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휴가 2
프런트로 내려가 버스로 프라도 미술관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보니 강을 건너 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고 알려준다.
평상시 입는 트래킹 의상을 벗고, 혹시 몰라 가져갔던 자라 개나리색 셔츠원피스를 입었다.
이 옷을 입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미술관 갈 때 차려입을 수 있다니 다행이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원피스나 차려입을 수 있는 옷을 준비해 가는 게 좋다.
나는 노란 자라 셔츠 원피스를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45번 버스승강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구글 안내를 보니 Manzanares강을 지나 Legazpi역 근처 교차로에 버스 정류장이 모여 있었다.
부르고스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는지 지도의 지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750미터를 한참을 걸어 버스역까지 가는 동안 한가로이 마드리드 리오 공원에서 조정경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러닝을 뛰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순간 산티아고 친구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다들 잘 걷고 있겠지?)
구글에서 프라도 까지는 3.4km라는 안내를 보면서 걸어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휴식을 취하러 왔음에도 여전히 걷고 있다.
큰 도심에 강가 공원에 쉬는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진다.
아마 내가 마드리드에 거주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당연히 이 정도 거리는 걸어 다녔을 것이다.
평상시 인사동에서 명동까지도 퇴근하고 걸어 다녔던 사람이었으니까.
하루 20km를 걷는 사람인데 3.4km쯤이야 40분 안에는 도착하겠지? 하지만 스페인의 태양은 나의 의지를 사그라들게 할 만큼 뜨거웠다.
45번 버스를 타려고 동전을 꺼내는데 버스에 태그리스 카드표시가 보여서 혹시나 하고 카드를 갖다 대 보았다. 결제가 됐다는 경쾌한 벨소리가 난다. 이제는 우여곡절에 대한 나의 인식은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길이라 인식하는 새로운 세포가 뇌 속에서 뻗어 나가는 듯했다.
역시! 마드리드는 국제도시였지!
도심을 관통하는 버스를 타고 버스로 시내구경을 하면서 시원한 에어컨까지 나오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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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뮤지엄 티켓 예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으냐면 프라도 미술관도 버스를 타고 가면서 '마이 리얼 트립' 사이트로 들어가 티켓을 그 자리에 한화로 할인받은 가격에 결제를 할 수 있다.
미술관은 8시까지는 개관되어 있어서 좋아하는 작품만 골라서 봐야겠다는 전략을 짰다.
프라도 미술관 근처에는 왕립 식물원과 산 헤로니모 엘 레알 성당과 고고학 박물관까지 광화문처럼 한눈에 도시를 볼 수 있었다.
밤에는 마요르 광장 쪽으로 걸어가서 저녁을 먹으면 되겠다 싶었다.
프라도 미술관은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만큼이나 크고 볼거리가 많은 유럽의 3대 미술관이다.
굳이 한국과 지역을 비교하자면 나는 삼청동 현대 미술관 서울관 생각이 많이 났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미술관 옆 식물원에 내린 후 큰 대로에 펼쳐진 가로수들의 일령종대 직육면체 사각 반듯한 나무들이 도시 전체가 큰 정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프라도 미술관 입장
평일이지만 관광지인만큼 어딜 가나 줄을 서야 한다.
그나마 나는 예약한 티켓덕에 바로 큐알을 찍고 돔모양의 하얀 대리석 건물의 미술관 입구로 들어섰다.
대형 미술관답게 입구에서는 짐검사를 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한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브로셔가 있어서 프라도 미술관을 편하게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좋았던 것 같다.
내가 가져간 플라스틱물병은 반입이 안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에는 1800여 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사실 하루에 이 많은 작품을 하루에 다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시 구경하기
달리, 고야, 라파엘, 피카소 등 이름을 알만한 대가들의 원화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스페인의 무엇이 세계적인 작가들을 배출하는 것일까?
나는 순례길을 걸으며 스페인의 자연 속에서 대가들의 그림들이 보이는 자연경관을 경험했다.
이들의 그림 속 색감과 상상을 뛰어넘는 작품들 속에는 항상 스페인의 대 자연이 숨 쉬고 있었다.
천장이 5미터는 되는 큰 건물에 걸린 대작들은 눈과 내 영혼에 영감을 안겨 줄 것이다.
나는 예전에 한국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원화 작품 전시를 보러 예술의 전당을 간 적이 있었다.
작품이 너무 많고 밀려드는 인파를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줄줄이 기차처럼 조금씩 움직이며 지나치듯이 작품을 볼 수밖에 없던 기억이 있다.
작품에 대한 이해보다는 다들 인증하기 위한 이벤트였던 것이다.
당시에 전시와 공간이란 질보단 양이 가득 찼던 전시였으니까.
좋은 작품은 두고두고 여러 번 감상하면서 천천히 꼭 꼭 현미밥을 씹어 먹듯이 천천히 소화를 시켜야 한다.
그런 게 고전명화에서 나와 작가를 연결하고 그를 통해 나 자신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작가가 태어난 시대상과 미술사조까지 이해한다면 작품의 붓질 하나의 의미까지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있다.
유럽은 예술대 학생증이 있으면 미술관과 박물관을 무료로 들어가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어서 관람을 하며 스케치를 하는 학생들을 종종 마주쳤다.
관람 대충 전략을 짰는데도 관람하기가 만만치가 않다.
한국 소규모 가이드 투어도 시간대만 맞는다면 작품해설과 함께 듣는 것도 재밌는 경험일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나는 스페인 내전과 전쟁 관련 작품은 선택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작품들이 역사를 반영하듯이 어둡고 슬픈 에너지를 나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지하 1층 고야 관이 따로 위치해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보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지만 그 외 작품들은 한국 현대사처럼 어둡고 슬픔이 가득 찬 어두운 색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박물관은 살아있다.
스페인과 유럽전역의 작가들의 작품에는 당대 시대상을 볼 수 있고 풍경들을 볼 수 있어서 눈이 즐겁다.
그중에 겨울왕국에서 안나가 노래를 부르며 왕궁 내부에서 나오는 작품 중 [그네 타는 여인-프라고와르 작품]이라 던가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나 로코코 시대를 벗어나 스페인 적인 풍경과 색감을 담아낸 화가 [다리오 데 레고요스 이 발데스-에르난 니 근처의 풍경] 나는 이 작품을 감상하면서 스페인 지역 마을 어딘가를 걸으며 큰 나무 그늘 아래 배낭을 내려놓고 걸터앉아 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아마 1900년대 작가가 활동을 하던 시기에도 순례자들은 길을 걷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네 타는 여인의 경우 로코코풍의 바로크 양식과 화려한 드레스 볕이 잘 드는 정원 숲에서 그네를 타며 여가를 보내는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모습에 내 눈에는 사람보다 숲이 먼저 눈에 더 들어왔다. 미술관에서는 미대생들과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작품 앞에 앉아서 혹은 코가 닿을 듯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정지된 사람처럼 명상을 하거나 스케치 중이다. 나 역시 예술인 패스를 발급받고 최근에는 현대미술관에 자주 가서 작품 감상을 하지만 매번 명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부러울 따름이다.
재미있는 경험은 사냥개와 사냥을 하려고 차려입은 남자 초상화를 보고 있는데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림을 감상하는 남자 얼굴과 작품 속 캐릭터가 동일 인물처럼 비슷하게 생겼었기 때문이다. 마치 운명에 이끌린 이상형을 만나듯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울리는 그림 앞에 서 있는 풍경이 나는 미술관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오히려 반대로 왠지 모르겠지만 그림이 현대인들을 구경하는 느낌이 역으로 들기까지 하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 됐다.
커피타임
숙소에 도착해서 여태껏 하루종일 쉬지 않고 걷고 있으니 다리가 아파왔다.
나는 그림 구경을 넋 놓고 하다가 다리 통증 때문에 카페 안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카페 마감이 7시여서 나를 마지막으로 손님도 받지 않고 있었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2층이라 바깥풍경을 앉아서 구경할 수 있었다.
여전히 대낮처럼 밝고 뜨거운 날씨에 창밖 풍경은 여유로워 보인다.
예전에는 그림을 관람할 때 사람과의 관계, 그림의 구도를 많이 봤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건물이나 풍경들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게다가 관심 없던 종교화도 그림들 속 순례행렬을 보면서 그 안에서 나를 봤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그 시대 때는 알베르게가 없으니 파울로 코엘료가 쓴 순례자에서 처럼 성당에서 자거나 길에서 노숙을 했을까? 야외에서 캠핑을 했다면 내가 알기로 코요테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피했지 싶은 그런 생각들 말이다. 마치 내가 그 시대 순례자가 된 듯 말이다.
어떤 사람은 매 시즌마다 놀이공원을 가듯이 나에게 미술관은 놀이공원과 같은 영감과 당대 천재들의 에너지를 받고 소통할 수 있고, 그림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앞만 보며 걷던 순례자 모드에서 다시 일상 속 여행자 모드 속에 나는 잠깐의 휴식 같은 여행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은 나에게 있어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었다.
정말 그림을 관람하는 3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기념품
지하에 마련된 기념품샵에서 사실 많이 많이 기념품을 사고 싶었으나 순례자로 돌아가 가볍게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다리오 데 레고요스 이 발데스-에르난니 근처의 풍경] 그림이 그려진 노트 한 권과 프라도 미술관 로고가 박힌 연필 한 자루를 구매하고는 8시 폐관 알림을 방송을 끝으로 쫓겨나듯이 바깥으로 나왔다.
미술관 밖 풍경
출입구를 들어갈 때와 다른 헤르니모스 동 건물 뒤편 지하 밖으로 나오는 출구로 나오자마자 바로 뒤에 위치한 '산 헤르니모 엘 레알 성당'의 뾰족한 건물 머리가 눈에 띄었다.
미술관 뒤편 잔디가 깔린 언덕은 앉아서 노을을 보며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공간이었고, 버스킹을 하는 거리의 음악가들의 공연을 보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출입구를 나오자마자 들리는 로망스 기타 선율이 마드리드 노을 무드와 어우러져 마드리드의 오후가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나는 한참 공연을 보고 노을을 바라보다가 노란 불빛이 어둠을 밝히자 언덕으로 올라 성당으로 향했다.
마침 수요 미사 중이었고, 매번 성당마다 건물 안에 디자인된 건축양식과 회화 컬렉션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 입구에서는 작품을 지키는 경비직원들이 한 명씩 성당으로 입장을 시켜주었다.
종교적 법과 예절을 모르지만 나는 예를 갖춰서 엄숙하고 신성한 미사 현장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산 헤르니모 엘 레알 성당은 평소 내가 마주 했던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마을의 화려한 장식보다는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성당이었고, 참석한 규모만큼은 신도들로 가득 찾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앞으로의 안전한 여정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미술관은 며칠을 체류하며 관람하고 싶을 정도로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래!
이 맛에 유럽 여행하는 거지?
오래간만에 느끼는 문화충전에 나는 다시금 걸을 용기를 내었다.
성당을 빠져 나와 한참을 노래를 들으며 언덕에 앉아 있다가 마요르 광장 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걸어서 직선 코스로 1.4KM 코스여서 마드리드의 밤 정취를 느끼며 걷기 충분한 거리였다.
나는 걷다가 교차로에 위치한 포세이돈 분수대 관광 정보 점포에서 마드리드 지도를 가지고 걷기 시작했다.
한적했던 프라도미술관 공원과 달리 마요르광장으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팜플로나를 연상하게끔 시끄럽고 정신없는 축제의 분위기가 펼쳐졌다.
광장 가운데 구조물 복원 공사로 파란 천막천을 씌워 놓았지만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인증샷을 찍느라 인산인해였고, 밀려드는 인파에 광장은 진공관처럼 소음이 울려 퍼졌다.
내 취향은 미술관 쪽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의 공원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휴가 중이니까 이 소란스러움을 즐기기로 했다.
노랫소리와 반도네온 공연 소리 그리고 각국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소음까지 섞여서 만약 누군가 함께 있었다면 더 공연 분위기를 즐겼을 것 같다.
나는 공간을 구경하고는 광장을 빠저 나와 다시 골목을 걸어 다니며 먹을 만한 게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나는 3시간을 내리 미술관 관람에 마드리드도 쉬지 않고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음식 냄새가 나자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아까 미술관 쪽이 삼청동 현대미술관 같은 분위기였다면 이곳은 금요일 밤 홍대와 명동을 합쳐 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중요한 건 오늘은 수요일이다.
스페인 하면 왜 열정이라 하는지 노는데 진심인 이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나는 스페인길 초반까지만 해도 스페인의 식문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시에스타와 저녁 식사 시간 중간에 허기를 달래야 했었다.
마드리드에 있는 지금은 8시가 넘은 시간 이제 저녁을 스페인 시간에 맞춰 다 함께 먹을 수 있으니 완벽 적응한 것이다. 소란스러운 마요르광장을 빠져나와 계동같이 좁은 골목길 분위기에 길로 접어들어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에 메뉴판을 확인하며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가 웨이팅을 했다.
MU! El Placer de la Carne
20유로 안팎의 세트메뉴 구성이고 메뉴판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선택하기도 쉬워 보였다.
입구에 검정 간판과 은은한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 약간 아웃백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하루종일 이동과 숙소 찾기 미술관 관람까지 8시가 넘어가는 시간 때라
배에서는 연료를 넣어 달라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양식의 특징이 간단한 메뉴에도 코스요리가 특징이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알다시피 유럽인들 대화모드는 24시간 열려 있다. 그래서 한 시간 이상 대화를 하며 저녁 식사를 한다. 특히 저녁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음식 냄새가 식욕을 더 당겼다.
웨이터가 자리를 배정해 주고 내 옆에는 젊은 베트남 관광객 여자 둘이 스페인 관광을 온 듯 보였다.
한껏 차려입고 와인을 마시며 스페인의 정취를 즐기고 있었다.
저녁 메뉴
나는 LA갈비와 엠빠나다 델 뽈로(고기 튀김만두), 샐러드, 쌀푸딩 그리고 와인을 시켰다.
빵과 올리브 오일은 당연히 무제한 리필이다.
베트남 여행자들은 그 식당에 유일한 아시안 손님이었는데 내가 바로 옆에 자리를 잡자 같은 동양계 사람들
특유의 눈치를 보고는 동향인인지 아닌지 확인을 하고는 빠르게 눈을 돌렸다.
서양문화에서 눈을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는 문화를 나는 꽤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디 한번 붙어볼까 하는 눈으로 쏘아보며 눈싸움을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만 해도 동네 어른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은 사람들 인심이 참 팍팍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 여행자들이 떠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저녁 손님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오른쪽에는 스페인 남자 3명 왼쪽에는 프랑스 아저씨 2분이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양 옆 테이블에서 서로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굳이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도 다 들릴 정도로 가깝게 앉아 있어서 기억할 수 있었다.
세 개의 테이블이 마치 한 테이블처럼 붙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눴고 프랑스 사람들은 스테이크와 샐러드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하면서 나에게 지금 먹는 것들에 대한 맛을 물어보았다. 내가 올리브 무침을 추가로 시켰던 것도 오른쪽 테이블에 스페인 무리들이 시키는 걸 보고 나 역시 추가로 주문을 넣었다. 스페인에서 올리브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내가 올리브를 주문한 것을 보고는 밝게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한편 왼쪽 프랑스 테이블에선 빵을 들고 심각하게 토론 중이었는데 말하다 말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에게 빵맛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프랑스인: 여기 빵 먹을만하세요?
프랑스 사람들이 빵에 얼마나 진심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내 대답은 이랬다.
나: 안타깝지만 저는 유럽에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왔어요.
그래서 빵을 좋아하지만 전문가는 아닙니다. 저는 나쁘지 않아요.
이 빵이 신선하지 않다고 느끼는군요?
그렇죠?
프랑스인:저는 당신이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혼자서 자연스럽게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잖아요.
프랑스인 특유의 너스레를 떨며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식사를 하려고 할 때 오른쪽 테이블의 스페인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올리브유에 빵을 듬뿍 찍어 입에 넣었다.
그들의 표정은 마치 그렇지 우리에겐 신선한 ‘올리브’가 있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프랑스인 테이블에선 돌 위에 구워지고 있는 스테이크 냄새가 식당 안에 진동을 했다.
점점 대기줄이 길어졌다.
좁은 공간에 홀 주문과 서빙은 단 2명밖에 안 하고 있으니 주문도 밀려 있고, 사람들 소음에 정말 정신없이 식당은 바빠 보였다.
그릇이 와장창 깨질 때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 이내 익숙한 듯 다시 소음으로 가득 찼다.
조용조용하던 프랑스 레스토랑의 데시벨과는 비교가 안된다.
온 유럽 사람들이 스페인에 와서 무장해제 된 듯 보였다.
후식으로 나온 쌀푸딩을 먹으며 식사를 마치고 나니 10시가 다 되어 간다.
문화적 충전과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았지만 또 숙소로 갈길이 멀다.
이런 것 때문에 숙소를 중심가로 잡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 소음을 견딜 자신이 없다 생각이 다시 돌아왔다.
양옆에 앉은 프랑스인과 스페인 식사 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일어서려고 하자 벌써 일어나냐며 아쉬워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 쇼핑센터 광장을 지나자 영화관과 공연장 등 한밤이었지만 플리마켓과 야외 공연까지 마드리드의 밤은 잠들지 않고 여전히 축제 중이다.
나는 구글이 안내하는 대로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서 버스정류장 줄을 섰는데 정말 버스가 설까 싶게 작은 기둥들만 있고 골목길 가로등도 없는 그런 곳에 다들 집에 가기 위해 줄 서 있었다.
다들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취했는지 버스 안에서도 큰 목소리로 기분 좋게 웃으며 떠들고 있다.
재미있는 건 취하거나 안 취하거나 목소리톤은 항상 시끄럽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스페인 사람들은 목소리 줄이기 기능이 없는 듯 보인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 11시가 다됐다.
숙소 도착!
돌아오자마자 테라스에 널어뒀던 빨래를 걷고 커튼을 치고는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혹사한 발을 마사지볼로 마사지했다.
오랜만에 아스팔트 길을 샌들을 신고 하루종일 걸어 다녔으니 발이 아픈 게 당연하다.
내일은 차마틴 역에 8시 45분 부르고스행 기차를 타야 한다.
적어도 새벽 6시에는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한다.
기차 티켓은 51.63유로에 결제를 마쳤다.
마드리드에서의 하루 휴가라 아쉬웠지만 나의 산티아고 순례 중 첫 휴가가 꽤나 만족스러웠다.
다음 기회에는 꼭 마드리드를 더 오래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머리가 침대에 닿자마자 넓은 더블 배드의 포근한 면시트와 이불을 느낄 새도 없이 잠들어 버렸다.
오늘 하루아침 부르고스에서부터 저녁 11시 마드리드 까지 정말 꽉 찬 하루를 보냈다.
다시 내일부터는 순례자 모드로 돌아가려니 아쉬울 정도로 말이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