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회사에 다니며 아빠의 서류를 정리해야 했고 주말엔 단체전 전시와 그림작업에 몰두하면서
나는 근본적인 가슴속 이야기는 묻어둔 채 앞만 보고 달려갔다.
몸이 부서질 것처럼 피곤해야 겨우 잠이 들었다. 자꾸만 자다가 깨는 하루하루가 반복됐다.
내가 하는 일은 전혀 경력이 없던 사무직 일이어서 처음 배워 보는 엑셀과 전화 업무를 해결하느라 회사생활동안 눈코뜰 새도 없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었다. 출퇴근하던 회사가 계약이 만료되고, 자연스럽게 나는 프리랜서 그림작업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직업의 특성상 더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조차도 느껴질 정도의 고요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누군가는 간절히 원하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 앞에 나는 좌불 안석 똑바로 내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아빠가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기를 반복했다.
일찍이 부모님을 보내드린 경험이 있는 친구는 2~3년 정도는 이유 없이 눈물이 나고 먹먹해지는 순간이 올 거라고 말했었다. 나는 그 순간을 맞이하기 싫어서 그렇게 바쁘게 움직였었는데 현실의 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인이 되어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가면서 창밖에 보이는 하늘 풍경이 오늘 역시 아름다웠다.
갑자기 눈물이 의도한 것도 아닌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맑고 좋은 날 아빠한테 이제는 문자를 보낼 수 없구나... 온전히 남겨져 있는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눈물을 훔치며 “나 이번 여행을 꼭 가야겠어!”라고 속으로 읊조리고는 버스 안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들이 터져 나오길 간절히 원하는 "내면의 아이"가 절실한 표출한 처절한 몸부림 아니었을까?
인생의 결정이란 게 우연이 쌓이고 단순한 계기로 한순간에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영화를 봤던 직후 나는 퇴사를 하자마자 유럽으로 날아가 산티아고를 걷고 싶었지만 파리에서 지내는 친한 언니네 집에서 며칠 머물기로 결정이 나면서 5월이 아니라 9월로 확정! 4개월이나 나에게 여행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그 덕분에 나는 가기 전 트래킹 용품이라던가 산티아고에 필요한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출발 전까지 체력을 올려둬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운동도 전혀 안 하다가 하루에 20km 한달 동안 800km를 준비 없이 갈 수는 있지만 다녀와서 분명 몸이 변화가 있을 것이다. 나보다 체력이 좋고 운동을 많이 했음에도 어느 순간 부상이 생겨 중간에 걷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종종 지켜봤었다.
800km는 대략 평양에서 부산까지 거리이다.
생장; 세인트 장 피에 드 포르트에서 산티아고;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북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프렌치 로드” 라 불리는 이 루트는 비행기로는 하루 기차로는 일주일 안팎의 거리로 이동이 가능한 거리이다.
출발 전 알아본 루트이기 때문에 실제 걷기와 매우 달랐다.
자아 찾기를 위해 걷기를 시도하다가 부상 때문에 평생 못 걷는 경우도 있고 체력적 한계, 날씨, 건강상 문제, 음식 문제, 등등 여러 문제로 포기하는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출발 전 여러 정보에서도 여행으로 들떠 있는 순례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고하는 첫번째 경고문턱을 넘어야 했다. 절 앞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이 나에게 자신 없으면 도전하지 말라며 밀어붙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들 쉽사리 산티아고행을 도전하지 못하는 듯 하다. 높게 느껴지는 문턱 앞에서 의욕이 먼저 꺽여 도전을 하고 싶으나 시도조차 못한 여행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것 같다.
나 역시 운동을 잘못해서 발목 인대를 수술했던 경력이 있어서, 부상에 대한 이야기도 더더욱 마음이 쓰였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지만 6월이 돼서야 파리행 비행기표를 구매를 하게 됐다.
코로나 이후 어마무시 하게 오른 비행기 가격에 4월부터 매일 항공권 창에 들어가 언제 가격이 저렴해지는지 검색하는 걸로 시간을 보냈는데, 결제버튼이 쉽사리 눌려지지 않았다.
(이 일 하나도 결단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데 네가 산티아고에 간다고? 그냥 편하게 살아~ 웬 여행이야? 지금 여행 가면 그동안 모았던 조금의 돈도 다 써야 하는 건 알지?)라는 마음속 두려움이 밀려왔다.
단지 비행기표는 하나의 작은 스탭에 불과할 정도로 많은 숙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0대 때는 통틀어 꽤 자주 여행과 어학연수로 나의 20대를 보냈었다. 30대가 되고 나서 나는 거의 여행과는 담쌓은 사람처럼 일에만 파묻혀 성취감에 취해 살았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코로나 전에 아는 작가님이 참여하는 일본 "도쿄디자인페스타"에 따라가서 도쿄를 방문했던 것이 다이다. 그것도 벌써 4~5년 전 이야기이다. 장기 비행에 대한 나의 지식은 완전 옛날 것들 뿐이었다.
게다가 코로나가 지난 이후 거의 모든 방식이 "언택트"로 바뀌면서 나는 여행에 관련된 정보를 새롭게 공부해야 했다. 물론 연수 경험과 여행 경험이 있으니 가면 잘하리라는 것은 알면서도 긴장감이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여행사 경력이 있던 지인 찬스를 써서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조건의 비행기표를 알아봐 주었고, 프랑스 파리 근교에 사는 친한 언니와 파리 도착 후 며칠을 언니집에서 머물기로 약속을 잡고 나름 비수기라 생각하면서 아시아나 직항 비행기를 저렴하게 구하게 됐다.
떠나기 전 기간을 나는 순례자의 모습을 갖추어서 길을 가고 싶었는데, 한국에는 생각보다 집합된 디테일한 자료들이 많지 않아서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자료를 찾아야 했다.
갈팡질팡 하던 마음의 결단이 옳게 만들기 위해서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브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