 수 있기를!



Albergue municipal de peregrinos de Tardajos

숙소에 일찍 도착해 여유롭게 쉬고 있는 순례자들이 정원 벤치에 앉아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응접실에서 자원봉사자 호스트를 찾아 체크인 등록과 도장을 받았다.


기부제 알베르게도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돈통에 돈 넣는 걸 확인하는 곳도 있지만 여기는 정말 알아서 기부하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돈을 안 넣으면 이곳 운영이 어려울 것이다. 나는 10유로를 기부함에 넣었다.


기부제로 운영되고 있던 알베르게들 중 따로다호스의 작고 가족 같은 느낌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많이들 그냥 지나치는 작은 마을이다 보니 숙소에 모인 순례자들과도 더 깊게 친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약간은 느슨하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 랄까?


아까 나에게 좋은 말을 하고 사라졌던 순례자도 여기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체크인을 마치고 오늘은 이곳에서 짐을 풀려고 한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의 새로운 깨닫음이 길이 앞으로의 길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아 기대감이 올라왔다.


숙소는 규모는 작았지만 지저분하거나 호스트가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침대간격이 조금 손을 뻗을 정도로 가까워서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다 알 정도로 얇고 긴 방이었다.


방에는 총 10명의 순례자가 머물고 있었고, 화장실도 사용 후 대걸레로 직접 어질러진 물기를 직접 닦아야 한다.

여자 남자 화장실에 각각 샤워실 하나 화장실 두 개 한 개의 세면대가 있었다.



따르다호스 순례자들

코골이가 심한 스페인 골초 아저씨는 내가 도착했을 때 시에스타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키가 아주 컸던 네덜란드 아저씨, 멋진 로브를 가지고 다니던 프랑스 여자분, 나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 테즈메니아 출신 호주인 카르멘, 아시아계 캐나다 젊은이, 마이애미 미국인, 독일부터 프랑스길을 하루 50km씩 걷고 있는 독일청년, 스페인 청년 그리고 나 이렇게 10명이 이방 안에서 복작이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짐을 풀자마자 샤워를 하러 갔다.


화장실 안내

호스트가 알려준 화장실 사용법대로 샤워 후 밖으로 나오니 세면대에는 어색한 구글번역기로 번역 한 한국어 안내표지가 붙어 있다.


"세면대에서 빨래하지 마세요 “라는 말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면대에서 빨래를 하면 이럴까?


어색한 한국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속으로 기회가 된다면 저 안내판을 제대로 된 한글 안내판으로 바꿔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대걸레질로 마무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다.


숙소 안

방에는 내 침대 밑 1층 침대를 쓰는 스페인 청년과 맞은편 이 층침대를 사용하는 마이애미 미국인 젊은 처자 그리고 1층침대를 쓰는 캐나다계 아시아인 처자 이렇게 셋이서 짐을 풀고 근육 마사지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인사를 건네자 캐나다 처자는 정확한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정확한 발음에 놀라 어떻게 발음이 이렇게 좋은지 물어봤다.


그녀의 동생이 한국어 강사이고 현재 한국에 거주 중이라고 했다. 아시아계 캐나다인이지만 한국계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왜냐하면 만약 한국계면 보통 통성명을 할 때 같은 국적인걸 밝히니까. 여태껏 들은 영어 말하기 중 알파세대들이라 줄임말로 말하는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설명을 들어야 했다.


z세대 3 총사

침대 맡에서 세 명이 오손도손 모여 앉아 근육 마사지를 하고 페디큐어에 테이핑을 하는 등 수다 삼매경 중인 알베르게의 익숙한 풍경이다. 나는 이 친구들을 산후안 데 오르테가에 있던 피자집 테라스에서 봤던 무리 중 일부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20대 친구들이 길을 걷는 게 쉽지 않은데 역시나 길에서 함께 만나 무리를 지어서 늘 항상 같이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카르멘

현자같이 말을 건네고 지나갔던 호주인 순례자 카르멘은 테즈메이아 출신 호주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력이 재밌는 것은 프랑스계 호주인이란 것이다. 때문에 불어와 스페인어 영어까지 자주자제로 구사를 했다. 게다가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대답을 했다는 게 프랑스계라는 말을 듣고서야 조금은 이해가 갔다. 카르멘의 첫인상은 현자스러운 말투와 발 뒤꿈치에 내 발이 다 아파올 정도로 큰 대왕 물집이 있었다.

맨발에 에어조던을 차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그럼에도 정말 잘 걷는 사람이다.


프랑스 순례자

순례자처럼 보이지 않던 그녀는 멋진 로브 가운을 입고 있었다. 혼자 정원 테이블에 앉아 빵에 하몽과 버터를 얹어 먹으며 나에게 먹기를 권했었다.

그런 짐을 다 가지고 다닌다는 건데 도대체 얼마나 무겁게 짐을 들고 다니는 걸까?


마을 탐색

마을 탐방을 하며 작은 구멍가게에 얼굴 두 배 만한 큰 빵을 1유로에 팔아서 인상이 깊었었다.

동네 레스토랑이 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슈퍼마켓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슈퍼마켓 앞 광장에 모여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슈퍼에서 딱히 먹을 만한 것도 없고 현금으로 계산을 해야만 했다.

과일과 샐러드를 골라서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딱히 시원찮게 먹었던 기억만 난다.



나는 종소리가 울리는 타르다호스의 작은 성당으로 돌아와 예배를 보며 하루를 마쳤다.

내일은 얼마나 앞으로 나아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길 초반의 목표였던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길로 접어든 지금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할 시기였다.


마드리드를 지나 부르고스 그리고 타르다호스까지의 긴 여정을 오늘은 이만 마치려 한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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