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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옥 Sep 22. 2023

선택된 사랑

나의 반려, 남편 인터뷰


여름날 밤, 열이 많은 남편은 늘 에어컨을 킨다.

시원해진 방에 따뜻한 그를 안으며 물었다.


    “오빠 나 얼마나 사랑해?"

자주 건넨 질문이다.


당신은 언어보다 태도를 무기로 살아가는 사람.

나와 다른 그 면을 좋아하면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설명을 바란다. 이미 느끼고 있음에도.

그는 또 시작되었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많이 사랑하지”

    “비유하자면?

“바다같이 우주만큼 사랑해”

    “왜?”

“끝이 없으니까”

    “바다는 끝이 있는걸?”

(눈을 흘기며)“그래서 우주도 덧붙인 거야”

장난스레 말꼬리를 늘어 잡을 때 가늘어지는 그의 눈이 재미있다.


    “처음에도 그랬어?”

“처음에는 호수만 했지”

    “호수가 어떻게 커진거야?”

“내가 계속 거기에 빠지니까”

그제야 만족스러워진 난, 계속해서 깊어질 사랑의 바다를 유영하는 기분으로 잠들었다.


너는 내 심장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래 머무는 이. 지극히 개인적인 나를 몽땅 드러낼 수 있는 사람.

우린 오랜 연인에서 새 부부가 되었다.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마음은 의지로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선택의 영역인 결혼을, 우리는 왜 한걸까?


    “너는 왜 나랑 결혼했어?”

“좋아하니까 했지”

너의 첫 대답은 늘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왜 굳이 결혼을 했냐는 거야.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함께 살아가도 되잖아”

“그래도 결혼하지 않으면, 헤어짐이 너무 쉽잖아”

이별이라는 가정을 없애는 선택. 그에게 결혼은, 영원의 마음을 담은 일종의 선언이었나 보다.


    “결혼을 결심한 순간이 기억나?”

“평생 재미있고 행복하게 지내다가 같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런 미래에 대한 확신은 어디에서 온 거야?”

“갑자기 온건 아니고 조금씩 쌓였어. 네가 나한테 보여주는 모습 있잖아. 춤추고 소리 내는 게 너무 귀엽고 재미있어. 네가 나를 가장 편안해하잖아”

    “느껴져?"

“느껴지지. 나도 그래. 계속 함께 살면서 많은 걸 공유하잖아. 감정부터 방구까지”


이젠 나의 감정을 때로는 나보다 빠르게 감지하는 너. 오롯이 서로를 위한 데이터가 쌓인다.

편안해서 흘러나온 내 몸짓들이 당신의 흥미를 자극시켜 자꾸만 날 소비하고 싶게 만들었구나.


    “넌 어떤 남편이라고 생각해?”

“웃음을 주는 남편이 아닐까? 나는 웃음이 굉장히 중요하거든. 삶에서”

    “왜?”

“웃으면 행복하잖아. 웃을 수만 있으면 뭐든 지루하지 않고 오래갈 수 있어. 일이든 사람이든. 서로를 생각했을 때 웃음이 많이 나온다면 좋은 관계일 것 같아”


    “같이 있는데 도저히 웃음이 지어지지 않을 땐 어떻게 해?”

“음.. 조금만, 상대를 조금만 더 생각해 주는 거? 왜 상대가 저러고 있는지 이해해 보고, 이해가 안 가면 고민해 보는 거. 너도 나한테 그렇게 해주잖아”

    “내가 언제나 너를 먼저 생각하진 않잖아. 짜증 낼 때도 있고, 자주 우울해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내 차례지. 짜증 나 죽겠는데 뭘 생각해. 그땐 반대편 사람이 도와줘야지”


우리는 서로가 가진 틈을 온전히 메워주는 사이. 서로의 부족한 구멍이 상대에게 채워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완전한 관계가 된다.


    “네가 처음 본 부부는 부모님이잖아. 그들은 어땠어?”

“좋았던 점도 있고 안 좋았던 점도 있었어. 배운 점도 많고 배우지 말아야 할 것도 있었지. 가난했고, 가부장적인 할아버지랑 살 때는 어쩔 수 없이 미숙한 대처 방식이 드러날 때도 있었는데, 부모님도 힘드셨을 테니 전부 이해는 돼. 하지만, 걸러야겠다”

그는 너그럽고 단호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넌 그때 겨우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동생이 둘이라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어. 나는 어릴 때 사춘기가 안 왔어”


나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어린 너를 생각하면 안아주고파, 흉도 안진 네 상처에 내가 아파서. 가끔 술을 잔뜩 먹고 아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한없이 허용한다. 어린 널 만난 후엔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얼마나 배부른 집에서 지냈나. 내게는 고통스러웠던 사춘기도, 받아줄 환경에 기반한 사치였을지 모른다.


    “좋은 모습은 어떤 게 있었는데?”

“항상 웃었던 것 같아. 힘든 시절이 많았는데도. 그 시절에 부모님 표정을 떠올려보면 엄마 아빠의 웃는 표정이 떠올라. 힘들어도 웃으려고 했다고 생각해. 그런 건 배우려고 했어 “


슬픔과 아픔은 강으로 바다로 흘려보내고, 기쁨과 웃음만 건져올린 네 삶의 태도가 나를 굳이 결혼하게 만들었다. 가난을 모르는 난 가난이 두려웠고, 캄캄해보이는 어려움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웃음을 가진 네가 빛나보였다. 나의 우울이 아무리 짙어도, 네 웃음 빛 하나에 조금이라도 환해지겠구나.


너의 세계에서 단단한 버팀목이자 따스한 햇살 같은 웃음이, 이젠 내 세계로 왔다. 여전히 난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렵지만 그래도 네가 물려받은 그 웃음은 함께 지키고 싶다.

그렇게 너와 나의 우주 속에서 태양처럼 떠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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