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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작가 Mar 07. 2024

왜 산티아고 인가?


길을 걷는 내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자 스스로에게도 가장 많이 질문했던 내용이다.


우리는 왜 길을 걷고 있을까? 원론적으로 한국은 트레킹 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등산 코스로 가득 찬 나라이다. 그럼에도 나는 집 앞에 있는 둘레길조차 걷지 않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기초체력이 타고나게 허약체질로 태어난 나에게 시도한 운동들은 운동 후 후폭풍이 더 오래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평소 운동이라는 생각보다는 기분전환의 순환으로 늘 걷기는 당연하게 나에게 받아들였었다.

적거나 철학이 있을 만큼 대단한 규모가 아니어서 인지 이게 소소한 취미인 옥상 텃밭 가꾸기를 하고 있지만 글쎄 그걸 글로"나야"라고 부르며 "식물 집사"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정도이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내 중고등학교 시절 지리산 종주를 다녀왔던 오래된 서랍 속의 추억들까지

이번 카미노 길을 통해서 나는 내 삶의 전반적인 인생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늘 그림만 그리던 나에게 웬 글쓰기 라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길을 떠난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아야지 생각하며 열심히 자료와 영상 녹음 파일까지 매일을 담기 위해 나는 최선을 다했다.


무슨 인생의 장난인지 유럽 여행에서 출국 일주일 전 한 번은 겪는다는 소매치기를 당해버렸다.

파리 마지막 여행지에서 나는 핸드폰을 도난당했고 내가 백업한 자료라고는 초반 파리 관광을 다닌 영상을 백업해 놓은 게 다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티아고 사진자료를 날리면서 나의 글쓰기 작업은 선택이 아니라 나의 기억을 붙잡기 위한 필수가 되었다.





https://naver.me/5pHculqP


 나는 산티아고 길에 대해 20대때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순례자"를 읽으며 길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당시 나는 유럽 배낭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임에도 도무지 길을 왜 걸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인공이 겪는 갖은 고초가 나에게는 생고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2023년 4월 말 회사 계약 기간이 끝나가는 찰나 "The Way"라는 마틴 쉰 주연의 산티아고 순례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들이 순례길을 걷다 낙뢰를 맞고 세상을 떠나게 된다.(실제로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남) 의사인 아버지는 아들의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산티아고 길을 걷게 되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자마자 산티아고를 가겠다고 결심한다.


 왜냐하면 2022년 7월 5년간의 암 투병 끝에 아빠가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에 처음 경험해 보는 이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주인공 아버지의 마음이 마치 내 마음 같아서 내 가슴에 생긴 까만 구멍을 매울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온 대사처럼 슬픔은 "잉크처럼 퍼지고 파도처럼 몰려와" 까만 구멍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41일간 하루 20킬로미터의 길을 걸으며 800km라는 대장정을 완주했다.


나의 목표는 하나였다.
내 안의 그간의 묶은 때를 다 비워 내고 오자!! 다 걷지 않아도 된다!
단지 그냥 하루라도 그 땅을 밟아 보자!


마음속 구멍을 산티아고에서 매일 숙소에 도착 하자 마자 받는 도장들을 내 가슴속 뚫린 구멍에 땀 한 땀 바느질하듯 새겨 넣어 훈장으로 메꿔 놓았다.



 

순례자들에겐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순례길에 한번 발을 들이는 순간 한 번의 순례길은 없다. "산티아고 인피니티" 그리고 카미노 길이 끝나는 날 모두에게 축하를 전하며 서로 하는 말이 있는데

이제 너의 리얼 카미노의 이야기를 잘 써 내려가길 바란다며 축하의 말을 서로 전한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인생이 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을 맞이했다. 한국 추위에 준비가 안된 나머지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고, 일상으로 돌아와 여전히 흔들리고 실망하고 길을 잃으며 매일을 맞이하고 있다.


지금 나에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혼자 걸어 나갈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과 나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는 것이다!


나의 리얼 카미노에서 다음 산티아고 길을 준비하는 중이다.


브엔 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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